ㄴㅏㅊㅏㅈㅏㅇ

승진의 비결

by 폭풍속 부푼돛

#본격 직장·가족 판타지 소설




나 과장은 회사 건물 밖으로 나왔다. 미세먼지로 뿌연 도시의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쾌했다. 멀리서 고소한 냄새가 스며왔다. 마치 바닷속 상어가 피 냄새를 맡듯, 그는 몇십 미터를 걸어 그 냄새의 원천에 다다랐다.

자전거 보관대 위 ‘금연’ 간판이 담배 연기 속에 흔들리고 있었다. 수십 명의 직장인들이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고, 꽁초를 버렸다. 나 과장이 극도로 싫어하던 풍경이었다.


그는 예전에 타 대리에게 이렇게 말한 적 있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어쩌라고. 애들도 다니는데 저렇게 피워대? 꽁초랑 가래침은 또 뭐고. 나도 예전에 담배를 폈지만, 저러니 욕먹는 거지.”

그러자 타 대리는 웃으며 말했다.

“과장님, 담배도 기호품이잖아요. 다 나쁜 사람 취급하는 건 너무하죠. 피해가 가는 건 사실이지만 왜 저럴 수밖에 없는지도 고민해야죠. 흡연자들이 피해를 주지 않고 피울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 회사 건물에도 흡연 시설 하나 없잖아요. 옥상도 안 되고, 흡연 부스도 없고. 그러니 다들 여기까지 내려오잖아요.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사회 시스템을 보면 좋겠어요. 담배라도 없으면 직장인들 못 버팁니다. 폐암 걸리기 전에 스트레스로 먼저 쓰러져요.”


그 말을 떠올리며 나 과장은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음미했다. 저기 멀리서 타 대리의 윤곽이 보였다. 타 대리는 나 과장의 뒤를 따라 나온 모양이었다.

“나 과장님, 죄송해요.”

“네가 뭘 죄송해. 담배 한 대만 줘봐.”

“과장님 담배 안태우시잖아요.”

“그냥 하나 줘.”

“과장님… 드릴 말씀이 없네요. 여기요. 이 동그란 부분을 이로 꾹 깨물면 멘솔 향이 나요.”


불이 붙자, 담배 끝은 붉은 사파이어처럼 빛났다. 나 과장이 한 모금 더 깊게 빨아들이자 사파이어는 스멀스멀 입 쪽으로 번졌고, 니코틴은 그의 혈관을 타고 사파이어처럼 번들거렸다. 손끝과 발끝이 얼얼해지며, 순간 현기증이 몰려왔다.

“어, 과장님 괜찮으세요?”

“오랜만이라 핑 돈다. 아무튼...”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비결이 도대체 뭐냐?”

“비결이라니요?”

“아니, 대상자도 아닌데 어떻게 승진했냐고. 그런 거 있으면 나도 좀 가르쳐 줘.”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런 거 있으면 미리 다 말씀드렸죠. 일관성 없는 회사가 그냥 거지 같은 거죠."

“그러니까 그 거지 같은 회사에서 나도 좀... 잘 좀... 지내보고 싶단 말이야...”

“그런데 말인데요... 그건 좀 필요한 거 같아요. 과장님.”

“그래, 그게 뭔데?”

타 대리는 전자 담배를 깊게 빨아드리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무심함.”

“… 뭐?”

“무심함입니다, 과장님. 저는 회사에 오면 모든 감정과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그러면 버틸 수 있어요, 직장생활을.”

“무슨 소리야. 아니, 그게 아니라, 무슨 야로를 쓴 거냐고? 빽이라도 있어? 아니면 정치력이 좋은 거야? 그런 비결 말이야.”

“과장님, 몇 전에 유행한 유튜버 중에서 ‘소울리스좌’ 아세요?”

“뭐?…무슨좌?”

타 대리는 휴대폰에서 유튜브를 열고 소울리스좌를 입력했다.

“여기 보세요. 소울리스좌. '다 젖습니다' 그 영상 하나로 떡상해서 난리였죠. 초점 없는 눈동자, 영혼 없는 속사포 랩, 흐느적 리듬. 그런데 또 묘하게 귀엽죠. 요즘 애들은 직장에 영혼을 갈아 넣지 않아요.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요. 어쩌면 직장보다 소중한 게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럼 프로 의식은? 모든 일엔 최선을 다하고, 순간에 집중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야 인정도 받고, 돈도 벌고, 성과도 내는 거잖아.”

“이제는 성과를 내는 길이 다양해졌잖아요. 영혼까지 갈아 넣을 필요가 없는 거죠. 여기 보세요, 소울리스좌. 영혼을 쏟지 않아도, 애써 준비하지 않아도, 누군가 찍은 영상 하나로 인생이 바뀌기도 합니다. 적어도 과장님처럼 몸과 마음 다 바쳐놓고도 오늘 같은 꼴은 안 당했겠죠. 직장이란 게, 개처럼 충성하는 사람 뒤통수치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니까요.”

나 과장은 다시 어지러움을 느꼈다. 오랜만의 담배 때문인지, 타 대리의 건방지지만 뼈 있는 말 때문인지, 아니면 충성을 다했음에도 차장 승진에서 밀려난 현실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모든 게 한꺼번에 몰려온 탓일 것이다.

나 과장은 마지막 한 모금을 필터 끝까지 빨아들였다. 마지막으로 붉게 타오르는 사파이어를 집게손가락으로 털어냈다.

“휴… 멘솔은 나랑 안 맞네. 타 대리, 팀장님한테 전해줘. 나 오늘 조퇴한다. 몸 상태가 영 별로야.”

“알겠습니다, 과장님. 오늘은 푹 쉬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팀장님께는 제가 잘 말씀드려 놓을게요.”



‘요즘 애들은 참 당돌하다. 다음 주부터는 저 녀석이랑 같은 ‘과장’이라니… 이번엔 정말 승진했어야 했는데. 집에 가서는 뭐라고 말하지….’

조퇴를 했지만 발걸음은 집으로 향하지 못했다. 일찍 가 봐야 아내도 딸도 없는 빈집일 뿐. 시간은 점심도 저녁도 아닌 어정쩡한 때였다. 결국 그의 발은 무심히 움직이다 익숙한 청록색 간판 앞에 멈췄다. 회사 근처 스타벅스. 한가한 주문대에서 커피 하나를 주문했다.


- 나대리 고객님, 주문하신 따뜻한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익숙한 공간인데도 낯설었다. 있어서는 안 될 공간에 혼자 앉아 있는 느낌. 이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나대리”라고 부르는 저 친절한 목소리가 특히나.

나 과장은 휴대폰에서 스타벅스 앱을 열었다. 계정 정보의 닉네임 변경 란에 손가락을 올렸다. 아주 조심스럽게, 은밀하게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눌렀다.


ㄴ ㅏ ㅊ ㅏ ㅈ ㅏ ㅇ


마치 새벽 그믐달이 서쪽 하늘로 사라지듯.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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