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하는 날
우리 여자 넷은 두바이에 무사히 도착해서 좋아하고 있는데 남편한테 카톡이 날아왔어. 사진 속에 우리 차 앞 범퍼가 다 떨어져 나가 있더라고. 맥도널드에서 저녁 사 오다가 사고가 났다는 거야.
이런, 여행 시작 첫날, 뭔 일이야? 여행동안 우리 걱정은 했어도 남편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 우리 집 앞에 맥도널드 가는 길은 정말 한산해서 운전면허 시험장 보다도 차가 없는데.
저녁으로 맥도널드를 먹기까지도 엄청난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는 거야. 그냥 캠프 안에 있는 버거집을 갈까? 맥도널드에 들어가서도 건너편 버거킹을 보면서 버거킹을 갈걸 그랬나? 후회를 했대.
그러면서 한 얘기야. 남편은 집에서 브레인이 스탑 상태거든. 뇌를 쓸 이유가 없대. 내가 하자 하면 하는 거래. Power J임에도 불구하고 Power P인 나와 살기 위해서 자기는 부인 계획을 따르는 게 자기의 계획이래. 그러면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대. 그래서 자기는 집에서 뇌를 꺼놓고 산다고.
그러다 내가 없으니까 뇌를 다시 돌려야 했던 거지. 저녁 메뉴 정하는 거부터 난관이 있었대.
하필 여행 14일 중에 그것도 첫날! 한 첫 번째 결정이 불러온 결과가 차 사고였던 거지. 다행히 앞 범퍼만 날아갔고 차에 충격은 없었대. 그래서 몸에도 전혀 충격 없었고 다친대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웃음이 나더라.
생각해 보면 남편은 뇌를 안 쓰고 나는 몸을 안 쓰잖아. 우리가 여행을 떠나서 혼자 남은 남편은 뇌를 다시 돌려야 하는데 작동에 어려움이 있었던 거지. 나는 또 웃긴 게, 아직 몸을 쓰지도 않았는데 여행 전날 왼쪽 어깨 날갯죽지에 담이 어찌나 심하게 들었는지 5일이 지난 지금도 아파. 여행은 시작도 안 했는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니까. 4명분의 짐도 싸고 내가 다 들어야 하고 에어비앤비 체크인도 하고 장을 봐도 내가 들고, 택시 아저씨랑 대화도 하고 모든 주문과 결제도 하지. 원래 하던 밥도 하고 빨래도 매일 돌려야 하고 말이지. 화장실 전등이 떨어진 것도 데렁데롱 매달려 있는 거 내가 직접 다시 올려놓고 샤워기 헤드 떨어진 것도 다시 붙였다니까! 이거 처음 봤을 때는 집주인한테 연락해야 하나 한참을 쳐다봤어. “문제가 생긴다? 남편을 부른다!” 이 회로가 빛의 속도라 내가 직접 하면 된다는 걸 그 사이에 끼워 넣는데 시간이 걸리더라고. 해보니까 집주인 불렀으면 민망할 만큼 간단하더라고. 내 일상에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많을 지 아찔해진다. 남편 없는 여행은 머리보다 몸을 압도적으로 더 많이 써야 하는 행동파형 여행이라고 볼 수 있지.
어제는 애들이 두바이몰 서점을 가자고 해서 너네가 산거 직접 들고 다니겠다는 약속을 받고 갔어. 끝까지 군소리 없이 들고 다니더라고. 집에 들어오면서 덥고 무겁고 힘들어하는 애들을 보면서 그랬어. “생각해 봐라 얘들아. 지금 아빠가 있었으면 그 짐 누가 다 들고 있었겠니?” “아빠지.” “그럼 우리는 아빠 힘든 줄 모르고 덥다 덥다 우리 더운 것만 생각했겠지? 집에 들어가서 지친 아빠를 보고는 ‘아빤 왜 저렇게 힘들어하지?’ 이랬겠지? “ 아무도 반박하지 않고 서로 보면서 씁쓸하게 웃었다니까.
여하튼 남편이랑 나랑 찢어져서 남편은 뇌를 재작 동시 키느라, 나는 안 쓰던 몸 쓰느라 우리 각자 고군분투 중인 게 웃기더라고.
우리 이제 평소에 적절히 이 부하를 배분해서 균형 있게 뇌도 몸도 잘 굴려보자. 서로의 고충도 이해를 좀 해보고 말이야.
근데 여행이 더 길어지면,
너도 소파와 한 몸이 돼서 몸 안 쓰는 달콤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고
나는 지친 너의 눈치를 보느라 뇌에 번뇌를 주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에 취할지도 모르지!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 얼른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