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도 여행자처럼, 가능할까?

by 알깨는 아줌마

가본 곳을 왜 또 가고, 먹어본 걸 왜 또 먹을까.

세상엔 가볼 곳이 얼마나 많고, 레스토랑은 또 얼마나 다양한데.

분위기 좋은 곳, 색다른 곳을 찾아가야지.


예전엔 여행이란 낯선 곳을 찾아가는 거라고 믿었다.

안 가본 도시, 안 먹어본 음식, 안 해본 경험을 꽉꽉 채워야만 비로소 여행다운 여행이라 생각했다.


지금 나는, 2년 가까이 살았던 두바이에 다시 와 있다.

도장 깨기도, 새로운 경험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곳에서 별 계획 없이 보내고 있는 이번 여행은 뜻밖에도 아주 마음에 든다. 여행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우리의 시간을 채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자유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익숙한 마트에서 장을 봐서 해 먹는 저녁이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진다. 해 질 녘, 단지 안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평화롭다.


아침 식사를 아이들이 천천히 준비하게 두고, 오전엔 집이나 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도서관에서 점심 먹고 조금 더 앉아있으려고 하면 막내가 지루해 몸부림을 치는데 그 모습조차 따뜻하게 바라보게 된다.


저녁이 되어, 한국 마트에서 배달시킨 호박고구마를 굽는 냄새가 집 안에 퍼질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향이 달콤한 건지, 내 마음이 달콤한 건지. 이럴 때는 행복하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거… 다 집에서도 했던 것들 아닌가?


여행이 특별했던 건 낯선 풍경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장소와 공간은 거들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짐이 적고, 그릇도 옷도 몇 개 없으니 치울 것도, 해야 할 일도 줄어든다.

그러다 보니 고구마 하나 굽는 냄새에도 마음이 멈춰 설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속도, 집중, 감각.

조금 더 천천히 움직이고,

하루의 한 부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써보고,

이렇다 저렇다 규정지어지지 않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작은 냄새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집에서도 우리는 잠깐씩 여행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식탁 자리를 바꿔 앉아 본다든가,

창가에 작은 차 코너를 만들어 본다든가,

아이들과 새로운 나라의 음식을 시도해 본다든가.

낯선 음악을 틀어두는 것만으로도

집이 조금 달라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 리듬을 조금씩 시도해 볼 생각이다.

아침을 더 느긋하게 준비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시간을 지켜보고,

안 해본 것들을 하나씩 시도해 보면서

나로 존재하는 시간을 일상 속으로 끌어와 보고 싶다.


고구마 구워지는 냄새에도 김이 모락 나는 노란 속살을 떠올리면서

행복하다고 말해도 될 것 같은 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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