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던 글쓰기에서 살아가는 글쓰기로

by 알깨는 아줌마

2019년에 썼던 글을 소환해 본다. 그때 우리는 두바이에 온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이었고 막내가 두 돌이 안 됐을 무렵이었다.


매일글쓰기 그룹에 신청을 했는데
딱 작심삼일, 숙제를 하듯 글쓰기를 하고 이틀을 못 했다.

이유는,
쓸 게 없었다.
쓸 게 없는데 뭐라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재미도 없었다.

고민만 하다가 식구들 저녁을 먹이고 나면 시차 때문에 12시가 넘어가고 이내 나도 애들 재우다 잠이 들었고 또 낮 동안 고민을 하다가 애들이 와서 저녁을 먹고 나면 또 다음 날이 되어 있어서 ‘또 못썼네...’하고 체념한 채 잠을 잤다.

오늘은 주말이었다.
중동은 일요일에서 목요일까지가 주중이고 금토가 주말이다. 금요일에는 아침 9시~ 저녁 5시까지 메이드 겸 내니가 오는데 보통 12시까지는 청소를 맡기고 그 이후에는 남편이랑 둘이서만 외출을 하며 애들을 맡겼다. 일주일에 한 번 약 4시간가량의 자유시간인 셈인데 두바이에 온 초기에는 이케아, ACE 등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것들을 사는데 시간을 소비했고 얼마 전부터는 더 이상 살 것이 없어 이도 저도 아닌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둘이 집을 나와 일단 한국뷔페 식당으로 직행을 했는데 아침부터 갈 생각으로 쫄쫄 굶어서 가는 동안 이것저것 먹을 생각에 이미 위산이 분비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세 접시를 먹고 배가 꽉 찼을 때쯤 내니 얘기가 나왔다.
우리에게 7월부터 내니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그것에 관한 내용이었다. 내 마음 한편에 잘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불편함 같은 것이 있었는데 내니가 출근하기 시작하면 오전에 나가서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 “그럼 그 영어공부의 목표가 뭐냐, 차라리 여기서도 일할 수 있는 라이선스 따는 걸 목표로 하는 게 어떠냐” 고 김 군이 말했는데 “아니, 무슨 인터뷰 형식의 시험도 있다는데 영어도 안 되는 상태로 무슨 시험을 준비하냐... 그건 차 후의 일이고 그냥 영어 회화책 한 권 외우기를 할 거다. 주절주절 주절..... ”
이때부터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침묵이 흐르고 졸음이 몰려오고 하품이 나오고 잠시 각자의 생각타임을 갖게 되었다.
‘돈이 아깝나? 본인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건 아닐 테니 그냥 하던 대로 내가 좀 고생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나? 진짜 그만한 가치가 없는 걸까? ’ 등등등 이 상상 속 갈등상황을 표류하다가 이 문제의 민낯에 근접했다.

나는 내니로 인해 생기게 될 나의 시간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돈을 들이고 아이들을 내니에게 맡기고서 얻어 낼 그 시간을 허투루 쓸 수는 없으니 영어공부도 하고 운동도 해서 소비와 희생의 대가를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은데
영어책 한 권을 들고 나와 어느 카페에 앉아 외워지지도 않을 것들을 펴놓고 한숨짓게 될 상황이 답답했던 것이다.
차라리 몸은 힘들지언정 돈도 아끼고 애들도 엄마가 직접 본다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지금처럼 별생각 없이 힘들다 투덜대면 사는 게 나은 건 아닐까 고민했던 것이다.

내 불편한 감정을 김 군이 협조적이지 않아서라고, 그의 말투, 표정을 예민하게 끼워 맞추다가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이 확실하면 개의치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좀 더 명확하게 납득이 될 이유가 필요했고 그게 결국 얻게 될 시간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썩 마음에 드는 결론을 내리게 되면서

김 군에게 이 것들을 설명을 하고서
네가 해야 될 말은...
“아무것도 하지 마! 무슨 영어공부야! 잠자고 친구 만나고 맛있는 거 먹고 쉬고 그러기에도 빠듯한데!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 이거지~~라는 매뉴얼을 준 뒤(다시 한번 숙지할 것!)

불편한 마음은 사라졌고
내가 곧 얻게 될 시간을 활용해 볼 용기가 생겼고
내가 쓰기를 하는 이유도 명확해졌다.

잘 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말은 아직 진심이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내 감정을 이해하고 납득할만할 이유를 찾아서 앞으로 한 발짝 나가기 위함이 유일한 이유이다. 이 과정이 누군가에게 공감이 된다면 딱 거기까지가 나에게 큰 즐거움이 된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함도 아니고 더 잘 쓰고 싶고 더 많이 읽히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 어떤 다른 이유로도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때를 생각해 보면, 나는 내 감정을 스스로 납득이 되도록 하는데에 온 에너지를 쓰고 있었어. 당시에 글쓰기는 나에게 살아남기 위한 도구였던 것 같아. 아이들은 어렸고 낯선 곳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고, 내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붙잡으려고, 그래서 밤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잠들지 못하고 글을 썼어. 이게 나를 세상과 연결하고 삶을 지탱해주고 있다고 느꼈었거든. ‘나는 왜 이렇게 느끼는가’를 파고들면서 나 스스로를 구하려던 단계, 그래서 오히려 감정의 날이 지금의 글보다 더 강렬하게 살아있다고 느껴져.


2019년의 글에서 지금의 내가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느낄 수가 있었어. 나는 더 이상 버텨내고 증명하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는데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됐어. 이미 어느 정도는 나를 있는 그대로 품기 때문인 것 같아. 더는 버티지 않아도 되고, 증명할 필요도 없는 나로 변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아. 아마도 그래서 그때만큼 글쓰기의 절박함이 크지 않다고 느끼는데, 이제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품은 채, 세상을 관찰하는 이야기로 넘어가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이제 이런 나는

무엇을 써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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