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 양심의 부름과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피자배달 중이던 준호는 복도 한복판에 불러 세워졌다.
“거스름돈 주셔야죠. 아무리 애라고 해도 그렇지."
"드렸는데요?"
"그럼 우리 애가 거짓말했다는 거예요?"
아이의 아빠가 나와 상황은 일단락 되지만 준호는 왜인지 다시한번 초인종을 누른다.
"저 거짓말 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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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은 타인의 목소리가 아닌 내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이기 때문에 아무리 귀를 막아도 양심의 소리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이해하는 의미의 양심은 사회적으로 지켜야 하는 도덕규범이나 법적 규범을 어겼을 때, 그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도덕의식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의 양심을 엄밀하게 '나의 내면의 목소리'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한 사회가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적 인간상에 자신이 부합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느껴지는 '가책'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사회에 의해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감은 엄밀히 말해 나의 내면의 소리가 아닌 타인의 요구라는 것. 첫 장면에서 안준호는 거짓말 하지 않는 인물로 드러나지만 그의 양심이 진정 내면의 목소리로부터 비롯되었다고는 말 할 수 없다. 안준호는 사회적 기준에서는 정직한 행동을 했을지언정 정작 자신의 과거에 있어서 회피를 일삼았기 때문에 그는 아직 양심있는 인물이 될 수 없다.
D - 601
영창 근무 중인 준호. 남들 몰래 음란행위를 하는 군인에게 주의를 주고 있다.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박수소리에 급히 자리를 옮긴다. 소리를 따라와 보니 어둔 감옥 속에서 수차례 뺨을 맞고 있는 여자.
“그깟 돈 가지고 유난이야?”
남자에 의해 쓰러지고 만다. 여자는 준호의 두 눈을 바라보며 묻는다.
“준호야 엄마 안 도와주고 뭐 해”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악몽에서 깨는 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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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호의 악몽을 통해 그의 과거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준호의 아버지는 가정폭력범이었고 어린 준호는 그런 아버지에게 맞서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또다른 피해자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는 인물이다. 때문에 군입대 당시에도 엄마에게 이렇다 할 연락도 제대로 남기지 않았고, 술에 취해 제일 먼저 건 전화가 엄마임을 알아차리자 마자 끊어버리는 것이 그 이유이다. 안준호는 자신에게도, 자신의 엄마(그 여자)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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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양심의 의미를 두 가지로 나누어 구분한다. 일상적 의미의 양심과 존재론적 양심. 여기서 일상적 의미의 양심이, 양심의 가책이나 법적 과오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양심의 찔림 현상으로 나타난다면, 존재론적 의미의 양심은 사회적 규범을 위반했을 때 그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이 잘못된 방향으로 수행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현상이다. 이때 존재론적 양심의 부름은 조금 더 근원적인 책임 앞으로 우리를 불러 세운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를 불러 세울 뿐이다.
쉽게 이야기 해보자면, 존재론적 양심은 나의 과거에 대한 책임을 다하게 하는 내면의 부름이다. 우리 모두는 양심적인 사람이 되고싶어한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에게 더 나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부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통념에 발맞추는 것과 존재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말이다. 우리에게 있어 필요한건 사회의 도덕기준에 맞춘 양심보다는 자신의 과거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책임을 그저 마주하는 일종의 결의이다.
D - 599
탈영병 체포조, DP에 배정된 준호는 첫 번째 임무로 모텔에 숨어있는 탈영병, 신우석 일병을 체포하라는 임무를 받는다. 그러나 술 마시고 놀기 바쁜 선임과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취해갔고 그사이 신우석 일병은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다.
“XX, 재수가 없을라니까. 야,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는 거다. 서로 귀찮아지니까.”
준호의 분노는 신우석 일병의 자살과 본인은 관계없다는 듯 선을 그어 보이는 체포조 선임의 무책임한 태도와 언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람이 죽었잖아"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그의 얼굴을 내리치는 준호. 그러나 선임의 얼굴은 곧, 안준호 자신의 얼굴로 변한다. 그 모습은 마치, 신우석 일병의 죽음에 대해 일말의 책임도 느끼지 못하는 선임의 냉담함에 대한 응징으로 보였으나 실은 역겨울 정도로 냉정했던 과거의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안준호는 탈영병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 역시 ’자신의 삶으로부터 도망친 탈영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탈영병을 체포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구해야 할 또 다른 나로 인식한다. 또 그들을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삶에서부터 도망쳐야만 했던 이유를 찾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에게 있어 탈영병을 데려오는 행위는 곧, 자신을 구하는 행위와 동일시되는 것이다.
안준호는 어린 시절 부모의 비일관적인 양육에 의해 결핍이 형성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사회에서 건강한 삶을 살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성장에서 우리는 한 가지 희망을 발견한다. 우리 모두는 안준호와 마찬가지로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실수와 아픔(결핍)이 존재한다는 것. 우리는 이러한 양심의 부름으로부터 도망치는 '쉬운'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나의 아픔과 과오 모두를 끌어안아 줄 수 있는 존재 역시 나뿐이라는 걸 깨닫고 과거의 자신에게 화해와 용서의 관용을 베풀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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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st 수록곡, tell a lie 는 '양심과 책임'에 관한 음악입니다. 그래서 신우석 일병의 죽음에 대한 책임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는 자신에게 주먹을 날리는 안준호, 그의 죽음에 대한 마지막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선택한 탈영(시즌2, 4화), 자신을 막으려는 체포조와 싸우는 안준호(시즌2, 5화), 모든 책임을 다한 안준호와 과거에서 회피한 황장수의 대비(시즌2, 6화)까지 총 4번 장면에서 해당 음악이 재생됩니다.
+ 3번째 탈영병, 정현민 (호스트바 출신)은 문영옥에게 폭력을 일삼고 금전적인 요구를 하는 일명, 호구 공사 하는 쓰레기 입니다. 정현민은 안준호의 아버지를 투영한 인물로 묘사되고 그런 그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는 문영옥은 그의 어머니를 투영합니다. 그래서 안준호는 남자에게서 그녀가 벗어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 ‘4화 그 여자’에서 문영옥과의 관계가 사랑, 연민 그 애매한 감정인 이유 역시 엄마를 투영하기 때문입니다. 안준호는 엄마를 투영하는 여자, 문영옥을 도와주면서 엄마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려는 의지를 내비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