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필록 Nov 29. 2020

마트에서 파는 추억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찾아온 일자리

자취인으로서의 내 식단은 대부분은 배달음식이 차지하고 있지만, 될 수 있으면 음식을 해 먹는 습관을 들이고 싶어 정기적으로 마트에 들러 음식 재료를 사는 편이다. 연말 준비가 한창인 마트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일했던 시절의 생각이 났다. 그리움 한 숟갈 얹어 글을 적어본다.


꼭 지금같이 추운 연말이었다.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할 곳을 찾고 있던 때였고, 우연히 본 단기 알바 채용 글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마트에서 일하는 업무라는 내용만 듣고 지원서류를 제출했다. 다른 일보다 보상이 좋은 편이었고, 그 전에도 이런저런 일들을 해봤지만 마트에서는 한 번도 일해보지 않은 터라, 조금은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맡은 일은 어린이용 장난감 회사에서 파견업무 형식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수요가 늘어나는 완구제품들을 창고에서 찾고 진열대에 정리하는 일이었다. 우선 이틀 정도의 교육기간을 거치고,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쯤에는 드디어 현장인 마트에 손님이 아닌 직원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처음으로 내려간 지하 창고에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대형마트 하나에 들어오는 물건들의 수량에 놀랐고, 특히 내가 처리해야 할 장난감 박스들은 더욱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완구 파트를 담당하는 매니저님 말로는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고, 실제로 나중에 피크타임 때는 박스로 이루어진 산을 올라서 물건을 찾아야 할 정도였다.  


첫 이틀 정도는 '이게 무슨 죽노동인가'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나, 3일 차부터는 어느 정도 요령도 생기고 담당매니저님과 완구 파트에서 일하시는 여사님과 친분도 쌓여, 즐기면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여사님 같은 경우는 내가 들어온 날에 마침 완구 파트에서 일하던 직원이 갑작스레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혼자서 두 사람 몫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창고에서 내 브랜드의 물건을 찾으러 가면서 몇 차례 여사님이 해야 할 일들도 같이 거들어서 해주곤 했다.  


그런 나를 좋게 보았던 건지 원래 완구업체 단기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나는 매니저님과 여사님의 권유로, 정식으로 완구 파트 직원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단기 알바가 끝나고 나서도 1년 동안은 일할 자리를 찾았어야 했던 터라 나 또한 흔쾌히 수락했고, 빈자리를 메꿀 사람이 급했던 탓에, 별다른 절차 없이 마치 특채처럼 일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약 1년 간 마트 일을 통해, 그저 필요한 것을 사러 들르는 손님의 시선으로 보아왔던 일이 여기 사람들에겐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한 간절한 노동의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학 갈 돈이 없어 여기서 돈을 벌어 대학을 가고 싶다던 스물두 살짜리 동생, 나쁜 길로 빠질 만도 했지만 그래도 정직하게 일한 대가로 돈을 받고 싶다던 여자애들 무리,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좋아 매니저까지 꼭 하고 싶다던 쌍둥이 형들, 매일 같은 허리며 어개에 파스를 붙이고 다니면서도 일할 때면 늘 최선을 다해 쉬지 않았던 여사님들까지, 이맘때쯤 마트를 갈 때면 어김없이 그들의 얼굴이 생각나곤 한다. 


특히 이곳에서 만난 이십 대 초반의 어린 동생들과 술자리를 할 때면 그들의 속사정 하나하나가 너무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한참이나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으면서도, 그 당시의 나는 왜 그런 점을 알고도 나태함에 몸을 맡기기만 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완구 파트 바로 옆에 있던 문구 파트 그녀의 안부도 가끔 궁금하다. 마트에서 집까지 같이 걸어가던 길이 아직 생생하고, 우리가 손을 처음 잡았던 때의 따스함도 매번 새롭게 기억난다. 나의 어설픈 고백에도 낭만적이라 말하던 그 말투도 그대로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갈 예정이었던 그녀가 버킷리스트들을 말할 때의 눈 반짝임, 엘리엇 스미스를 나에게 처음 알게 해 주고, 언젠가는 영화감독이 되겠다던 당찬 포부를 그리던 그때의 그녀를 생각하면, 당시의 빛나던 젊음이 나는 가끔 그립다.


1년간의 마트에서의 일이 끝나고 나서도, 나는 완구 파트가 가장 바쁠 때인 어린이날이나 여름 물놀이 시절, 크리스마스 때면 잠깐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사적으로도 이곳의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문구 파트 그녀와는 그녀가 호주를 다녀와서 한 번의 만남을 가졌지만, 우리의 타이밍은 마트에서 일하던 때였다는 것을 확인했을 따름이었다. 가끔 카카오톡 친구로 남아있는 그녀의 안부를 프로필 사진으로나마 확인하곤 한다. 그녀가 원하던 바를 차근차근 이뤄나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을 1년에 한 번 이상은 가려고 하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가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다음 서울 여행에는 추억이 깃든 마트를 잠깐이라도 찾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일했던 곳 중에서 1년 이상을 일한 유일한 곳이었고, 일하는 사람들의 생기가 가득한 곳이라 지금도 마트를 찾아갈 때면 어딘가 모를 기운을 얻는 느낌이다. 나에게 대형마트는 물건을 사는 곳이기도 하지만 추억을 파는 곳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 냄새를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