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필록 Dec 16. 2020

낙조(落照)의 바다, 다대포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한 해를 마무리하다.

현대미술관에 새 전시를 보러 갔다가 시간이 남아 가까운 다대포를 찾았다. 사실 본가에서 다대포까지는 거리가 꽤 있는 편인 탓에 고등학교 때 이후 정말 오랜만에 찾는 곳이라 그동안에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했다. 


다대포(多大浦)는 말 그대로 '크고 넓은 포구'라는 뜻이다. 낙동강 하구의 끝에 위치한 해변으로 부산 대부분의 바닷가가 동해안의 특징을 가지는 데 비해 남해안 바다처럼 백사장의 면적이 넓고 수심도 얕은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또한 조수간만의 차가 큰 편이어서 내가 찾았던 오후 시간에는 더더욱 백사장이 넓어져 있었고, 추운 날씨였지만 바다를 거닐며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처음 만나는 다대포의 풍경은 갈대밭이다. 넓은 백사장 뒤편으로 조성되어있는 갈대밭이 다른 바다와는 다른,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연인과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곳이라고 들었으나, 코로나 여파로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 보이진 않는다. 사람이 붐비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날씨도 추운 데다 무언가 썰렁해져 버린 바다를 보니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내년에는 부디 인산인해의 풍경이라도 좋으니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앞서 다녀간 사람들이 남겨놓은 발자국. 내 흔적도 어딘가에 잠시 남았다 바람에 흩어지겠지.


갈대밭을 뒤로하고 해변으로 향한다. 해변에 남겨진 사람들의 발자국과 썰물이 빠져나간 갯벌에 뒹구는 조개껍질들을 밟아본다. 어느새 시간은 해가 저물 때가 되어가고,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다대포는 대부분 오후 늦은 시간에 일몰을 감상하려 찾는 곳이라고 한다. 동쪽에 따로 조성해놓은 공원의 이름도 '낙조분수'라는 이름이다. 해가 질 때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익히 들었기에, 기왕 온 김에 노을까지 보고 가기로 했다. (사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너무 추워서 차에서 몸을 좀 녹인 다음 다시 바다로 향했다) 다시 들어선 갈대밭은 아까 전과는 다른 빛깔을 내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빛에 반사된 갈댓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까지, 이제 확실한 겨울임을 느끼게 하는 운치 있는 풍경이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과 바람에 흐트러지는 갈대소리가 추운 날씨에 어울리는 운치를 자아낸다.


아마 이곳을 예전에 찾았을 때도 겨울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지만 같은 계절에 같은 장소에 도착하니 어렴풋이 그 당시의 기억이 났다. 한여름의 붐비는 해수욕장의 바다보다는 파도소리마저 차분하고 쓸쓸하게 들리는 겨울바다를 더욱 좋아했던 나였다. 언제부턴가 바다를 일부러 찾아서는 가지 않게 된 걸까. 바다의 도시에 살면서 이렇게 다채로운 각양각색의 바다들을 가까이 두고도 찾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바다가 뭐 별거야, 다 비슷하지.'라고 스스로를 가두었던 편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번 광안리와 대항을 다녀오고 나서 막연한 생각으로 '부산의 바다들'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이번 다대포 탐방을 통해 그 생각이 확실해졌다. 3번째 바다인 다대포 이후에 내가 찾을 각자의 얼굴을 한 바다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벌써 2020년도 한 해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이뤄진 것은 없이 시간만 가고 나이만 먹는 느낌이지만, 천천히 그 디테일을 들여다보면 내 생활에 많은 것들이 바뀐 해이기도 하다. 회사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고, (어쩔 수 없는 사정이지만) 이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고, 원래 인생의 가장 큰 목표였던 글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늦었지만) 시작하게 됐다. 무언가를 계획하는 것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인 것은 역시 지금도 똑같지만, 생애 처음으로 다이어리를 제대로 쓰고 있고, 혼자서 보내는 여가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알차게 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무엇보다, 어쩌면 처음으로, 내가 살아가는 삶을 이끄는 주체가 나 자신이라는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길게 보자면 100살까지 살아가야 할 인생의 3분의 1이 조금 넘은 지점에서, 터닝포인트가 될 한 해가 아니었을까 한다.


한 해를 시작하는 일출을 보는 것도 물론 시작하는 마음을 다지는 시점에서 좋은 경험이지만, 오늘의 일몰을 보며 저물어가는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 낙조(落照)의 바다 다대포에서, 기분 좋은 마침표를 미리 찍고 온 셈이다.


해 지는 갈대밭의 풍경이 인상적인 낙조의 바다, 다대포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박한 바다, 대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