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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필록 Dec 29. 2020

스스로의 아픔은 스스로가

이석원의 마음 치료기 [2인조]

이석원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그가 만든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다섯 번째 앨범인 [가장 보통의 존재]를 통해서였다. 사랑하던 사람과의 헤어짐에 아파하던 시기였던 2008년에 질리도록 듣고 또 들었던 앨범이었다. 이별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고 나자, 이렇게나 내 마음을 매만져주는 이 음악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이석원은 원래 가수를 하려던 사람이 아니었다. 철없던 시절에 장난 삼아 밴드를 한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언니네 이발관'이고, 의도치 않게 첫 앨범이 성공하는 바람에 음악의 길로 가게 된 것이다. 2017년 6집 [홀로 있는 사람들] 이후, 그는 뮤지션으로서의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음악을 하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고 하더라.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자, 더 이상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나를 포함해 그의 음악을 좋아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은퇴를 아쉬워했지만, 그보다는 본디 매우 예민하고 심약했던 그가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을 테다. 


지독히도 완벽주의자인 그가 만든 음악들은 매우 뛰어났지만, 그만큼 그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3집 이후 함께했던 동료의 죽음과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혼 등으로 개인적인 아픔을 겪었고, 그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채 음악을 만드는 것에 온전히 집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음반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함께 음악을 하던 사람들이 지쳐서 그의 곁을 떠나거나 크고 작은 다툼을 했다고 한다. 광기에 가까운 그의 완벽에 대한 집착이 만든 음악의 정수가 바로 5집과 6집에서 드러난다. 특히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는 '올해의 음반상'을 수여하는 등, 평단에서도 인정받으며 그가 단순히 인디밴드의 수장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음악인임을 입증하게 된다. 그러나 이 성공이 오히려 그 개인에게는 독이 되었던 것 같다. 아픔을 겪은 사람들은 아픔을 억지로 잊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서서히 아물도록 그 아픔의 순간을 잘 겪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개인적인 아픔들을 음악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을 택했지만, 그 방법이 그 개인적인 마음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뛰어난 감각을 가진 뮤지션을 이른 나이에 은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다섯 번째 책이자 네 번째 에세이인 [2인조]는 2017년 뮤지션으로서 은퇴 이후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의 병들과, 그 원인을 스스로 생각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자전적으로 다룬다. 먼저 그를 찾아온 것은 보행장애였다. 아무런 계기도 없이 찾아온 발바닥의 아픔으로부터 시작되어 걸을 수가 없게 되어버린 그는 이런저런 병원에 진료를 받아봤지만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한다. 어찌어찌 걸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갑작스러운 패닉 증상과 가슴 두근거림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는 스스로 2017년 6집 [홀로 있는 사람들]과 2018년에 발표한 그의 세 번째 에세이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의 실패가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음악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일종의 도피처로 삼았단 글쓰기조차 그에게 새로운 압박으로 다가오기 시작하고, 글쓰기에서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게 된 것이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두 가지 중 하나가 남았는데, 그 하나마저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옥죄어왔고, 결국 원인불명의 증상들에 시달리게 된 셈이다.


신경정신과를 다니며 약을 먹으며 상태가 호전되기도 했지만, 그런 그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돌볼 수 있었던 계기는 따로 있었다. 그는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정장을 사러 갔다가 우연히 눈에 띈 옷을 보고 무엇에 홀린 듯이 그 옷을 사게 되었다고 전한다. 마음에 드는 옷을 사고 입었을 때의 만족감이 그의 무너진 자존감을 일깨워줬을 것이다. 그 뒤로 그는 열정적으로 옷을 사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고, 자주 가는 편집숍의 매니저와의 사건을 통해 비로소 지독했던 아픔을 탈출하는 계기를 찾게 된다. 


편집숍의 매니저는 (응당 그러하듯) 이석원을 손님으로서만 대했다고 한다. 단골처럼 들르던 그가 요즘엔 어떤 식으로 옷을 입는지, 어떤 옷이 유행인지 매니저에게 물어봤을 때, 매니저의 대답에 이석원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그런 건 없다. 그저 손님이 입고 싶은 옷을 입으면 된다.'라는 뉘앙스의 대답이었다고 한다. 그제야 그는 그동안의 그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고,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평가를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한동안 자리를 비우고 보이지 않던 매니저가 다시 출근한 날에, '그동안 하시던 일은 잘 되셨냐'고, 평소의 그 같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질문을 하게 되었고,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잘 되지 않았다'고 말하던 그 매니저의 답변을 들으며 동질감과 함께 '이 사람을 위로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일을 계기로 편집숍의 매니저와 이석원 사적으로 조금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는 든든한 동지가 된 것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처음 쇼퍼홀릭이 됐을 때처럼 옷을 자주 사러 가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옷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연이 파괴되어야 하는지 알아버린 탓도 있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옷을 사는 행위를 통해, 매우 간단하지만 중요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의 성공에 언제나 함께했던 것처럼,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답게 살아가는 것. 다른 사람들의 조언이 득이 될 때도 있지만 독이 될 때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깨닫는 것.


그렇다. 그는 애초에 고집이 센, 외골수 같은 사람이었다. 모두가 믿지 않았던 '언니네 이발관'의 탄생과 성공이 그러했고, 평생 음악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에도 그랬다. 그는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만 했고, 했을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결코 판단을 섣부르게 하거나 대책도 없이 일을 저지르고 보는 무책임한 스타일은 아니다. 이 책의 제목이 [2인조]인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저 현실을 살아가며 희로애락을 느끼는 '나'와,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내는 '나'. 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인 셈이다. 그는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목소리를 언젠가부터 듣지 못했었고, 2019년 한 해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다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픔을 겪은 사람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썼지만,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었을 게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앞으로 그의 인생에는 방향을 정해주는 또 다른 자신이 있다는 점이랄까.


직장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과, 지금 내가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는 괴리감이 있다. 나 또한 나의 꿈과는 매우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기에, 내면의 소리를 들리지 않는 척하며 30대의 대부분을 지내왔다. 그리고 올해가 되어서야 겨우, 내가 하고 싶어 했던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에세이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고 하더라. 흔치 않은 직업과 흔치 않은 아픔을 겪은 그의 이야기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방식은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아픔을 겪고,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과연, 보이지 않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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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유한하고, 나는 그 유한성을 점점 더 절감해가는 나이가 되었어. 그러다 보니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만나기 위해 당장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기회는 어쩌면 영영 다시 오지 앟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지금.

(중략)

그러니 언제 올 지 모를 이별을 하기 전에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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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것들이 그러했듯이 나라는 글 역시 살아있는 한 계속 쓰여져야 하리라. 책 한 권을 십 년이나 고쳐야 하는 주제이니만큼, 사람인 나를 고치는 일은 평생 해야 하지 않을까. 


이석원, [2인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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