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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필록 Jan 15. 2021

2021년 첫 산행, 승학산

소소한 것이라도 실천이 중요한 법

대학생 시절에 동아리 활동을 '산악회'로 했던 덕에, 나는 서울 소재의 여러 산들(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관악산 등)과 우리나라에서 명산들로 꼽히는 설악산, 지리산, 태백산 등을 갈 기회가 있었다. 등산이 단순히 '운동'이 아닌 '취미'가 된 데에는 산악회에서 만난 좋은 인연들의 덕이 크다. 그러나 대학생활이 끝나고 직장인이 되면서 자연스레 등산을 하는 일은 나에게서 멀어지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산을 오르지 않았다.


올해의 신년 계획의 모토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을 때 하자'였다. 그리고 그중에 하나가 '한 달에 한 번씩 등산하기'가 있었다. 이번 달 첫 연차에 미리 계획해두었던 집에서 가까운 '승학산'을 찾았다. 제대로 된 등산은 대학 이후 정말 오랜만이라,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했다.


다행히도 날씨가 따뜻해서 등산하기엔 딱 좋았다.


승학산은 여느 지역 산들이 그렇듯 등반하는 데 여러 코스가 있다. 내가 선택한 코스는 당리역에서 출발하여 동원베네스트 아파트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가, 아파트 근처 등산로를 따라 정상을 찍고 하단역으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초입부터 정상에 가까운 곳 까지는 포장이 되어 있어 등산화가 없던 나에게도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지만, 평소에 운동을 게을리한 탓에 오랜만의 오르막길은 숨이 차고 땀이 절로 나는 일이었다. 좌우로 삼나무 숲을 끼고 가는 등산로에는 다행히도 중간중간에 나 같은 저질체력을 위한 벤치가 마련되어 있었던 터라 숨을 가라앉히고 떨어진 당을 보충해가며 꾸준히 오를 수 있었다.


울창한 삼나무 숲 아래서 바라본 시선


서서히 건물들이 멀리 보이기 시작하고, 바람의 온도가 차가워지기 시작한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시점이 되자 눈앞에 억새평원이 펼쳐진다. 승학산은 가을에 이곳 억새를 보러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이라고 한다. 탁 트인 전망을 보니 '그래. 이 맛에 고생을 해도 등산을 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쪽으로부터 동쪽까지 보이는 광경은 멀리 영도부터 남포동 일대, 하단을 거쳐 을숙도와 강서구 명지동 일대까지, 부산의 구도심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부산현대미술관' 관람 덕에 요즘 자주 들리고 있는 을숙도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험은 색달랐다.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로 채워진 대륙과는 달리, 몇 채의 건물만 있고 녹지가 아직 그대로 남겨져 있는 섬의 모습이 낯설다. 을숙도는 현재 특별 보존지역으로 남쪽의 지역 대부분은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철새들이 한 계절을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철새들의 쉼터인 을숙도(좌)와 엄궁동, 감전동 일대(우)


억새밭 능선을 따라 조금만 더 이동하면 승학산 정상에 다다른다. 대학생 산악회 시절 때부터 지켜온 철칙 중 하나를 오늘의 산행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당일치기 산행의 경우 꼭 정상에 도착해서 밥을 먹는다는 것인데, 고생하며 정상까지 올라온 데에 대한 나름대로의 보상이라고 하겠다. 산 정상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먹는 김밥만큼 맛있는 김밥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상에 도착해서 김밥을 먹으려던 와중에 먼저 도착하신 어르신들 일행이 '총각'이라고 나를 부르며 귤과 커피를 나눠준다. 사실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보내려 온 것이지만 이런 따뜻한 마음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귤은 어르신들과 같이 간식을 먹고 있단 여학생 두 분이 나눠준 것이라고 하신다. 두 분의 풋풋한 여학생들께도 감사인사를 드렸다. 1인분의 먹을거리만 가지고 온 탓에 내가 나눠줄 것이 없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다음번 산행에는 간식거리를 여유 있게 가지고 와야 할 모양이다.


정상까지 오르는 데 평소에 안 쓰던 다리 근육을 갑자기 많이 쓴 탓에, 내려오는 길에 몇 번이고 다리가 풀릴 뻔하기도 했지만(대부분의 등반사고는 하산길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예정된 코스로 무사히 하산에 성공했다. 총 3시간 30분 정도의 짧은 산행이었지만,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소소하게나마 해냈다는 점에 만족한다. 올 가을에 억새가 만발한 승학산에 다시 오를 것을 기약하며, 2021년의 첫 산행의 완료를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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