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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필록 Jan 25. 2021

동상의 추억

상처는 완전히 아무는 것이 아니라 잠복해 있는 것

스무 살까지는 부산, 대학교 시절 1년 반 남짓을 서울에서 잠깐 생활하던 나는 2003년 대한민국 대부분의 남성이 그러하듯 군대를 가게 된다. 논산훈련소와 전남 장성에서의 후반기 교육을 수료한 후에 가게 된 자대는 경기도 포천에 위치해 있었다. '경기도'라 하면 으레 서울 근처겠거니 했던 나에게 포천에서의 2년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추위가 찾아오는 곳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 아직까지도 겨울이 되면 한 번씩 그때의 고통스러움이 생각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강추위로 유명한 지역 중 하나인 '철원'과 바로 인접한 곳이기에 한겨울에 영하 20도쯤 내려가는 일은 대수롭지 않았고,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던 '쌓이는 눈'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 쓰레기'로 부르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그때의 겨울을 기억하는 것은 그곳에서 얻은 지병 중 하나인 동상 때문이다.


아무리 감싸도 소용이 없을 정도의 강추위를 겪고 나서 생긴 귀와 발가락의 동상은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도 찬바람이 부는 날이면 다시 재발을 하곤 한다. 지난 강추위 때 방심하고 밖을 돌아다녔더니 금세 귀가 빨갛게 부어올랐고, 서랍을 뒤져 언제 샀는지도 모를 동상 연고를 발라야만 했다.


무슨 까닭일까, 오늘 책을 읽다 문득 사람이 받은 상처는 완전히 아물어서 낫는 형태의 것이 아니라, 상처 받았을 때와 비슷한 조건이 되면 다시 그때의 상처가 나타나는 동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하게 잊고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마음의 상처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다시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아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그 아픈 순간들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자꾸만 피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그나마 그 상처가 나은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옳은 방법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글쎄... 그것은 상처를 받은 사람의 아픔이 각자 다를 테고, 그것을 겪고 치료하는 방법이 또 각자 다를 것이라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잘못된 것인지 함부로 말하기가 곤란한 질문인 것 같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내가 매년 겨울이면 작은 추위에도 동상에 걸릴까 손바닥으로 귀를 움켜쥐는 습관이 생긴 것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 이런 종류의 상처는 될 수 있으면 주지도, 받지도 않는 것이 옳다. 나의 기준에서는 장난스럽게 웃어넘길 수 있는 말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나를 떠올릴 때마다 아픔이 되기도 할 테니, 오래 생각하고 곱게 말하는 사람이 되도록 애써야겠다. 




겨울이 지나기 전에 동상 연고를 새로 사야겠다.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났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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