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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은 Jan 27. 2021

#8 부모가 되어가는 중이다

부모는 그냥 되는 줄 알았다

  언제 부모가 되는 걸까? 


  무심코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 경우,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덜컥 부모가 됐다. 말 그대로 어제까진 부모라는 느낌이 없었는데 별안간 부모가 된 것이다. 임신 기간 동안 부모의 마음가짐을 갖진 않았냐고 누군가 물으신다면. “네, 저는 준비된 부모는 아니었어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는 ‘어른스러워야 한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 정도로만 인식했으니, 다른 사람들하고 별반 다르지 않았던 거 같다. 


  물론 아이들을 만나서 부모상담을 한 경력이 있으니, 나름 ‘건강한 부모상’ 정도는 갖고 있었다. ‘아이에게 ~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지.’, 혹은 ‘권위주의적인 부모가 되진 말아야지.’하는 정도였달까? 


  하지만 그건 ‘인식’의 수준이었지, 엄밀히 말하면 피부에 와 닿는 ‘내 얘기’는 아니었다. 아이를 출산하고는 아이의 리듬에 맞추기에도 버거워서 헐떡거리며 질질 끌려가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러니 부모의 대한 철학이나 의미 따위는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3년을 훌쩍 넘겼던 것 같다. 내가 먹을 음식도 변변히 차려내지 못했던 내가, 이유식이나 유아식이니 하는 것들과 씨름하는 시간까지 다 합친다면 시간은 눈 깜짝할 새 흘러버렸다. 게다가 첫 아이 때는 얼마나 유난이었겠는가. 잘 알지 못하니 호들갑만 떨었더랬다. 이유식 책자에 나온 g을 하나하나 맞추기 위해 열과 성의를 다 하느라 3일 치 이유식을 만드는데 하루가 꼬박 걸렸으니. 이런 비효율적인 시간을 보내는 건 다반사였다. 


  그러다 어느덧 아이와 배변훈련하는 시기에 돌입하게 되고, 어린이집을 적응해야 하는 전쟁 같은 시간도 보냈어야만 했다. 아침마다 울고불고 이산가족이 따로 없는 그 이별과 상봉의 순간들이, 그때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힘겨운 나날들이었다. 


  이제 겨우겨우 적응해서 내 일 좀 해볼까? 싶을 때, 둘째가 난데없이 ‘나 여기 있어요~’하며 손을 흔들었으니. 솔직히 말하면, 30대 중반까지는 저녁 5시 이후에 나가본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이러니, 고상하게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를 생각할 겨를 따윈 없었고, 하물며 부모 철학은 누구 집 이름인가요? 할 정도의 시간들을 보냈었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럼 난 그 시간들을 무뇌(뇌가 없는)로 보냈을까? 


  분명히 말하건대, 그건 아니었다. 나는 적어도 10살까지는 아이들이 안아달라고 할 때, 그 손을 뿌리치지 말고 안아줘야지(10년이 지나면 내가 안아달라고 해도 도망갈 꺼라 생각했으니까) 하고 생각했었고, 하루 2끼는 최소한 밥을 먹여야 한다는 나름의 규칙을 세우기도 했으며, 실랑이를 하더라도 아이와 한번 갈등이 생기면 그날 끝까지 얘기를 해서 내일로 넘기지 말아야지(남편과는 몇 날 며칠 싸우더라도 상관없었으면서.) 하는 원칙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하는 반복적인 말들과 번거로운 일들에 대해 귀찮게 여기지 말아야지(왜냐, 애들은 한번 말해서 절대로 바뀌지 않으니까) 하는 마음을 비롯해서, 아이에게 화를 내더라도 절대 손으로 때리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도 했었다. 한번 아니라고 한 것을 나의 편의로 허용하는 비 일관적인 양육태도는 역시 하지 말아야겠다는 등의 양육 기준까지. 


  이제껏 살아오면서 하지 않았을 많은 원칙과 규칙 들을 세워나갔었다. 사실 이 모든 건, 나와 남편 둘이 살 때는 전혀 고려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나는 분명 보이지 않게 서서히 부모가 되어가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별안간 들었다.


  실제로 나는 그랬다. 중세기의 암울한 시대를 사람들이 암흑기라고 말하는 것처럼, 출산 후 내가 아닌 존재로 살아온 그 시간들이 내게는 암흑기처럼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다. 아이는 존중받아도 나는 존중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 시간 동안 숙성되어지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기적처럼 어느 순간 부모가 된다거나, 드라마틱한 사건을 통해 부모로 변모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는 ‘서서히 되어가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 암흑기를 통해, 소소하게는 야채 채 썰기를 잘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으며(매일같이 잘게 야채들을 채 썰어야 하니 자연히 채썰기 달인이 되더라 라는 슬픈 얘기), 아이를 양육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사건사고를 통해 자연히 쌓여져 가는 양육기술까지 섭렵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매 순간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겪었던 희로애락은 지금의 내 양육 철학을 짜임새 있게 구성해준 재료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이가 없을 때의 나와 두 아들의 엄마인 내가 따로가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까지, 나 역시도 성장하느라 바빠서 쉽게 눈치 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저 나는 ‘부모가 되어가고’ 있었고, 지금도 ‘부모다워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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