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할수록 쉼표가 많아진다.
정류장의 발전은 인류의 발전을 보는 것과 같다. 벽돌, 철, 플라스틱, 알루미늄 등 작은 건축의 압축판이다. 다섯 살 때 벽돌로 만들어진 시골 버스 정류장에 걸터앉아 여기저기 죽어있는 벌레더미들을 보곤 했다. 플라스틱과 철로 바뀌면서, 산업 발전의 영향인지 벌레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서울에 오니 버스 정류장이 아주 많다. 버스도 분 단위로 언제 오는지 전광판에 뜬다. 카드를 찍고 올라타면, 겨우 두 블록 건너 또 정류장이 있다. 정류소는 촘촘하게, 어디에든 있다. 사람이 가는 게 곧 길이라더니, 이제는 사람이 가는 곳이 곧 정류장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잘 못 쉰다. 일을 끝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마침표에 대한 기준이 높다. 그래서 또 다른 문장으로 쉼표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호기심도 많아서 문장도 산만하다. 이것을 좋게 말하면 천재, 나쁘게 말하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라고 한다.
조지 폴리아는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더 쉬운 문제가 항상 존재한다”라고 했다. 할 일이 많고 복잡한 만큼 목표를 잘게 쪼개고 기점을 잡으면 된다. 인구 빈도가 높을수록 정류장을 세워놓듯이, 여러 목표에는 반복되는 행동들이 있다. 그 행동 사이사이에 쉼을 끼워 넣으면 된다. 1시간 30분마다 노트북을 손에서 떼고 산책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게 곧 습관이 된다.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류장은 발전을 거듭한다. 하지만 정작 발전이 필요한 곳인 지방은 정류장이 여전히 적다. 호흡도 그만큼 길다. 해야 할 일도 단순하다. 일에 집중하기 쉽다. 복잡한 서울에 살지만, 지방에서의 호흡과 닮아있을수록 성취가 높다. 그 복잡함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삶을 끊임없이 찾으려 역행한다. 복잡한 곳일수록, 쉼표가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아크릴 판 의자에 앉아, 엉덩이를 따듯하게 덥힐 수 있는 계절이 그렇게 오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