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군의 그림 <그리운 날에>를 읽고
‘그림은 본다, 음악은 듣는다’는 표현이 문법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림을 읽고 음악을 읽고 마음까지 읽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천천히, 찬찬히 깊이 새기며 보고 듣고 헤아린다는 뜻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다는 말은 어디에도 잘 어울린다.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마장도서관은 2023년을 ‘책 예감: 23’으로 선포했다. 예감은 예술 감성을 줄인 말이다. 책도 읽고 예술 감성도 올리고 이런 뜻 같다. 마장도서관에서 예감 프로젝트 중의 하나로 미술 작품을 매개로 글을 쓰는 강좌가 있어서 참여했다. 8차시 수업으로 진행되는데 매 수업에서 예술감상의 태도에 관한 강의를 잠깐 듣고 그림 하나를 함께 감상한 후 짧은 글쓰기를 하고 글을 발표하면서 느낌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수업의 핵심은 감상과 글쓰기에 있다.
그림에 대한 분석이 주가 아니어서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글을 쓰므로 큰 부담은 없다. 하지만 그림을 본다고 다 감상이 떠오르고, 감상이 있다고 해서 글이 쉽게 쓰이지는 않는다. 나는 이 수업이 뭔가를 가르쳐 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막상 와 보니 직접적인 가르침보다는 감상을 나누는 것이어서 좀 당황스러웠다. 4차시를 지나는 동안 그림을 보고 있어도 감흥이 별로 없었다. 나와 접점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하며 쓰기보단 짓기를 하고 있었다.
5차시에 감상한 그림은 고재군의 <그리운 날에>였다. 이 그림에는 미루나무가 양쪽으로 자리한 비포장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가 그려져 있다. 보자마자 순식간에 어릴 적 어느 때, 어떤 곳으로 이동했다. 포플라라고도 불리는 미루나무는 추억을 소환하는 마법을 부린다. ‘그리운 날에’라는 화제(畫題)는 소환 마법을 더 강력하게 하는 주문이다. 나는 다른 때와 달리 아주 쉽게 글을 쓸 수 있었다.
고재군 <그리운 날에> oil on canvas,
https://instagram.com/artist_kojaegoon?igshid=YmMyMTA2M2Y=
추억 #1 미루나무 꼭대기에 걸린 빤스는 내 것이 아니다
미류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 있네
솔바람이 몰고 와서 살짝 걸쳐놓고 갔어요 ♪♭
뭉게구름 흰 구름은 마음씨가 좋은가 봐
솔바람이 부는 대로 어디든지 흘러간대요 ♬♩
고재군의 <그리운 날에>를 보는 순간 이 동요가 떠올랐다. 박목월 작사에 외국곡인 “흰 구름”이라는 동요로 국민학교이던 시절 음악 교과서에 실려있었다. 사내애들은 여자애들 특히 치마를 입은 여자애가 지나가면 ‘미류나무 꼭대기에 XXX 빤쓰가 걸려 있네’로 노랫말을 바꿔 부르면서 놀려댔다. 놀림을 받은 여자애는 울거나 근처에 있는 것들을 집어던지며 항의하고는 했다. 이런 이유로 예쁘게 원피스를 입히려는 엄마에게 속사정은 말 못 하고 바지를 입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었다.
학교 밖에서 유독 나만 보면 괴롭히던 머시매가 있었다. 주로 미루나무 빤스 어쩌고 하며 말로 놀리거나 아주 작은 뭔가를 집어던졌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안 듣고 잡으러 쫓아가면 아주 잘 달아났다. 아프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나는 약이 오르고 속상해서 울었다. 어느 날 뭔가가 내 뒤통수를 때렸는데 하필이면 작은 돌멩이였고 또 하필이면 엄마가 옆에 계셨다. 그날은 제법 아팠지만 너 오늘 잘 걸렸다 싶으니 화도 눈물도 안 났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 엄마한테 혼날 일이 걱정이었던가 사색이 된 그 머시매가 있었다. 엄마는 크게 안 다쳤으니 괜찮고 머시매들은 좋으면 저런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에 분해서 울었다. 이제는 그 남자애 이름도 성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낡은 사진처럼 삽화처럼 그림처럼 그 순간이 스쳐 지나간다.
추억 #2 내 마음속에 미루나무 늘어선 신작로 하나를 품고 있었던가 보다
먼지 폴폴 날리는 비포장 시골길을 느릿느릿 달리는 완행버스 안에 내가 있다. 몇 살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마 여름휴가로 해수욕장에 놀러 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에어컨은 없던 시절이라 창문을 열고 달렸다. 한여름 한낮 더위에 바람은 그리 시원하지 않았다. 버스가 멈출 때면 그제서야 아까 그 시원찮은 바람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새삼스러웠다.
덜컹대며 굴러가는 차바퀴 소음, 흥분에 겨워 떠드는 소리, 훅훅 끼쳐오는 땀내와 열기에 놀라 어지럽고 메스꺼웠다. 완행이라 정차하는 곳이 많은 게 다행이었다. 잠시 멈춰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와중에 아이스케키를 파는 상인들이 버스 주변으로 다가왔다. 쭉쭉 짜 먹는 놈 하나는 손에 쥐고, 핥아먹는 놈 하나는 입에 물고 먼지 나는 길을 흔들리며 바다에 도착했다.
손과 입, 머리카락에 끈적거리는 것을 묻힌 채 버스에서 내렸다. 바다는 문자 그대로 눈이 부셨다. 또 뜨거웠다. 모래가 샌들 사이로 들어와 꺼끌거리고 뜨거워 깡총거렸다. 모래사장을 맨발로 디딜 수가 없어 찡그리고 섰던 나를 언니랑 오빠가 안아서 바닷물이 닿은 곳까지 데려갔다. 언니랑 오빠는 소리를 지르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언니랑 오빠도 뜨거웠는가 생각했다.
밤이 되어도 낮에 달궈진 바다와 모래사장은 쉽게 선선해지지 않았다. 얼음장같이 찬물로 샤워를 했지만 금방 땀이 났다. 날은 더운데 물은 왜 그렇게 찼을까. 지하수여서 그런 거였겠지만 그때는 그런 걸 몰랐다. 더워도 머리카락은 얼른 마르지 않아서 얼굴에 척척 들러붙었다. 나중에 머리카락이 다 말랐는데 땀 때문에 다시 젖은 것인지 끝까지 마르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무더운 한여름 밤이었다.
저녁으로 커다란 쟁반에 담긴 토종닭 백숙을 먹었다. 닭이 너무 커서 접시 같은 데는 담을 수 없었던가 보다. 나를 과연 먹을 테냐고 항의하듯 닭발은 하늘을 향해 있었고 털이 뽑힌 대가리는 몸통 옆으로 꺾인 채 눈은 반쯤 떴는지 감았는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시골 큰집에서 수탉한테 쫓긴 적이 있어서 닭을 무서워한다. 닭을 먹지도 않고 냄새만 맡아도 도망간다. 그런데 닭백숙이라니. 아 정말 짜증 제대로다. 나는 그때 진심으로 행복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랬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이 그림을 보니 그때가 그리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뜨겁고 먼지 날리던 길을, 커다랗고 무섭고 징그러운 토종닭 백숙을 언니랑 오빠랑 함께 가서 먹고 싶다. 이제는 언니랑 오빠가 나를 안아 모래사장을 건네 줄 수 없다. 내가 엄청 컸기도 했고 나이가 많아서 당신들 한 몸 건사하기에 벅차다. 부디 건강하시라. 토종닭 백숙 먹으러 가십시다.
이 글은 수줍게 건네 보는 고백 편지 같은 것이다. 언니랑 오빠들이 아니었다면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노릇에 바쁜 엄마의 빈자리를 어찌 견디며 컸을까 싶은 고마움이 새삼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