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그것은 태극기였다. 나의 온몸은 마비되는 듯이 굳어졌는데, 몇몇 동지들은 태극기를 향해서 엄숙히 거수경례를 하고 있었다. (···중략···) 휘날리는 기폭마다 나의 뜨거운 숨결이 휩싸여 안겼다. 그리고 태극기의 기폭은 임정청사가 아닌 조국의 강토를 뒤덮고 있었다." - 장준하, 《돌베개》 中
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1918~1975)의 회고록 《돌베개》에는 일본군을 탈출한 한국인 학도병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해 그곳에 걸린 태극기를 마주하는 모습이 애절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태어났을 당시, 조국은 이미 일본에 강점당한 상태였습니다. 일장기로 뒤덮인 조국의 하늘 아래서, 그들은 단 한 번도 국기인 태극기를 본 적도 국가인 애국가를 불러본 기억도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역만리 남의 땅에서 태극기를 마주하고 애국가를 목이 터져라 불렀을 때의 감격... 오늘의 우리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바로 그 당시 탈출했던 학도병 중 한 명이셨던 '마지막 광복군' 윤경빈 선생께서 지난 7일, 향년 99세로 서거하셨다고 합니다.
선생은 1944년 7월 당시 장준하, 김준엽 등 한국인 학병 출신 동료들과 함께 중국 서주의 일본군 쓰카다 부대를 탈영, 6천리 장정 끝에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함으로써 꿈에도 그리던 광복군에 입대하게 되는데요. 훗날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을 호위하는 경위대장(오늘날의 경호실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해방 후 김구 선생께서 서거하신 뒤로도 선생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평생 친일청산과 통일운동 등에 앞장서오셨습니다.
선생의 삶을 되돌아보니 문득 오스트리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남겼다는 마지막 유언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에게 전해주시오. 나는 멋진 삶을 살았다고". 하늘에 계신 선생께 충분히 멋진 삶을 사셨노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음 생에는 부디 통일된 조국에서 태어나 행복한 삶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 윤경빈 선생에 대해 더 알아보기(기사): http://mpva.tistory.com/2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