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기 미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루 MuRu Oct 11. 2015

12. 낯선 것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을 넘어서는 방법

낯선 것, 다른 것은  '두려워할 무엇'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모르거나 자기에게 낯선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경계하거나 두려워한다. 단지 중립적인 '모르는 것'이 거의 자동으로 '두려운 것'이 된다.


사실 자신이 잘 모르는 대상을 대할 때 호감이나 긍정적 느낌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중립적이거나 무덤덤한 반응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반응이 나오려면 성장 경험, 의도적 학습, 훈련, 인지적 깨우침 등이 필요하다. 경계 혹은 두려움의 반응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동물이 가지는 자연스러운 본능적 반응이다.


야생에서 사는 동물은 자기 활동 범위 안에서 평소 보지 못하던 대상이 나타나면 당연히 위험하다고 느껴야 한다. 자신이 잘 모르는 포식자로 위험한 존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체는 생존본능과 보호본능을 위해 당연히 그런 반응을 해야 하다. 아마도 인간의 조상들도 원시 시대의 삶에서는 그 반응이 필요했고 오히려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문명화된 삶과 일상에서는 이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반응'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가 없다. 그것이 본능적 느낌임을 눈치 채고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반응에는 불필요한 두려움, 고통, 충돌이 많기 때문이다. 야생과 원시적 삶에서는 도움이 되는 본능이지만 문명 사회에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낯설게 느끼는 대상이나 상황은 여러 가지다. 같은 인간끼리 그럴 수 있고 혹은 동물에 대해서도 가능하다. 나이, 성별, 계층, 인종 등이 다를 때 그렇고, 사회적인 현상에서도 그럴 수 있다. 다른 환경에 대해, 다른 종교에 대해, 다른 문화에 대해, 다른 신념과 가치관 그리고 도덕윤리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가 같거나 비슷한 대상들을 선호하게 되는 것은 그 친숙함에서 느끼는 본능적 안도감이나 편안함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어느 영역에서든 '다름'은 오히려 자연 현상이다.


자연에서는 '똑같은' 것이 부자연스럽고 드물다. '비슷함'은, 세밀히 들어가보면 같음과 다름이 함께 들어 있으며 결국엔 다른 것인데 같은 것을 애써 찾을 때 나오는 결과이다. 즉, 기본은 다름인 것이다.


현 문명에서 개인과 집단 단위에서 존재하는 '낯선 것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 그리고 거부감'의 반응은 개인들간의 갈등, 집단과 사회와 국가 간의 충돌의 가장 큰 원인이다.

 

자신과 다른 국가, 다른 인종, 다른 정치적 견해, 다른 종교, 다른 가치관과 윤리관, 다른 환경과 적 배경 등을 지닌 이들에 대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경계와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진다. 때로 그 부정적 반응이 임계치를 넘으면 개인단, 집단 간 실제 충돌로 간다. 바로 여러 물리적, 비물리적 다툼과 전쟁이다.


문제는 이러한 비극의 원인 중 상당 부분이, 실제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닌 '낯섦에서 오는 본능적 부정감'을 사실로 여기는 인지적 오류에서 온다는 것이다. 서로 상대방에게 돌리는 여러 이유는 사실은 이미 형성된 무의식적, 내면적 저항, 두려움, 분노에 같다 붙인 구실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모든 사람은 인종차별주의자다?


이 주제와 연관하여 한 뇌과학 연구에서 밝혀진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뇌에 대한 한 패턴 연구에서 "모든 사람은 인종차별주의자이다"라 할 수 있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fMRI로 뇌의 반응이 실시간 촬영되는 피실험자들에게,  다른 인종의 사진을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결과는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평소 그 사람의 성향에 관계없이 모두가 경계나 긴장, 부정적 느낌을 일으키는 뇌 변연계의 일정 부분이 활성화되더라는 것이다. 즉 인종차별적 반응은 사람이 가진 '다른 것, 낯선 것에 대한 본능적 경계 반응'으로서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할까? 그러면 인종차별을 비롯한 모든 '낯선 것, 다른 것'에 대한 차별, 경계, 두려움은 정당화 되는 것일까?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해당 실험에 반전이 있으니, 그 경계 반응 후에 이성 기능을 하는 대뇌 전전두엽의 반응에서 차이가 .


즉, 사전 조사에서 인종차별주의적인 성향을 보인 이들은 처음의 부정적 반응이 일어난 후 전전두엽에서 다른 대처 없이 그 반응이 그대로 갔는데, 인종차별적인 성향이 적은 이들은 바로 이성 기능의 전전두엽이 활성화되면서 애초의 그 본능적, 무의식적 거부 반응을 없애더라는 것이다. 즉 부정적이었던 본래의 반응대로만 계속 느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가지고 있는 이성적 인지의 힘으로 그 본능적 반응을 상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그 이성의 힘을 잘 이용하지 못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아마 개인적 차이, 어릴 때부터 학습된 가치관이나 신념의 차이, 사회 문화적 차이 등이 원인이 될 것이다.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비슷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어릴 때부터 다양한 인종을 접하며 함께 생활하며 자란 아이들을 조사했다. 이 아이들은 애초에 위에 나왔던 본능적인 변연계의 부정적 반응이 없었단다. 의식과 뇌에서 이미 자신과 다른 인종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과 다른 사람을 두려움의 대상,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같은 대상, 친숙한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측면은 비단 '인종 차별' 영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른 성별, 나이. 그리고 다른 느낌, 생각, 신념, 가치관, 윤리, 종교, 철학, 정치, 문화, 지역, 국가 등등 모든 영역에서 동일한 과정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즉 '모르는 것, 다른 것, 낯선 것에 대한 본능적 부정 반응'과 그에 대한 '극복 반응'의 차이가 말이다.




'낯선 것, 다른 것'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을 넘어서는 방법

여기서 이제 '낯선 것에 대한 본능적 부정 반응, 더 이상은 불필요한 두려움의 반응'을 넘어서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내가 부정적으로 느끼느 것이 있을 때, 애초에 회피, 억압, 외면하고 제대로 대면하지 않으면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대면'이다. 이것은 '기꺼이 겪어주기'로 말할 수도 있다. 감정, 생각, 사람, 상황 등이 모두 해당된다. 그리고 대면을 할 때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을 오해하거나 왜곡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본래 그대로' 인식하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래야 불필요한 과정이 일어나지 않고 또 제대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문제가 계속 되고 있다면, 지금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본래 그대로' 파악하고, 대면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므로 제대로 파악하고 통찰하기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부정적 내면 심리 문제의 해결 그리고 그를 통한 외부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프로세스라 할 수 있다.


1. 다름, 낯설음, 모름이 당연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한다.

: 그것들을 받아들이거나 찬성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건 그 후의 일이며 받아들일지 말지는 모두의 고유한 선택이다. 그 전에 우선 어느 영역에서든 다른 것, 낯선 것, 모르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많은 문제가, 애초에 그런 건 없다라거나 혹은 불가능하다거나 혹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존재 자체에 대한 사전 인정'은 아주 좋은 출발이 된다.


2. 다른 것, 낯선 것, 모르는 것에 대한 부정적 느낌과 반응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알아 챈다.

: 보통은 부정적 반응 자체를  대상화하거나 객관화하지 못하고 그냥 빠져서 매몰되어 버리거니 동일시되어 버린다. 그리고 바로 자동적으로 부정적 반응만 한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우리 내부의 이러한 본능적 부정 반응을 '알아 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또 때로는 그것을 알아채면서도 그 부정성을 억압하거나 회피하기도 한다. 그러나 억압, 회피 등은 결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결국 언젠가는 튀어 나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안의 이러한 부정적 반응이 뭔가 잘못도 아니고 죄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성숙한 것도 아닌, 그저 본능적인 자연 반응임을 알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fMRI 실험 중 첫 번째 내용이기도 하다. 이렇게 건강하게 느껴 주고, 알아 주고, 인지해 주는 것 자체로도 부정적 반응의 상당 부분이 해소되기도 한다. 또한 그 다음 반응으로 자연스럽게 넘어 갈 수 있다.


3. 부정적 반응을 가상의 '두려움, 경계, 거부감'으로 추가 연결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중립 반응 혹은 긍정 반응으로 연결하면 좋지만 긍정 반응까지가 아닌 중립 반응만으로도 충분하다)

: 마지막 단계이다. 물론 자신이 정말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대상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어려운 작업이다.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인정하자. 학습과 연습, 훈련, 반복 등이 필요할 수 있다. 여하튼 그렇다 하더라고, 이제 만약 나의 부정적 반응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음에도 계속 나오는 무의식적 반응임을  눈치챘다면 이제는 의도적, 의식적으로 그에 개의치 않은 과정이 필요하다. 즉 내 뇌의 본능적 반응을 느끼고 이해한 후, 이제 또한 내 뇌의 이성적 기능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것이다.


감정의 뇌인 대뇌 변연계가 처음 느낀 그 부정적 반응을 내가 실제 사용할 필요가 없다면 그것은 그냥 보내버리는 것이다. '그게 아님'을 아는 것이다. 느껴져도 그게 '절대 사실'이 아니기에, 느껴지지만 개의치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있다. 이 힘을 이용하자.




앞의 1번과 2번 과정만 우선 잘 해도 이 단계는 점점 저절로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바꾸려는 인위적 노력보다는 그게 더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인식과 통찰이 있으면 그 후의 행동은 점점 저절로 바뀌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그리고 경우에 따라선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이 들어가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중간에 멈추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남은 정신적 관성의 정도가 강한가 약한가에 따라 이 반응의 전환이 빨리 되느냐 늦게 되느냐 등이 차이가 나겠지만, 어떤 경우든 결국 바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나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사람과 상황과 모든 낯선 대상들에 대한 본능적 경계와 두려움을 점점 넘어설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11. 왜 타인과 세상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