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기 미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루 MuRu Oct 14. 2015

15. 집단적 자기 미움, 따돌림

개인의 문제 이전에 집단의 문제이다.

아래 링크를 건 '자기 미움' 연작 두 번째 글에서 자기 미움의 개인 심리 구조를 이미 살펴보았었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 미움은 집단의식적으로도 일어난다. 그중에 하나가 사회 문제인 '따돌림(왕따)' 현상이다.


참고: #2 숨은 심리, 왜곡된 자기 사랑 - 자기 사랑은 어떻게 자기 미움이 되었나?


일반적으론 따돌림을 개인적 문제로 많이 여긴다.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그리고 조금 확장한다 해도 어느 선에서 멈추고 만다. 물론 개인적 측면들도 분명  살펴봐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따돌림 문제를 근본적으로 파악하고 또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집단의식적 자기 미움'측면과 기제를 밝혀 드러내어야 한다. 개인적인 측면, 개인들의 책임(특히 가해자들)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따돌림 현상의 바탕에 집단의식적 요소가 있다는 말이다.



2편에서 설명된 개인의 자기 미움 심리는 집단의 경우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


이 경우에는 집단의식 모델을 사용한다. 이러한 집단의식의 존재 양태와 실제 작용, 구성, 흐름 등에 대해서는 물론 이견들이 있을 수 있다. 유명한 칼 G. 융은 '집단 무의식'과 같은 개념도 사용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가까운 미래에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더욱 발전된 SNS 시스템을 이용하여 아주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집단 의식, 집단 무의식 연구'도 가능하리라 예상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추상적이거나 가설로만이 실제 인간의 집단의식의 양태나 움직임 등에 대한 결과가 나오길 기대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나 결과가 없이도 어느 정도 상식 선에서 충분히 집단의식적 자기 미움에 대해 사유해 볼 수 있다.


이 경우엔 집단의식을 하나의 새로운 개체의식으로 치환해 본다. 집단의 크기는 여러 단계일 수 있다. 두 사람, 서너 명, 가족, 친구들, 학교의 한 반, 여하 간의 그룹, 직장 내 팀, 소모임, 여하 간의 공동체, 지역 사회, 하나의 국가, 여러 나라로 구성된 대륙, 지구 전체.


추론컨데, 큰 집단은 그를 구성하는 각 하위 집단들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만약 한 국가의 사회상이 여러 부정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면 그 하위의 지역 사회, 학교나 회사 공동체 등의 집단에서 그 부정적 영향이 나타나는 식이다. 그리고 '따돌림'에서는 그 영향이 제일 마지막 실제 피해자인 개인과 가해자(들) 간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따돌림 문제는 학교와 직장 등에서 공히 일어나고 있지만 여기서는 학교의 경우로 보자. 한 반에 아이들이 30여 명 있는 중학교의 한 반이다. 앞서 말한 더 큰 집단과 사회에서의 영향과 함께 집단(한 반) 자체의 상황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고려해 볼 수 있다.


이제 이 한 반의 선생과 학생들 전체를 하나의 집단의식 단위로 보자. 이 하나의 의식 덩어리 혹은 의식 단위는 마치 개인의 의식처럼 자신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느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특히 부정적 느낌은 앞서 말했듯이 상위 사회 단위에서 내려온 영향과 그리고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것 둘 다 있을 수 있다.


이제 이 집단의식은 자신의 내부에서 여하 간의 부정적 영향으로 인해 형성되는 '부정적 의식권'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러한 집단의식적 현상은 실제로는 그 개개 구성원들이 개인적으로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뭔가 무의식적이거나 막연한 부정성으로 느낄 수도 있고 구체적인 개별 사안들로 느낄 수도 있다.


여하튼, 개인이 아닌 '하나의 집단의식'의 관점으로 보면 이제 이 의식은 자기 내부에서 그 부정적인 부분, 부족한 부분, 모자란 부분,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처리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런 부분이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은 곧 자기(집단)가 그렇다는 것인데, 그것을 받아들이지도 인정하지도 못하겠다는 것이다. 개인 의식과 같이 집단 의식도 자기보호, 자기보존 본능이 발동한다 보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좀 더 건강한 사회라면 그리고 그 안의 작은 단위 집단이라면 이제 자기 내부의 그러한 부정적 측면들에 대해서 좀 더 성숙하고 건강하게 인식하고, 관찰하고, 분석하고 그리고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까지 성숙하지도 건강하지도 못한 경우엔 이제 마치 미성숙한 개인이 하듯이 '자기 미움'의 후속 과정을 진행한다.


즉, 해당 집단은 자기 내부의 그 부정적 부분을 '분리' 시키고 '정상적이고, 강하고, 잘난 나(집단이나 개인)'가 특정 대상을 '못난 나(집단이나 개인)'로 낙인 찍고 처리하려 하는 것이다. 한 개인에서는 이 결과로 상상의 '내면의 잘난 나, 못난 나'로 발현 되지만 집단에서는 구체적인 집단이나 개인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이다.


보통은 약한 혹은 뭔가 구실을 잡힌 한 개인이 그 ' 못난 나'의 역할을 맡게 된다(집단인 경우도 있다). 일종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이 희생양은 사실 특정인만이 아니라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그리고 그 반대의 위치에 '잘난 나'의 역할을 맡는 개인 혹은 집단이 있게 되어 이제 우리가 아는 그 '따돌림' 구도가 완성된다.


그러나 개인의 경우와 동일하게, 집단이 스스로의 부정성을 이렇게 억지로 '분리'하고 처단해서 없애려는 전략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집단 안의 그 누구도 집단의 전체성과 완전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구성원들이 곧 그 집단이고 그 집단이 곧 그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리 시키고 부당하게 처단하면 언젠가 그로인한 부작용이 어떤 식으로든 해당 집단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


개인이 자기의 부정적 측면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부정성(사실은 그냥 하나의 측면일 뿐 부정성이 아닌데)마저도 건강하게 인식하고 받아줌으로써 '온전한 자기'를 구축해야 하듯이, 집단도 자신의 부정성을 희생양 개인에게 투사시켜 그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인 집단의 부정성 자체를 인식하고 함께 드러내고 받아들이고 치유하는 과정을 밟아야만 한다. 그것만이 유일한 답이다.


아직은 따돌림 현상에서 러한 집단의식적 측면을 느끼거나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거의 모두가 그 피해자 개인 그리고 가해자 개인이나 집단의 문제로만 본다. 물론 1차적으론 당연히 그렇게 보아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이 대처나 상황 개선 혹은 징벌 등에 있어서도 개인의 안전과 개인의 책임 등을 선명히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확실하게 진행하되 이 현상의 집단의식적 측면도 함께 보는 것은 무척 중요하며 우리에게 여러 이점을 준다.



가장 큰 이점은, 이 '따돌림' 현상을 우리 모두의 문제와 책임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세부적으론 피해자 개인과 가해자 개인들간의 일로 드러났지만, 그러나 집단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실은 그 구성원 전체가 원인이고 전체의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피해자 개인과 가해자 개인만이 그 집단 속에 있으면서 벌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혹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혹은 강하게든 약하게든 구성원들은 모두 서로 사회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중학교의 한 반의 경우라면 아직 어린 학생들이므로 이러한 측면까지 느끼고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하지만 충분히 이해 시키려는 시도는 해 보아야 한다). 이런 경우는 선생님이 중요하다. 혹은 관련된 어른들이 그렇다. 부모나 다른 선생들 등 말이다. 그리고 학생들 중에서도 어느 정도 집단의식적 측면을 이해할 수 있는 아이들도 동참할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을 단지 개인적인 일로만 여기지 말고 모두가 좀 더 적극적이고 건강하고 지혜롭게 '따돌림' 문제에 집중하고 같이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그 구체적인 방법들은 따로주제로 다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학교나 직장, 공동체 등 어른들로 구성된 곳이라면 이제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다.


사실 '따돌림' 문제를 집단의식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해결하자는 말은 어느 정도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래서 만약 그렇다면 그것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한데, 바로 이미 여러 선진국의 성숙한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따돌림 문제나 상황 등에 대한 여러 제도적 내용과 대처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한 것들이 바로 따돌림 문제를 순전히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지 않고, 해당 사회가 그리고 그 상위 사회 단위에서까지도 책임과 관심과 적극성을 가지고 해결에 임하게 되는 실제 모습인 것이다.


예를 들면, 화해나 협력 위원회 등, 혹은 피해자들을 잘 보호해 줄 수 있는 여러 정책이나 법 그리고 규약들, 실제 따돌림 상황이 벌어질 때 가해학생들에 대해서 적절한 제재를 행할 수 있는 다른 학생들이나 선생들의 행동 양식, 해당 따돌림 상황에 대한 집단과 공동체의 건강한 대처 등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 글의 주요 목적은, 이러한 구체적 대처나 대응법 등 이전에 우선 모두가 한 집단에서의 '따돌림' 현상이 개인적 문제가 아닌 집단 전체의 공통 과제나 책임임을 선명히 해 보자는 데 있다. 물론 실제 따돌림 현상은 더욱 복잡하며 여러 원인들이 중첩된 현상이라 봐야 한다. 그러므로 필요에 따라 여러 관점과 접근법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장 먼저 그 '집단의식적 측면'을 지금 보다는 더욱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당연히 이 글과 같은 짧은 글 속에 따돌림의 집단의식적 측면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상세히 모두 다루지는 못한다. 이 글은 일종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종'의 역할을 하는 게 목적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에서 더욱 확장되거나 더욱 심층으로 들어가는 여러 추가적인 접근과 작업들이 나오게 되길  기대해 본다.


그래서 따돌림 현상이 점점 더 줄어들고, 발생하는 경우엔 더욱 성숙하고 건강하게 대처되고 치유되길 바란다. 그래서 '집단적 부정성'의 결과로써 발생하는 따돌림 현상에 무고한 개인(과 집단)들이 희생당하는 일이 점점 더 줄어들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일이므로 우리 모두가 함께 해낼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