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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Apr 01. 2016

의식의 초점

초점을 바꾸는 게 아니라, '초점 맞추기'의 정체를 눈치채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존재는

이미, 항상, 지금

본래의 자리에 있다.


그러므로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도 그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벗어남 자체가 불가능하다.

마치 물속의 고기가

물을 벗어남이 불가능하 듯.


/


다만 초점의 문제이다.


의식의 초점과 관심사.

혹은 주의의 초점과 관심사.


지금 사람들의 상태는

다만 그 의식 혹은 주의의 초점이

일정 지점에만 맞추어져 있으며,

또한 그것만을 전부와 절대로 믿고 있는 것.


이 '절대시, 전부시' 자체가

곧 그 '일정 지점에만 맞추어진 초점'이기도 하다.


/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항상 알고 있다.

자신이 무엇인지, 그 자리가 어디인지.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론 다 알고 있다.

모르는 게 불가능하다.

물 속의 물고기가 물을 모를 수 없듯이.


다만,

아는데 모른다고 착각하고 있기.

혹은 관심사가 엉뚱한 곳에 가 있음.

혹은 주의가 한 곳에만 맞추어져 있음.

혹은 본체보다는 주변에 더 관심이 많음.


즉,

의식의 초점이, 주의의 초점이

다른 데 가 있음.

한 곳에 머물러 있음.

초점 맞추어진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있음.


/


그래서,

그 의식 혹은 주의의 초점을

제대로 맞추는

혹은 본래대로 돌리는.


사실은,

초점을 어디에 맞춘다 아니다라기 보다는

'의식의 초점', 그 자체를 눈치채는 것이다.

그 기제, 그 기능, 그 행위의 정체를.

그 본질을.


(주: '초점 바꾸기'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많은 이들이 행하고 있는 오류인데,

문제는, 초점을 아무리 바꾸어도 자리는 결국 제자리라는 것이다)


/


그래서,

그 눈치챔, 알아챔, 자각으로 인해


더 이상 기존처럼

맞추어진 초점대로 믿고 사는 게 아니라

초점에서 자유로워지기,

스스로 만든 초점에 매몰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초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이것이 초점을 넘어서는 것이다.


초점을 잘 이용하지만

초점과 상관 없게 되기.


이것이 유일하게 해 볼만한 것이다.

이것이 유일하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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