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을 바꾸는 게 아니라, '초점 맞추기'의 정체를 눈치채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존재는
이미, 항상, 지금
본래의 자리에 있다.
그러므로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도 그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벗어남 자체가 불가능하다.
마치 물속의 고기가
물을 벗어남이 불가능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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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초점의 문제이다.
의식의 초점과 관심사.
혹은 주의의 초점과 관심사.
지금 사람들의 상태는
다만 그 의식 혹은 주의의 초점이
일정 지점에만 맞추어져 있으며,
또한 그것만을 전부와 절대로 믿고 있는 것.
이 '절대시, 전부시' 자체가
곧 그 '일정 지점에만 맞추어진 초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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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항상 알고 있다.
자신이 무엇인지, 그 자리가 어디인지.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론 다 알고 있다.
모르는 게 불가능하다.
물 속의 물고기가 물을 모를 수 없듯이.
다만,
아는데 모른다고 착각하고 있기.
혹은 관심사가 엉뚱한 곳에 가 있음.
혹은 주의가 한 곳에만 맞추어져 있음.
혹은 본체보다는 주변에 더 관심이 많음.
즉,
의식의 초점이, 주의의 초점이
다른 데 가 있음.
한 곳에 머물러 있음.
초점 맞추어진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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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의식 혹은 주의의 초점을
제대로 맞추는
혹은 본래대로 돌리는.
사실은,
초점을 어디에 맞춘다 아니다라기 보다는
'의식의 초점', 그 자체를 눈치채는 것이다.
그 기제, 그 기능, 그 행위의 정체를.
그 본질을.
(주: '초점 바꾸기'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많은 이들이 행하고 있는 오류인데,
문제는, 초점을 아무리 바꾸어도 자리는 결국 제자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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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눈치챔, 알아챔, 자각으로 인해
더 이상 기존처럼
맞추어진 초점대로 믿고 사는 게 아니라
초점에서 자유로워지기,
스스로 만든 초점에 매몰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초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이것이 초점을 넘어서는 것이다.
초점을 잘 이용하지만
초점과 상관 없게 되기.
이것이 유일하게 해 볼만한 것이다.
이것이 유일하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