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제대로 대상화 하기
우리 의식의 가장 기본 기능에는 '대상화'와 '동일시'가 있다. 내가 인식의 주체가 되어 나 외의 모든 것을 '인식의 대상(객체)'으로 여기는 것이 대상화이다. 즉 '주체-객체' 설정 기능이다. 동일시는 그 대상화된 객체를 다시 나라고 여기거나 나에 포함시켜 인식하는 기능이다.
앞서의 글(자기 미움의 숨은 심리(1): 왜곡된 자기 사랑)에선 이 대상화 기능을 잘못 사용해서 무의식적으로 '잘난 나'와 '못난 나'를 분리하여 대상으로 설정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그리고 둘 중에 '잘난 나'를 '진짜 나'로 동일시하여 역시 자기 자신인 '못난 나'를 멸시하고 경멸하고 혐오하는 자기 미움의 심리를 일으키는 과정을 설명했다. 이러한 전체 과정을 제대로 통찰함으로써 우리는 불필요한 자기 미움의 심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실은 대상화와 동일시 기능 역시 생존의 효율성을 위한 의식의 기본 기능일 뿐이다. 즉 그것이 맞다, 틀렸다가 아니라 그러한 기능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유용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구조와 기제를 눈치채고 알아챌 수는 있지만 없애지는 못한다. 아니 없앨 필요가 없다. 그것은 진화의 과정을 거쳐 잘 만들어진 일종의 의식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정체와 본질을 눈치채고, 밝혀서 제대로 보고 그리고 잘 활용하는 것이다.
나도 나에게는 공평하게 대해줘야 할 타인이다
그런 활용의 의미에서 '나도 나에게는 공평하게 잘 대해줘야 할 타인'임을 확실히 아는 게 중요하다.
비록 '잘난 나'와 '못난 나'의 분리와 대상화는 오류가 있는 과정이지만, 내가 나를 대상으로 느끼고 대하는 과정 자체는 자연스러운 대상화 과정이다. 우리는 누구나 '내가 나를 느낄 수' 있다. 즉 내가 나를 대상으로서 인식할 수 있다. 어떤 새로운 자각이나 작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지금도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평소에는 이 구조를 잘 눈치채지 못한다. 그냥 '나는 나'이고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해서 살펴보면 나 역시 나에게는 마치 타인과 같은 하나의 대상이며, 우리 스스로도 일상 중에 그렇게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이 '나에게 대상이 되는, 나에게 타인이 되는 대상으로서의 나'를 매 순간 좀 더 선명히 인식해 보자.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어떤 분리감이나 분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애를 쓰거나 노력해서 할 무엇도 아니다. 그냥 이 글을 보기 전까지도 계속 자동으로 무심하게 행해 왔던 의식의 한 기능을 선명하게 재인식해 보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이 ‘나 자신’을 오히려 타인보다 못하게 대한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고, 미워하고, 싫어하고, 실망하고, 심드렁해하는 '나'도 사실 나에게는 또 하나의 대상이자 타인이므로, 이제부터는 잘 챙겨주고 공평하게 대해 주자. 더구나 남도 아닌 나이지 않은가? 남도 잘 대해 주는데 나는 더 잘 대해 주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나 자신’을 오히려 타인보다 못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타인과 같은 나를 말이다. 그래서 뭔가 잘못을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잘 봐주면서 나는 너무 모질게 대한다. 전혀 봐 주는 게 없다. 그리고 내가 뭘 좀 잘 해도 좀처럼 칭찬하거나 격려할 줄 모른다.
만약 실제 어떤 타인이 있는데 내가 나를 대하듯 그 사람을 대한다면 어떻게 될지 한번 상상해 보자. 조금만 잘못하면 야단과 비하 그리고 공격이 끝이 없을 것이다. 또 반대로 뭘 좀 잘 해도 그 사람에 대한 인정과 칭찬과 격려는 상당히 인색할 것이다. 아마 그 사람은 미쳐 버리지 않을까? 만약 부모가 아이를 그렇게 대하며 양육한다면? 더 끔찍하다.
물론 세상에는 반대로 타인들에겐 함부로 대하면서 자신에겐 너그러운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밖에서 볼 때의 모습이다. 실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조차도 가까이 가서 그 속 마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코 건강한 심리로 자기 스스로 만족하거나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진정 자신에게 만족하고 자신을 위하는 마음의 소유자라면 결코 타인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에게 너그럽게 보이는 것은, 사실은 일종의 의식적 회피이자 마비라 봐야 한다.(이들이 하는 건 사실 제대로 된 '자기를 잘 대하기'가 아니다. 왜곡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경우엔 타인들이 빠졌기 때문이다. 타인 없는 자기는 병증인 자기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잘 대해 주 듯 자신에게도 잘 대해주자. 어느 정도 지킬 건 지키고, 엄중해야 할 것은 엄중해야 하겠지만 너무 모질게 하지 말자. 너무 몰인정하게 하지 말고 너무 엄격하게, 너무 객관적으로 대하기만 하진 말자. 야단을 치더라도 상황과 경우와 환경을 잘 봐주고, 칭찬할 때 일부러라도 2배, 3배로 격려하고 지지해 주고 말이다.
잘 안된다고? 처음부터 바로 잘 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이제까지 해 왔던 것과 반대로 하는 것이기에 기존의 관성을 이겨내고 그 방향을 돌릴 때까지 어느 정도는 꾸준하고 용감하게 계속 진행해야 한다. 그러면 임계치를 넘는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 잘못했네. 잘못한 거 맞아.
그렇지만 너도 나름 최선을 다 했잖아. 그건 나도 잘 알아.
비록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지만 그건 그것대로 책임을 지고,
그리고 이번 실패와 별개로 다음 시도는 또 최선을 다 하자.
난 널 믿어.”
“와, 이렇게 잘 하다니. 역시 너야!
이런 저런 부분은 진짜 누가 봐도 탁월해.
내가 했다면 그 정도로는 못했을 것 같아.
정말 너가 자랑스러워.
수고했어, 이번에도.”
위와 같은 말들 말고도 얼마든지 자신을 위해, 자신에게 해 줄 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잘 생각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아끼지 말고 써먹자. 이 세상 한번 살다 가는 여정에 내가 나를 위해 아낄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