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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수학적 정의

엽편소설

신은 수학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신의 정의: 종속시간축 T와 자유시간축 t₁...tₖ를 가진 세계 ℝ에서, 자유시간축 tₖ를 종속시간축 T'으로 가지고, 자유시간축을 t₁부터 tₖ₋₁까지만 가지게 되는 '세계 ℝ'의 하위세계 'ℝ-1'의 창조자 혹은 조종자.


'세계 0'는 오직 종속시간축만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시간은 항상 과거에서 왔다가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며, 그들로서는 3차원의 공간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또 다른 시간축을 상상하기는 무리다.


그들의 세계에서 어떤 종교가 광풍처럼 퍼져나갈 때가 여러 번 있었는데, 사실상 그들이 믿고 따르고 기도하던 그 신은 그 위의 세계인 '세계 1'의 신과는 매우 다르다. 미안하지만 헛고생인 것이다.


'세계 1'의 어떤 인물이 바로 이 '세계 0'의 창조자이다. 그는 독립시간축 t₁과 종속시간축 T를 가진 '세계 1'에서, 독립시간축 t₁이 바로 '세계 0'의 종속시간축 T'가 되도록 하는 세계를 만드는 상상을 한다. '세계 1'의 그는, 독립시간축 방향으로 마음껏 움직일 수 있다. 시간여행이 가능한 것이다. 그거야 그 세계 사람들의 일상이니까 뭐 별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즉, 세계 1의 그 사람의 머릿속에 떠오른 상상은 바로 세계 0가 된다. 그는 세계 0의 태초부터 최후까지의 모든 상상을 '동시적으로'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사실상 세계 0는 세계 1에서 시간축 T의 어느 한 순간에 '순간적으로' 그리고 시간축 t₁에 대해 '전역적으로' 창조된다. 창조된 세계 0 안에서는, 모든 최후는 정해져 있고, 인간들은 그 최후를 보지 못하고 그냥 시간축 T'에 대해서 달려나가기만 할 뿐이다. 세계 1의 사람들은 누구나 세계 0을 상상하며, 자신들이 조종할 수 없는 종속시간축 T를 살면서 평생동안 세계 0를 몇백, 몇천개를 만들어낸다.


세계 1의 그는 세계 0에 대해 어떠한 윤리적 책임도 없다. 그는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상상속의 수천만, 수억, 수조, 수경의 사람들과 동물들과 식물들과 공간과 시간과 입자와 장(場)과 에너지와 진공에 대해서, 한낱 자신의 상상의 산물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세계 1의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망상이 실재할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세계는 실재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고통에 가득찬 실재이다. 만약 세계 0의 당신이, 당신의 세계가 평안하고 안정되어 있음을 느끼고 있으면서, 그것에 대해 감사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평화로운 세계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창조된 세계 0는 세계 1의 창조자의 일그러진 욕망이 만들어낸 악몽의 세계다. 그 안의 의식적 개체들은 보통은 고통 속에 살다 죽어간다.


고통 속에 살다 떠나가는 많은 의식적 실존자들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본질을 잘 보지 못하고 이 고통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인 '세계 1의 신'에게 고통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한다. 물론 이것은 틀렸다. 어떤 이는 기도하지 않고 신에게 저주를 퍼붓기도 한다. 이 사람들은 옳긴 하지만, 사실상 둘 다 그들의 세계에 대해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


책임은 되물림되었다. 세계 1도 결국 세 개의 시간축(독립시간축 두 개, 종속시간축 한 개)를 가진 세계 2의 어떤 인물의 상상의 산물이다. 세계 2의 인물들도 만만찮게 악마적 망상으로 가득찬 자들이어서, 기어코 세계 1을 지옥의 불구덩이로 만든다. 세계 1의 사람들은, 어쩌면 이 고통의 현실을 이어받아, 빈곤한 상상력으로 세계 0를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악몽의 연쇄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어느 층위의 세계의 어떤 인물도 그에 대한 질문조차 던져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머릿속 상상의 실재함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계 10000에 속한 의식적 개체도 세계 10001의 어떤 이의 지옥의 상상이 만들어 낸 세계의 산물이다. 세계 100000의 개체도 그렇고 또한 세계 1000000의 개체도 그렇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그야말로 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0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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