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와 인간성에 관한 인류학적 사고실험
어슐러 르 귄이 2018년 90세의 연세를 일기로 영면하면서, 그녀의 「헤인 연대기」도 종말을 맞았다. 헤인 연대기는 거대한 사고실험이었다. 만약 인류가 이렇다면 어떨까? 만약 두 종류의 인류가 있다면 어떨까? 다들 알다시피, 인류는 하나의 종이다. 그러나 그래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인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종일 수도 있었다. 코끼리에 아프리카 코끼리와 인도 코끼리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균질한 종으로 진화했으며(최신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라는 다른 인류 종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 중 대부분을 죽이고 일부를 우리와 유전적으로 섞었다), ‘우리와 다른 종이지만 말이 통하는 인류’를 만날 기회를 스스로 없앴다.
‘종이 다르다’라는 건 생각보다 큰 일이다. 과거에 백인들은 흑인이나 아시안이 종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별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인류의 종은 다르지 않았다. 혼혈 자손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 간단한 증거이고, 과거에 유전적으로 매우 좁은 병목 구간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은 침팬지의 유전적 다양성에 비교해 엄청나게 좁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또 하나의 증거이다. ‘그래서’ 인종 차별은 윤리적으로 정당화되지 못했다. 그럼 만약에 진짜로 종이 다른 인류가 있다면, 우리는 종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르 귄의 ‘헤인 연대기’의 설정에 따르면, 인류는 우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몇백 년의 단위로 이동해야 다른 행성을 만날 수 있다는 우주의 특성상, 인류는 서로간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린 채 각자 진화했다. 그렇다. ‘진화’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은 인류의 특성을 간직한 채로, 각자의 행성에 적합한 형태로 각자 다르게 진화해 버렸다. 그래서 서로간에 말을 배울 수 있고(음성 발화나 언어 구조가 완전히 달라질 정도로 진화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사회성이나 정치 구조도 서로간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심하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종이 다르다.
어떤 행성에서는 인류는 털이 수북할 정도로 외모가 달라지게 진화했다. 어떤 행성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구분이 사라지고 어떤 사람이든지 임신이 가능하도록 진화했다. 두 번째 설정이 바로 이 『어둠의 왼손』에 대한 이야기이다. 게센이라는 행성에서 행성 거주민들은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없다. 누구나 임신할 수 있지만, 자가수정은 불가능하며 마치 ‘발정기’와 같은 기간이 있어서 서로 남성과 여성으로 바뀌는 기간이 있다. 그러나 자신이 남성이 될지 여성이 될지는 운에 맞겨야 한다. 이 짧은 기간이 끝나면 그들은 다시 중성으로 돌아간다.
완전히 말도 안 되는 SF설정은 아니다. 어떤 물고기나 수중 생물 종, 곤충이 실제로 비슷한 성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물론 ‘고등’ 종족이라고 할 수 있는 인류가 몇백 년 지나 실제로 그렇게 진화할 수 있냐는 걸 따지고 싶을 수 있다. 그럼 한없이 말도 안되는 미국 히어로물도 다 따져봐야 하는데, 감당 되겠는가?) 그러나 그런 설정을 소설에 녹여내서 르 귄이 말하고 싶은 건 과학적으로 신기한 경이감 같은 건 아니다. 이건 인류학적 사고실험이다. 그리고 이 사고실험의 내부에 주장하고 싶은 메시지가 명백하게 숨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여성인지 남성인지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살면 어떻게 될까?’이다.
주인공 겐리 아이는 소설 초반, 지구인 남성으로서 성 구분이 없는 에스트라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떻게 불러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그건 에스트라벤이 나올 때마다 느낀 나의 혼란스러움과도 비슷했다. 그(그녀)들은 남자와 여자의 중간처럼 생겼을까? 남자와 여자의 ‘중간처럼’ 생겼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보이시하게 숏컷한 여성? 장발로 머리기른 날씬한 남성? 아무리 생김새가 그렇다고 해도 실제로 어떻게 어떤 사람이 ‘남자와 여자의 중간’일 수가 있단 말인가? 가끔 에스트라벤이나 국왕, 티베가 정치인처럼 행동할 때는 한국 중년 남성 정치인의 이미지 때문에 남성적 이미지로 나의 사고를 고정시키고 읽어 보다가, 때때로 겐리 아이가 툭 튀어나와 그들이 사실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간적인 존재라는 묘사를 쏟아내면 내 머릿속은 혼란해진다. 정확히 ‘남성’의 이미지와 ‘여성’의 이미지의 중간 지점에 대해서 상상하는 건, 그리고 설원에서 둘의 미묘한 성적 긴장감이 흐르는 모습을 머리속으로 상상하는 건 소설 내내 정말로 힘든 일이었다.
그렇다. 나 또한 남성의 고정된 이미지와 여성의 고정된 이미지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지구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배운 나의 인간성일 것이다. 뭐 심지어 어떤 언어에서는 모든 사물마다 남성과 여성이 따로 있다니 어쩌면 인식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겐리 아이처럼 완전한 젠더 인식을 지닌 자도 “젠더의 구별이 불필요한 사회에서 그것을 습득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르 귄의 메시지라면, 나 또한 그 메시지에 동의한다. 소설 후반부에 주인공은 실제 지구인 남성과 여성을 마주치게 되자 너무 강렬한 그들의 성 표식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
빛은 어둠의 왼손
그리고 어둠은 빛의 오른손
둘은 하나, 삶과 죽음은 함께 있다.
‘토르메르의 시’라는 저 시는 지구인인 겐리가 아니라 중성을 가진 게센인의 문화에서 널리 알려진 시다. 소설 내부에서는 게센인 또한 이원론에 동의하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원론이란 ‘남성’과 ‘여성’이 아닌, ‘나’와 ‘타인’이다. 그게 성보다 더 넓은 것을 포함한다. 이것만은 변화할 수 없는 최소한의 인간성인 듯하다. 그러면 우리 또한 최소한의 인간성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변화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