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F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는 이 고양이가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사실을 알고있다

전윤호의 『모두 고양이를 봤다』를 읽고

‘고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만 봐서는 흔한 심리치유 에세이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제목의 — 류로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고양이가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것을.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창시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적 현상 중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을 굳이 설명하기 위해 내세운 사고실험 방법이다. 양자역학이라는 극복할 수 없는 난해함은 일반 사람에게도 생각보다 자극적인 모양이라, ‘양자역학’이라는 키워드는 과학 유튜브 채널에서 자주 검색되는 키워드 1순위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뉴턴 역학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유튜브 구독자들이 양자역학을 검색하며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니.

https://youtu.be/1GFbAKLZBD0


전윤호 — 모두 고양이를 봤다

수학적 이해가 부재한 양자역학의 이해는 도달하지 못하는 앎의 점근선을 그릴 뿐이다. 당연히 그것들을 다 알 필요도 없고. 테크노스릴러 하드SF를 표방한 이 작품 또한 하드SF를 굳이 수준 높게 추구하지 않으며, 단지 표방하기만 할 뿐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나에게만’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주요 소재인 Q-wave의 Q는 Quantum의 약자일 텐데, 하드SF를 추구하기 위한 몇 가지 키워드들만이 언뜻 나타났다 사라지기만 할 뿐(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에 이은 제 5의 물리학적 상호작용이라던가, 미세소관에서 발생하는 양자 의식이라던가) 그 자세한 물리학적 설명은 없다. 이러저러한 키워드들을 조합해 보면 Q-wave란 분명히 로저 펜로즈의 Orch-OR 이론을 반영하고 있거나, 적어도 힌트를 얻은 주제이다. 로저 펜로즈라는 물리학자는 미세소관 내부에서 아직 물리학자들이 해결하지 못한 양자 중력(!) 현상이 일어나 인간의 의식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음 그렇다면? Q-Wave란 미세소관에서 일어난 제 5의 물리학적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어떤 질량이 없는 매개입자가 산이나 빌딩 등 질량의 영향을 받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뇌 내부의 미세소관까지 도달하는 현상이다. 미세소관은 뉴런의 컴퓨팅 작용보다도 앞서 의식과 감정을 만들어 내게 된다.


https://youtu.be/EpxCwgHWbnU


이런 나만 좋아할 것 같은 물리학적 하드SF 설정을 적당히 끊어내고 뇌과학 분야와 정보통신 분야에만 하드한 설정을 강조하고 있는 건 좋은 선택일 수 있다. 같은 하드SF라도 물리-하드SF와 뇌-하드SF, 정보통신기술-하드SF로 장르를 나눠야 하나? 최근 뇌과학 분야는 독자들의 이해가 높아졌기 때문에 (적어도, 관심만 많은 양자역학보다는) 할머니 뉴런 세포, 의식은 빈 이미지를 스스로 채운다, 스스로 설명을 만들어 낸다는 설명들은 그럴 듯하게 들린다. (미세소관 의식 이론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어떤 입자만 쏴 주면 뇌는 스스로 이미지를 만들어 내니) 정보통신 분야는 말할 것도 없다. 빅데이터 분석을 특기로 하고 있는 주인공의 주변에서는 실제로 IT회사 사무실에서 들려올 듯한 IT 용어들이 그럴 듯하게 들려 온다. 작가의 경력으로 미뤄볼 때 빅데이터, 정보통신, IT 분야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는 작가의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일 테다.


소재에 대해서는 나는 견해가 좀 다르다. 텔레파시의 과학적 해석을 소재로 쓴 작품이라고 소개되고 있지만, 초자연적인 텔레파시 소재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작가가 텔레파시를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추천서를 쓴 해도연 작가가 새롭게 해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만약 내가 텔레파시에 대한 소재를 쓰고 싶다면 초반에 텔레파시의 신비롭고 초과학적인, 초능력적인 면모를 좀 더 강조했을 것이다.


(스포일러 주의)

이야기 구조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페이크 최종 보스 & 진 최종 보스’의 클리셰를 적절히 활용하였는데, 페이크 보스는 스타트업 엔젤 투자자고 진 최종 보스는 투자받은 과학자다. 정말 현실적인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중반과 최종반의 액션신 또한 흥미로웠으며 언뜻 ‘파이널 파이트’ 같은 벨트스크롤 8비트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면모가 있다. 스테이지 1은 강남 역삼동, 스테이지 2는 경기도 외곽, 그리고 스테이지 3는 서해 해상에서 격전이 벌어진다. 1p 플레이어는 형사지만, 2p 플레이어로 빅데이터 분석가(!)를 고를 수도 있다. 다만, 최종 보스를 살려놓은 것에는 불만이 있다. 현실의 씁쓸함을 그리려는 의도인 것은 알겠지만 권선징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결말에 약간은 허탈감이 느껴졌다. 혹시…후속편의 포석일지도?


마지막으로 작가의 개인적인 경력에 대해 써 본다. 업계에서 이름난 IT업체의 CTO로서 계시다 SF 소설가로 전직하시다니, 은퇴 후 자서전 대필을 시작하는 한국 대기업 임원에 비해 독특한 행보이다. 또한, 휴머니즘과 힐링물 사이의 공간에 정착한 듯한 한국 SF계에서 ‘본격 테크로스릴러’라고 이름붙일 만한 장르를 시도한 것 자체도 감동적이다. 전자회사를 다니며 소설 습작을 쓰고 있는 나로서도 본받을 만한 삶의 자세다. 나야 뭐 아직 습작 정도지만 작가의 경력을 보며 힘을 얻기도 한다. 물론 이런 삶의 자세의 끝판왕으로 테드 창이 있지만, 한국에서 또 비슷한 분야에서 이런 분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나로서는 좋은 경험일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를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