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은 기다려야 한다
17년 전, 2004년 테드 창의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충격적인 작품성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2004년만 해도 한국은 말 그대로 SF의 불모지였다. (요새는? ‘인터스텔라’가 흥행하고, ‘승리호’라는 국산 SF영화도 나오고, 김초엽 같은 잘 팔리는 SF 작가도 나오는 중이니 상황이 좀 나아진 것 같긴 하다.) SF가 철저히 비인기장르였던 각박한 현실 속에서, 나는 2004년 테드 창이라는 작가가 2년에 겨우 한 번씩 산출해 내는 짧지만 경이로운 이야기들을 목빠지게 기다리는 여정을 시작했다.
2년에 한 번이라고? 거의 단편 소설만을 쓰는 작간데 겨우 2년에 한 작품? 이 작가의 독특한 경력은 IT 회사에서 ‘테크니컬 라이터’라는 직업을 따로 가지고 있는 투잡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느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또 본받을 만한 삶의 자세라고도 생각한다. 나도 회사를 다니며 유튜브를 하는 중이니까. 뭐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나는 2019년 이 『숨』이라는 작품집까지 도달했는데, 장대한 여정이었지만 그 감정은 복합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펼치자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이후, 2년에 한 번씩 읽느라 지친 파편화되었던 감정적 기억이 되살아났다. 하하, 이 작품은 그 옛날에 대학생때 읽었던 건데. 이 작품은 내가 회사 입사한지 얼마 안되어서 셔틀버스에서 읽었던 거였어. 책의 후반부 절반은 내가 읽어보지도 못한 작품들이었다. 이 후기 작품에 대해서는 감정적 기억이 없는 상태로, 순백의 눈밭에 처음 발을 내디디는 느낌으로 읽어 보았다.
그런 점에서 2019년 첫 번째의 리딩의 평가는 이랬다. 전반부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 못지 않은 걸작이다. 하지만 후반부는 테드 창의 하락세를 나타내는 징후다. 이 감정이 편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 보았다. 이제 어느 정도는 감정적 편향을 제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어서 리뷰를 써 본다.
2007년만 해도 책에 실리지 않은 테드 창의 신작인 이 작품을 읽어볼려면 ‘판타스틱’이라는 잡지를 사서 봐야 했다. 이 잡지는 좋은 장르소설 잡지였지만, 결국 적자를 해결하지 못하고 몇 년 못가서 폐간한다.
천일야화 같은 느낌을 주도록 의도된 이슬람 문화권 배경에서, 한정적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차원문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간여행 소재가 SF에서 닳고 닳은 소재라 할지라도, ‘역사는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설정은 굉장히 참신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역사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운명론적이며, 이 관점은 이슬람 시대의 종교적 분위기와도 매우 잘 어울린다. 「바빌론의 탑」, 「일흔두 글자」에 이은 이국적인 역사 배경을 잘 살린 테드 창의 또 하나의 명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표제작이며,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소설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명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뇌를 스스로 해부하는 ‘로봇 해부학자’의 이야기인데, 자신의 기억에 대한 원천을 조사하다가 우주의 비밀을 파헤친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작은 것에서 우주적인 것의 단서를 얻는다는 소설 구조를 테드 창 작품의 특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네 인생의 이야기」도 그랬던 것 같다. (외계인의 언어를 연구하다 보니 우주적인 법칙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는 엔트로피의 법칙이나 우주의 열평형에 대한 은유지만 탄소를 소비해 벌어지게 된 지구온난화에 대한 은유로 볼 수도 있다. 로봇의 기억을 묘사하는 것도 놀랍다. ‘뉴런’에 대한 설명은 단 한 자도 나오지 않는다. 로봇의 인지 과정은 공기의 흐름과 금속 박편의 떨림으로 이루어진다. 아무도 이에 대한 시각화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하모니카의 내부 구조가 떠올랐다.
이 역시 판타스틱에 소개된 버전을 처음으로 읽어보았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충격에 이어지는 테드 창 신화를 만들어간 작품.
자유의지가 없을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증명한 잘 알려진 70년대 ‘리벳의 실험’을 아이디어 삼은 작품. 이 작품 역시 재미있는 장난감에서 우주적인 법칙까지 이어지는 테드 창이 잘 구사하는 소설 구조를 엿볼 수 있다. 짧은 엽편 소설이지만 강렬하다.
당시엔 명작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숨」을 읽고 2년이나 지난 상태였기 때문에 테드 창 신작의 갈증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다. 놀랍게도, 테드 창의 최초의 ‘중편’이 단행본으로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드디어 단행본이 출판되었고 헐레벌떡 서점으로 가서 사보았다. 재미는 있었지만 10년 후 돌이켜봤을 때 그 때의 기억은 강렬한 인상으로는 남지 않았다. 그 이후로 드디어 나는 테드 창의 신작을 목마르게 기다리지 않게 된 듯하다. 실망한 것은 아니었으나,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숨」에 비해 명확히 전달되는 메시지가 없어서 그런 듯 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읽어본 바, 이 작품 또한 대단한 명작의 반열에 오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정정해서 말해야겠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지도, 특이점에 도달하지도 않지만, 아주 현실적으로 인공지능이 사회와 비즈니스의 영역에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를 그려내고 있다. 테드 창은 이런 영역에서 인공지능과 엮일 주제들은 거의 모두 건드리고 있다. 인공지능은 애완동물로서, 자식으로서, 사업 모델과 상품으로서, 업데이트 되지 못하는 구식 온라인 게임으로서, 그리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인격체로서 그려지고 있다. 10년 전 처음 읽어볼 당시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던 결말은 반전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고, 또 10년 동안 인터넷 세상 또한 많이 변했기 때문에 이렇게 예측력이 좋았을 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번에 읽어봤을 때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이 작품은 다른 테드 창의 작품에 비해 철학적인 면보다는 현실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고, 또 이 작품이 예측하고 있는 사회상이 벌써 많이 실현되었기 때문에, 또 10년 후에는 마치 ‘뉴로맨서’ 처럼 약간 구식 느낌으로 비춰질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2010년「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이후, 판타스틱도 망했고 한국에서는 테드 창의 신작 번역본을 그때그때 받아볼 수는 없게 되었다. 나의 테드 창에 대한 조급증도 같이 사라져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는 이 단편집 『숨』을 통해 처음 읽어보게 된 작품들이다.
스키너의 심리학스러운 주제에 스팀펑크 스러운 분위기를 섞어서 참신하긴 했으나, 결말의 반전과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짧아서 그렇다고? 이 작품집에서 가장 짧았던 「우리가 해야할 일」에서는 이런 기분은 아니었었다.
망막 프로젝터 (눈에 바로 쏴서 정보를 표시하는 디스플레이 장비인 듯), 모든 비디오를 저장하는 장비(이 소재는 웨어러블 기기와 그에 따른 ‘Quantified Self’라는 IT 트렌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하다), 음성 발화가 아닌 속발화로 명령을 할 수 있는 보이스 인터페이스, 그리고 모든 비디오를 맥락으로 검색할 수 있는 ‘리멤’이라는 장비. 이 모든 키워드는 정확히 2013년에서 떠돌던 IT 트렌드, 또는 그것의 발전형이다. 테드 창 아직도 회사 열심히 다니는 모양인데?
이런 소재 발굴 능력은 테드 창의 또 다른 특기이지만, 명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숨」같은 작품과는 약간 방향성이 다르다. 오히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또는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 거창한 물리 법칙으로 세계의 변화를 그린다기보다는, Y+5년 후 기술 발전에 따라 사회가 변화하고, 또 그에 따라 인간성도 ‘약간씩’ 변화하는 모습을 그린다. ‘리멤’이라는 장비를 착용하자, 인간의 기억력은 한 단계 또 발전한다.
‘또’ 발전한다고? 그렇다. 인간의 기억력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문자가 발명되자 기억력이 증가했다. 휴대용 메모 수첩과 볼펜의 발명도 기억력을 증가시켰다. 스마트폰과 소프트웨어 자판 역시 기억력을 발전시켰다. 이런 발전상은 ‘케빈 켈리’라는 기술연구가가 말하는 기술의 방향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문자의 발명과 리멤의 발명은 동일하게 인간성을 향상시킨다. 우리는 기술을 거부할 필요가 없다.
작품에 있어서 한 가지 걸렸던 점은, 두 병렬 구조가 극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약간 억지스런 느낌을 받았다는 점.
멸종에 이른 앵무새가 인간을 바라보는 이야기. 그렇게 감명깊진 않았다.
창조론이 배경인 판타지 월드에서, 과학자는 언제나 창조의 의미에 정합적인 증거만을 발견한다. 그런데 만약 창조의 의미에 반하는 증거가 발견된다면?
우리의 사고방식에 반하는 설정을 통해 종교쟁이들을 돌려까고 있는 작품이지만, 아쉽게도 강렬하지 않아서 시시한 느낌이 좀 들었다.
평행우주의 나와 이야기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매우 재미있고 소소한 질문이지만 이렇게까지 다양한 방향성으로 그린 작품은 없을 것이다. 평행우주의 나와 대화하는 기계가 발명될 때 가능한 온갖 사회적 변화를 다 그려냈다. 곧 죽을 사람한테 평행우주로 송금한다 하고 사기치고 돈 뜯어내기, 전쟁에 응용하려는 장군, 자기 자신과 협업 프로젝트 진행하기(회사원 테드 창!), 배우자를 잃고 상심하는 사람들끼리 만나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인공이 분명 사기꾼인 나쁜 사람인데 너무 얌전하고 감성적으로 느껴진다는 점. 먹물인 테드 창이라 하드보일드 스러운 캐릭터를 그리지 못하는 것인가? 이점만 빼면 수작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전달되어야 하는 메시지는 바로 ‘인간의 결정은 평행우주를 가르지 못한다’는 것일 것이다. 평행우주를 가르는 것은 단지 소립자의 양자적 효과일 뿐이고, 인간이 “짜장면을 먹을까?” 혹은 “짬뽕을 먹을까?” 하고 내리는 결정 때문은 아니다. 물론 평행우주가 나뉘고 그 LED 불빛에 따라 짜장면이나 짬뽕을 가를 수는 있다. 이제껏 평행우주 설정에 대해 이렇게 정확한 물리법칙에 입각해 평행우주를 그린 소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매우 참신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ZJyLTY6nsg
물론 2004년 『당신 인생의 이야기』만큼은 아니고 또 개중 실망스러운 작품도 있었지만, 2019년 『숨』은 그 강렬한 테드 창 식의 경이감을 전달하는 데 충분했던 것 같았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숨」의 경이감과 더불어,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과 같은 작품은 기술의 발전이 어떻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가 하는 주제에도 천착해 있는 듯하다.
놀랍게도 나의 2021년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어본 그 시절의 테드 창 앓이를 반복하는 중이다. 최근 SFnal이라는 단편집이 출간되었는데, 거기에 「2059년에도 부유층 자녀들이 여전히 유리한 이유」라는 테드 창 신작이 실린 것이다. 다시 테드 창의 신작을 기다리는 또 한 번의 여정을 시작하라는 계시인 듯하다. 자, 이제 우리 모두 2035년에 출간될 테드 창의 세 번째 단행본을 기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