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처음 읽었을 때는 무슨 소용돌이의 물리학적 특성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고 하는 (공기의 소용돌이인 '허리케인'이나, 중력의 소용돌이인 '블랙홀'같은) 물리학의 법칙을 소재로 한 SF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 자체가 유명한 물리학 교수라고 한다. 대학교수가 바쁘지도 않나 보다. 소설 쓸 시간도 있고.
그러고 보니까 소설 써본 과학 교수를 우리는 한 명 알고 있지. 칼 세이건이라는 유명한 천문학자 말이다. 『콘택트』라는 SF 소설을 써서 로커스 상까지 수상하고 영화화되었다. 다재다능한 사람들 졸라 짜증난다. 잘하는 거 하나만 하라고. 다행히도 폴 맥어웬은 그렇게까지 짜증나진 않다.
세이건은 자신의 우주에 대한 자신의 이념과 사상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려는 야망으로 그의 소설 『콘택트』를 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착해빠진 평화의 외계인이 자신의 계몽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인간에게 '프로메테우스의 불'인 설계도를 건넨다. 철학적이고, 사변적이고, 계몽적이다. 맥어웬이 첫 소설 『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을 쓰게 된 동기는 칼 세이건과는 좀 달라 보인다. 거창한 의도가 안 보인다. 내용은 그냥 스릴러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살아남은 일본인이 있고, 그는 잘못된 윤리관으로 세계를 어떻게 해 보려는 음모를 가지고 있다. 그의 무기는 병원성 '곰팡이'다. 곰팡이 포자를 흡입하면 독버섯을 먹은 것처럼 환각을 일으키며 죽어가는데(아시다시피, 곰팡이와 버섯은 비슷한 계통의 생물이다), 코로나바이러스만큼이나 잘 전염된다. 명망있는 곰팡이학 교수가 미스테리어스하게 살해당하는데, 그의 죽음의 비밀을 풀어서 곰팡이의 독성을 치료할 단서를 파헤쳐야 한다.
단일 탄소나노튜브의 열전도율과 열전전력은 미세가공된 현수장치를 사용하여 측정하였다. 관찰된 열전도율은 실온에서 3000 W/Km 이상이며, 이는 거시적 매트 샘플을 사용한 이전 실험에서 추정한 것보다 2배 더 높다....
나도 못알아들으니 나에게 뭔가 기대하지 말 것. 다만 이 논문이 곰팡이와 관련된 건 아니라는 것만 알겠다. 물리학자답게 탄소나노튜브의 열전도율 같은 걸 측정하는 논문이라는 것도. 그의 연구 주제를 일반인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TED 영상이 있다. 거기에서는 이 물리학자는 아주 작은 로봇인 '마이크로 로봇'의 연구 성과를 소개한다.
앗 소설에서 나오는 거미 모양 마이크로 로봇! 이거였구나! 라고 외치셨다면 미안하지만 틀렸다. 실제로 맥어웬이 TED에서 소개한 마이크로 로봇은 소설 속의 마이크로 로봇보다도 더 작은 로봇이다. 실제 로봇은 손가락 지문의 골 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작다. 인간이 거미 형태를 잘 알아볼 수 있는 소설 속의 커다란 마이크로 로봇과는 기초 설계부터 다르다. 소설이 오히려 현실보다 너프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소설 속의 모든 소재는 폴 맥어웬의 전공 주제와는 별 관련이 없단 말인가? 그렇다. 곰팡이도, 거미 로봇도, 어떤 것에도 맥어웬이 왜 이 소설을 썼는지 드러내 주지 않는다. 소설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자로선 잘나갔지만, 좋아하는 글을 쓸 시간도, 소설 읽을 시간도 없었어요. 안식 휴가를 내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죠.
그냥 소설을 좋아해서 쓰고 싶었나보다.
그의 곰팡이 지식과 감염병 지식은 언뜻 보기엔 현실의 과학 이론을 잘 참조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일반인인 우리보다야 잘 하겄지. '코넬 대학교 기초과학동'에 곰팡이에 대해 잘 아는 옆 생물학자에게 물어보면 될 테니까. 작중에 등장하는 곰팡이인 '우즈마키'는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 환자에게 조증, 환각, 자살 충동 등의 환각을 일으키고, 장기를 공격해 내출혈을 일으키고 일주일 안에 사망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전염시킨다.
곰팡이가 전염된다고? 난 이것에 대해 할말이 있다. 우즈마키는 '전염성이 아주 높으며 호흡, 타액, 위액, 배설물을 통해 전염될 수 있다'고 나온다. 그런데 내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알게 된 전염에 대한 지식으로는, 호흡으로 전염되는 병원체를 막기 위해서는 마스크를 잘 착용하기만 하면 된다. 타액을 통한 전염을 막기 위해서는 역시 마스크를 쓰고 식당에 칸막이를 설치하면 된다. '위액, 배설물'은 뭐, 혹시라도 구토자가 발생하면 격리조치하고, 길에 싸지 말고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게다가 또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모두가 학습했듯이, 사망률이 높은 병원체는 재생산이 잘 되지 않는다. 우즈마키에 감염되면 일주일만에 사망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병은 잘 전파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에서 보듯이, 진짜 무서운 전염병은 무증상 상태에서 전염되어 확진자의 단 1% 정도만이 사망하는 병이다. (사망률과 전염성 둘 다 높은 흑사병은? 그건 쥐와 벼룩을 통해 전파되는 인수공통전염병이라 그렇단다. 나무위키 참조) 우즈마키가 그렇게 사망률이 높다면, 과학자들 가운데 "아 괜찮습니다. 사망률은 높지만 마스크를 쓰고 환자 격리조치를 행한다면 이 병은 금방 잠잠해질 거에요."라고 말하는 감염학 전문가가 없었단 말인가? 어떻게 전세계의 과학자들이 세계가 멸망할 것처럼 벌벌 떤단 말인가?
게다가 곰팡이라니? 곰팡이는 바이러스도, 박테리아도 아니다. 곰팡이란 버섯 비슷한 생물이다. 물론 현실에도 '전염되는 곰팡이'가 있긴 하지만 (우즈마키의 계통인 '진균류'),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전염되고,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치료약도 없는 곰팡이가 있다는 설정을 우리는 어떻게 상상해야 할까? 뭐 코넬대학교 동료인 균류학 교수를 인터뷰까지 했다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겄지. 이 문제점은 나같이 곰팡이에 대해 어설프게 아는 사람에게 더 자세한 설명을 필요로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바이러스 팬데믹을 겪고 있다. 박테리아 팬데믹도 유명한 사례가 있다. 그런데 곰팡이 팬데믹은 금시초문이다. 곰팡이가 바이러스인 코로나바이러스나, 박테리아인 흑사병처럼 팬데믹을 일으킬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려면 독자들을 더 많이 설득시켜야 하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곰팡이 전문가도 아닌 교수가 곰팡이에 그렇게까지 집착할 필요도 없었던 것 아닐까? 그냥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전염병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면 안되었을까? 물론 그 질병이 곰팡이여야 하는 이유가 작품 곳곳에서 발견되긴 하지만(모스부호를 일으키는 형광 곰팡이니 하는 것들), 그게 뭐 딱히 와닿는 이유였던 건 아니었다.
결말에 나온 치료제 후일담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우리 모두 백신이 얼마나 느리게 나오는지 (심지어 위급 전염병 상황에서도) 알고 있다. 1상, 2상, 3상에 뭐 FDA가 긴급 승인을 거치느니 마느니...그런데 결말에 나온 치료제는 그냥 자연계에 '살포'되고 대량으로 '공급'된다. 부작용이나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 나왔다거나 하는 얘기, FDA 승인을 거치는 과정도 없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불운은, (국내 한정이긴 하지만) 하필이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전염병의 준전문가 수준으로 지식을 습득하게 된 이후에 읽혀지게 된 것이다. 아니, 감염병 전문가도 아닌 물리학자가 썼는데 재미있으면 된 거 아니냐고? 이 소설이 출판된 연도와 같은 해에 개봉했지만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무시무시한 예측력으로 예언한 『컨테이전』이란 영화를 보았는가? 개봉 당시엔 그냥 그런 영화였지만 코로나 이후로 다시 주목받고는 흥했다. 무릇 SF란 이런 재미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현실을 예측하는 재미 말이다. 당연히 작가 폴 맥어웬 또한 코로나 사태같은 건 예측 못했겠지. 8년동안 집필해서 2011년에 출판했으니. 뭐 미국 시장에서 코로나 사태 이전에 거의 8년 동안 잘 읽혀졌으니 별 상관은 없다. 고작 한국의 이름 모를 3천구독따리(3천만 아님) 유튜버 겸 회사원 나부랭이의 리뷰에서 뭔 소리를 한다 해도 말이다.
뭐 이점만 빼면 스릴러로서의 완성도는 취미로 소설을 쓰는 노벨물리학상 후보에까지 오른 코넬 대학교 물리학 교수 치고는 준수한 편. 뭐라고? 너보다 더 똑똑하고, 학력도 높고, 잘 살고, 소설 쓰는 재능도 있고, 책도 많이 팔았다고? 짜증나는 거 숨기지 말라고? 아닌데? 짜증 안나는데? 정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