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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서울 전쟁

김필산 중편 소설

타임머신이 일상화되었지만 미래든 과거든 역사를 바꿀 수 없는 결정론적 세계.
한국의 인구 절벽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독재자 대통령 조부진이 당선된다.
그의 해결책이란 바로 미래의 서울을 침공하여 서울을 두 개로 만드는 것.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 교수 김신주는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느날, 혼혈 한국인 완서준이 나타나 대학원생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데,
김신주는 사악하게도 자신의 논문을 대신 쓰도록 과거로 완서준을 보내 버린다.

졸지에 시간 유학생이 되어 버린 완서준,
그는 젊은 시절의 김신주를 반드시 교수로 만들어 내야 한다!
국제정치에는 부모도 자식도 없다. 오직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다.


김신주 교수의 책을 읽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다. 알고 보니 그가 개척한 ‘현실주의적 다중역사정치학’ 학파의 관점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구로 유명한 말이었다.


수업은 어렵다는 평이 많았다. 초반에 시간여행 물리학의 결정론 원리와 수식을 다루는데, 거기서 정치외교학 전공생들 대다수가 수강을 철회했다. 나중엔 거의 4분의 3이 빠져나가고 15명 내외만 남았다. 김신주 교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학생들의 숫자를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나는 남았다. 내게 초반의 물리학 이론들은 오히려 쉬웠다. 난 오히려 다른 부분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수업 초반부터 학문의 근본적인 문제 제기에 쉽사리 동의할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수업의 문제도, 학문의 문제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 ‘두 서울 전쟁’이었다. 국가는 국제정치적 이득을 쟁취하기 위해 어디까지 인류애를 저버릴 수 있을까? 두 서울 전쟁이 과거에 일어났고 또 미래에도 일어나리라는 사실은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전쟁이 왜 발발했는지 고등학교 미래사(史) 선생님 누구도 속 시원히 알려주지 않았다. (중략)


미래란 결정되어 있고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밝혀졌다. 그러나 과거에 내가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들을 했던 건 분명하다. 그런데 결정된 미래란 그 선택들에 의해 형성된다. 그럼 자유의지란 허상인가? 인생이란 오래 전 과거의 철없는 선택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파괴적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아홉 살 때 한 잘못된 선택 때문에 내 지금 인생이 이렇게 풀린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미래에서 찾아온 ‘나 자신’을 만난다면, 미래를 심각하게 망쳐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해도 과거의 나를 용서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경험은 정말로 짜릿했기 때문이다.




아홉 살의 나는 학교 친구들과 함께 몰려다니며 가상현실 컴퓨터 게임이나 하던 평범한 꼬맹이였다.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동네 한가한 놀이터에서 그네 같은 것들을 타자고 친구들을 꼬시기 시작했다. 한두 명 나오긴 했는데 현실 놀이에 적응하지 못했는지 금방 돌아가 버렸고 나 혼자 1인용 오프라인 게임의 적막함을 즐기며 놀이터에서 뭉그적거리던 중이었다. 우레탄 바닥으로 된 놀이터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쓸쓸한 곳이었고 나는 꼬맹이답지 않게 외롭고 적막한 감성을 느끼며 그네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쏟아지는 햇살을 등지고 한 어른이 나타났다. 바로 대학생인 나 자신이었다.


어른…이라고? 대학 졸업반이라고 그렇게까지 어른은 아니지만 아홉 살 꼬맹이에겐 엄청나게 큰 어른처럼 느껴지지 않았겠는가? 나는 어른인 나에게 이상한 친근감과 동질감을 느꼈고 그건 어린아이에게는 무척 신나는 일이었다. 나는 너무 가슴이 뛴 나머지 기절해본 적도 없으면서 ‘이거 까딱하면 정신을 잃겠는데?’ 하고 걱정하기도 했다. 이제부터 내 모든 것을 걸 만한 인생의 전환점이 시작되는 듯한 느낌. 나와 열 몇 살이나 차이 나지만, 쌍둥이 형제만큼 가까운 관계, 아니 사실상 나와 동일한 인물이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나다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누구나 미래나 과거의 자신을 처음 마주치면 유전자 차원에서 설명할 수밖에 없는 기묘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물에 1/4의 공통 유전자를 가진 사촌과, 완전히 유전자가 똑같은 쌍둥이 형제가 같이 빠졌다면 누구를 먼저 구할래?”라는 진화생물학에 전해 내려오는 문제처럼 말이다. 게다가 쌍둥이 형제라면 유전자가 같더라도 인생의 경험은 다를 수 있지만 미래에서 찾아온 나 자신은 나와 똑같은 인생을 살았던 존재이기까지 하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날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뜻이다 (아, 근데 유일하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에 수많은 내가 있으니까).


그런데 왜 국가의 경우에는 그런 원리가 성립하지 않는 거지? 두 서울 전쟁 얘기다. 내가 김신주 교수의 책을 읽기 전부터 항상 가졌던 궁금증이었다.

아홉 살 내가 기억하는 스물세 살 나의 첫 대사는 이랬다.


“야, 형이라 불러.”


아홉 살 내가 어떤 위화감도 느끼지 않고 형이라고 불렀다는 게 골때렸다. 이 세상 누가 미래의 자신을 형이나 언니라고 부르겠는가? 하지만 그땐 그냥 그게 자연스러웠다. 아홉 살의 나는 신이 나 있었고 진짜 친형이 생긴 것처럼 스물세 살의 나를 따라다니며 별별 얘기들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홉 살의 내가 물어본 건 그러니까 대부분 이런 질문들이었다.


“형, 형이 나를 죽이면 형도 없어져요?”


“형이 나한테 로또 번호를 알려주면 형도 부자가 돼요?”


과연 장래 시간물리공학과 수석다운 싹수였다. 시간여행 역설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들 아닌가. 형의 답은 대부분 비슷했다. “그렇게 못해. 그건 그냥 물리법칙이야.” 건성으로 하는 대답에도 아홉 살의 나는 상처받지 않았고 ‘형’이 어떤 기분이길래 무기력한 목소리로 똑같은 답변만 반복하는지도 몰랐다. 그냥 신나게 질문을 퍼부어댔을 뿐이다.


그때부터 아홉 살 완서준은 시간여행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상상하곤 했다. 스물셋의 완서준이 이렇게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다면, 그보다 한 살 많은 스물넷의 완서준 또한 또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을 테고, 스물다섯의 완서준도, 스물여섯의 완서준도…, 백 살의 완서준도 존재할 것이고, 아홉 살과 스물세 살 사이의 모든 완서준들이 있을 거고, 또 나보다 어린 여덟 살과 일곱 살의 나도…. 그럼 이 백여 명을 한데 모으면 얼마나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 (물론 내가 백 살까지 살았다는 걸 확인해 본 적은 없다.)


아홉 살의 나는 운명처럼 시간여행 연구를 장래 희망으로 정했다. 청소년기 내내 한눈팔지 않고 열공한 덕에 서울대학교 시간물리공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차츰 후회가 찾아왔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시간여행 물리학이란 새롭게 밝혀질 게 없을 정도로 속속들이 다 밝혀졌음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물리학 이론 같은 건 없다. 물리학 연구자가 어떤 가설을 세운다면 미래에서부터 내려온 논문 데이터베이스부터 검색해 봐야 한다. 그럼 그 가설을 증명하거나 반증하는 물리학 실험이 반드시 존재한다. 물리학 이론뿐 아니다. 시설물 설계도, 기술 프로세스, 심지어 유지관리 노하우도 새로 발견하거나 발명하는 게 아니라 다 미래에서 왔다. 시간물리공학 전공이란 연구보다는 시간철도청에 취직해 시설물 관리 및 유지보수로 벌어 먹고살 수밖에 없는, 게으르고 따분한 전공이었다는 말이다.


과거의 나 때문에 현재의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받아야 하다니, 결정은 아홉 살 내가 내렸는데 대학생이 된 내가 뼈저린 후회로 고통받아야 하다니?


이 세상에 발견할 게 아무것도 없다니?





김필산의 중편소설 「두 서울 전쟁」의 전문은 BritG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타임트론 옴니버스 『백 년의 세계』 시리즈

「두 서울 전쟁」 (현재 글)

「시간통근자의 아파트」


「시간의 발명가」 (예정)
「백 년의 세계」 (예정)
「카오스루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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