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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작가 윤부장 Dec 15. 2021

(슬봉생) Ep 11. 병원 쇼핑

슬기로운 봉양생활


“지금보다 집은 조금 작아도 괜찮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병원이나 약국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했으면 좋겠다. 차가 있고 운전을 할 수 있으면 모를까, 내가 느끼기에 여기는 완전히 시골이야.”

“이사는 무슨 이사를 또 가. 난 안 가. 여기 너무 조용해서 살기 좋아. 우리가 시끄럽지 여기는 조용하고 좋아”

“약 하나 사고 싶어도 혼자 못 가고, 매번 OO이한테 사다 달라고 해야 하는데, 너나 다른 애들은 옆에 사는 게 아니니까 상관없을지 몰라도, OO이가 매번 심부름하느라 너무 힘들어”

그건 맞아. OO이가 우리 때문에 맨날 고생이 많아. 어제도 고기랑 김치랑 잔뜩 싸가지고 두 번이나 왔어”

"아빠, 이제 이사 가면 큰 누나한테 동네병원이랑 약국 심부름 안 시키실 거예요?"

"......"




부모님이 살고 계신 아파트는 세대 수가 작은 소규모 단지라  ′단지 내 상가′에는 작은 슈퍼, 부동산, 인테리어 숍, 피부관리숍 정도밖에 없고, 병원이나 약국이 모여 있는 제법 큰 규모의 '근린상가'로 나가려면  단지에서 약 1km, 최소 20분 이상은 걸어야 하는데, 걸음이 불편하신 아빠에게는 그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지시는 거다.


8개월 전, 두 분 모두 갑작스럽게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급하게 이사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에는 병원이나 약국의 입지는 집을 선택하는 데 있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전세 보증금에 예산에 맞춰야 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저층 아파트나 빌라는 선택에서 제외해야 했으며, 공동현관 출입 시 휠체어 이용이나 보행에 큰 어려움이 없는 집을 찾아야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


자식들이나 요양사님의 도움 없이 혼자 병원을 다니고 싶어 하시는 아빠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이번 기회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동네 병원을 자주 다니셨던 아빠의 ′병원 쇼핑′ 습관을 바꿀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시골에서는 조금 피곤하거나 어지럼증이 느껴지면 동네 병원에서 링거(비타민제)를 맞기도 쉽고, 돈만 내면 친절하게 집으로 찾아와 링거를 놓아주는 분(전직 간호사라고 했다)도 있었다. 가벼운 감기 증상에도 동네 병원 의사는 주사 처방에 관대했고, 처방전이 없어도 ′쎈 감기약′을 지어준다는 약국도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쇼핑을 하듯 여러 곳의 병원을 옮겨 다니는 일을 다소 부정적인 표현으로 ′병원 쇼핑′이라고 하는데, 아빠는 다른 분들에 비해 완치에 대한 기대감이나 건강에 대한 염려가 조금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병원 쇼핑′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병원을 몇 군데 더 찾아다니는 번거로움이 아니라, 뇌졸중이나 혈압과 같은 기저질환 때문에 이미 복용하고 있는 약이 상당히 많고 복잡한 아빠가 동네 병원이나 약국에서 기존 약과 혼용해서 같이 복용하면 안 되는 약을 처방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동네 병원과 약국에서도 아빠에게 현재 복용 중인 약을 물어보겠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지금 앓고 계신 질환과 드시고 있는 약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지, 걱정이 먼저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전세 계약은 후년 3월까지로 아직 1년 3개월이 더 남았다. 그때까지 아빠가 지금 집에서 마음을 다스리시며 잘 정착하실 수 있을지, 내년 봄에는 새로운 둥지를 다시 찾아드려야 할지. 어떤 것이 부모님에게 더 유리한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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