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봉양생활
2년 전, 신경과에서 뇌경색 처방약을 바꾼 이후, 아빠는 눈에 실핏줄이 갑자기 터져 시력을 크게 잃으셨다. 당시 신경과 교수는 아빠의 뇌혈관이 새로 내린 처방약을 버티지 못할 정도로 약할 줄은 몰랐다고 했고, 안과의 협진을 구했다.
안과 의사는 시력 손상의 이유가 신경과 처방약 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노화로 인한 황반 변성일 수 있는데, 시력을 다시 회복할 수는 없고, 이제 출혈이 자주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더 조심해야 한다고 하면서, 초반에는 매월, 좀 지나서는 2~3개월에 한 차례씩 출혈 예방 주사를 놓아주었다.
며칠 전, 아빠는 눈이 점점 뿌옇고 전보다 더 안 보인다는 말씀을 하셨다. 큰 누나는 대학병원은 바로 예약이 어렵고, 급한 대로 아빠를 동네 안과로 모시고 갔다. 병원에서는 망막에 출혈이 생긴 것 같으니 바로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통상 망막에 출혈이 생기면 자연적으로 마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은 망막 안쪽에 광범위하게 피딱지가 많이 붙어 있었습니다. 망막에 떠다니는 피는 잘 제거가 되었지만, 자칫 2차 출혈이 예상될 정도로 딱지가 망막에 단단하게 붙어 있어 수술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현대 의술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만...
조금 밝게 보이시는 정도일 겁니다. 시력은 없다고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출혈 예방을 위한 주사 치료는 사실 이제 큰 의미가 없습니다. 새로 나온 주사약이 있기는 하지만, 비보험으로 비싸기도 비싸지만, 출혈을 100% 막아준다는 보장도 없고, 이미 피딱지가 망막에 워낙 많이 붙어 있어 거꾸로 딱지가 출혈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현재로서는 저희가 더 이상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은 아빠가 식탁의자 4개를 다 닦으라고 하셨다고 누나가 아침부터 불평이다. 밥풀 등이 묻어서 생긴 얼룩들인데, 세제 묻혀 수세미로 닦고 드라이기로 말려야 하기에 일이 꽤 많고, 쎄무천으로 만들어져서 때도 잘 타고 잘 안 진다고 한다.
눈이 안 보인다면서 얼룩은 보이냐고, 엄마가 아빠 안 보인다는 거 다 거짓말이라고 하신다는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