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봉양생활
"아직 안 자니?"
"이것 좀 고쳐봐라. 화면에 노래 가사가 나와서 노래 배우기 좋다고 하던데,
노래는 나오는데 화면이 꺼진 거 같아. 뭐 난 어차피 하나도 안 보이지만."
"글자도 하나도 안 보이시는데, 화면에 가사가 나오면 어떻고 안 나오면 어떠세요?"......
라는 말이 막 입 밖으로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순간, 며칠 전 막내 누나가 안방 화장실 안전등(새벽에 켜 두는 등) 전구가 나갔다고, 아빠가 당장 사 오라고 해서 늦은 밤에 다이소와 동네 슈퍼를 전전하면서 짜증을 내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아빠의 자잘한 소원 수리는 매일같이 끊이질 않는다.
나한테 부탁하시는 건 주로 집수리나 공구를 써야 하는 작업들이 많은데,
오늘도 집에 오자마자 침대 옆에 세워 둔 안전봉이 엄마가 자꾸 발로 차서 움직인다고, 굵은 철사로 침대랑 같이 단단히 묶어 달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금방 하겠구나 싶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멀쩡한 침대 하단에 피스를 박아야 하는데, 하단부는 가죽으로 되어 있어서, 피스가 잘 안 박히고, 어찌어찌 뚫었는데 가죽이 찢어져 나가고, 철사를 고정시키는 과정에서 손가락도 베이고, 오랫동안 쭈그리고 앉아 있다 보니 지병인 허리디스크가 도질 지경이고.....
왜 해야 하는지도 알겠고, 내가 하는 게 맞기는 하는데...
엄마가 발로 이걸 안 차면 될 일인데, 아빠가 그냥 좀 넘어가시면 되는 일인데 라는 생각에 자꾸 신경이 예민해진다.
낡은 MP3의 사용법을 다시 알려드리면서, 윤종신이 부른 '엄마가 많이 아파요'라는 곡이 생각났다. 그래도 아직 고쳐달라는 것을 고쳐 드릴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감사하다.
'엄마가 많이 아파요' - 정석원 작사/작곡, 윤종신 노래
엄마가 많이 아파요 그렇게 예민하신 데
우리를 보고 웃네요 이모가 오니 우네요
내가 아주 어렸을 땐 엄마랑 결혼 한 댔죠
근데 엄마가 아픈데 아무것 해 줄 수 없죠
엄마도 꿈이 많았죠 한땐 예쁘고 젊었죠
우리가 뺏어 버렸죠 엄만 후회가 없대요
엄마는 아직 몰라요 시간이 이제 없단 걸
말해 줄 수가 없어서 우린 거짓 희망만 주네요
언젠간 잘해 줘야지 그렇게 미뤄만 두다가
이렇게 헤어질 시간이 빨리 올 줄 몰랐죠
엄마 이제 나는 나는 어쩌죠
하루하루 빠르게 나빠져 가는 모습
나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
차라리 잠을 주무시다가 편히 가시기만 바라죠
엄마가 좋아한 분당에서 다시 살게 해주고 싶었어
엄마가 고쳐달라 부탁한 카메라도 고쳐줄게
하느님 불쌍한 우리 엄마 한 번만 살려주세요
엄마가 무서워하세요 좀 더 시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