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질적으로 굉장히 예민하네요. 굉장히 잘 놀라고, 소심하고요. 시끄러운 거 정말 싫어하고 오구오구 해주는 거 너무 좋아하고, 눈치도 굉장히 많이 보네요."
성격 검사 결과 같지만 놀랍게도 검안 결과다.
검사할 검檢 에 눈 안眼 자를 사용하는 그 검안이다
1분 정도 기기로 내 눈을 보고 나서 원장님께서 이야기하시는 내용들을 듣고 있으면 눈을 통해 내가 탈탈 털리는 느낌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거라서 살면서 굉장히 불편했을 텐데 괜찮았어요?"
묻는 대답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당연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눈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겠거니 아니 이런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난 그저 눈을 통해 들어오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으며 아니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살아왔었으니까.
뇌는 눈의 일부이기 때문에 뇌와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반적인 검안이 그저 눈의 상태만 보는 것이라면 이곳의 검안은 눈을 통해 뇌를 진단한다. 그래서 눈의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영화관에서 사물과 자막이 두 개 이상으로 보이고, 달리는 차 안에서 거리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 근시가 심해서가 아니라 내가 너무 예민한 사람이라서라는 것을 살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모든 감각들이 항상 긴장상태이다. 특히 눈은 나의 의지도 아니고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지만 언제나 눈동자를 움직이며 주변 정보를 수집한다. 그래서 초점을 맞추지 못한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무도 심지어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까탈스럽냐고 매일 구박받던 말들도, 소음에 눈살을 찌푸리는 나에게 왜 그렇게 예민하냐는 눈치들도, 어우 저 까칠이라는 익숙한 말도. 우리 집 사람들은 모두가 무신경한 사람들이라서 내가 유난 떠는 특이한 아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오감이 열일을 하며 주변 정보를 캐치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피곤하다. 난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장점 중 하나로 머리만 땅에 닿으면 장소불문 어디서든 꿀잠을 잘 수 있다고 자랑해 왔는데 깨어있는 동안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으니 죽은 듯이 잘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사주를 보면 촉이 발달해서 감이 좋다는 말을 항상 들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쌓인 데이터들 덕분이었다.
기질적으로 예민하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생존과 맞닿아있다. 주변의 모든 정보들을 수집해서 안전하게 나를 지키려는 것. 나는 무엇보다도 생존에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왜 이리 예민보스일까 라는 게 아니라 오오 이 예민함을 직업으로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까? 나의 예민함을 잘 써먹어보고 싶다!라는 희망을 보려고 했던 게 참 좋았다. 나라서 좋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지금이 제일 행복해!라는 말을 꽤 자주 하는 나다운 발상이었다.
나는 이런 나라서 내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