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싫어했는데 좋아졌다고 하셨잖아요. 그 기준이 무엇인가요?"
난 나에 대해 특히 나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원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이 질문을 듣고 생각해 보니 한 번도 어떤 기준으로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그만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꼭꼭 숨겨둔 진심을 언제나 잘 읽어냈고 표현해 줬다. 앞으로 어떤 사람도 이보다 더 나를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알게 된 것 하나만으로 내가 태어난 이유가 충분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좋아해 준 그 사람 덕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상관없이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그걸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적어도 질문을 받기 전에는 그렇다고 믿었다.
나는 하와이안 피자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피자가 하와이안 피자였는데 그걸 함께 먹었던 게 정말 좋아하는 큰삼촌과 큰 외숙모였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시간이 된다.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와는 상관없이 함께 호흡하며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 그 자체로.
좋아하는 책에 리틀 라이프가, 좋아하는 밴드에 브로콜리 너마저가 빠지지 않는 것도 언제나 그 시작에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생각해 보면 그것의 본질을 뛰어넘는 누군가의 다정함들 덕분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언제나 내 편에서 함께해 주는 밑미 감사일기 메이트님들, 언제나 앉아서 끄적이고 있으면 담아갈 봉투를 챙겨주시던 파피어 프로스트, 머뭇거리고 있으면 조심스럽게 도움을 드려도 될까요? 를 물어봐주시는 롤드페인트,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고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데스커 라운지, 나의 취향을 알고 언제나 센스 있게 추천해 주시는 무슨 서점, 한두 번 방문만에 나를 기억해서 반갑게 맞아주시는 살롱드북과 비화림 서점까지. 심지어 나의 최애 출판사 난다도 사실 그 시작점에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민정 시인님이 계셨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에 대한 정의는 이 문장이 더 정확할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혼자가 제일 좋은 극 내향형 인간을 계속 밖으로 끄집어낸다. 기질적인 편안함을 이겨내는 용기의 근원 나에겐 그건 온전히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