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문장을 드립니다
가을은 모든 날, 모든 시간이 가을답다. 나무의 색이 변하지 않아도, 여전히 기온이 높아도 아침에 밖을 나섰을때 느껴지는 공기부터가 다르다. “와, 가을이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2024년, 올해는 9월말까지도 여름인가 싶게 기온이 높았다. 추석때 30도가 넘었으니. 그럼에도 가을은 가을이었다. 하늘은 점점 더 높아졌고, 그늘의 공기는 서늘하기까지 했다. 같은 하늘이어도 높이가 다름이 느껴지고, 어느 순간 하늘을 올려다보면 ‘가을하늘이네?’라고 느껴진다. 특별히 달라진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름과 가을의 하늘은 확연하게 느낌이 다르다.
너무도 짧은 가을. 그마저도 기온이 들쑥날쑥, 비오고 흐려서 단풍 마저도 예쁘지 않은 올해 가을. 그래서 잔뜩 풀죽어 있던 요즘. 오늘 아침, 기온이 떨어진단 소리에 평소보다 조금 두껍게 입고 현관 밖으로 나갔다. 순간 느껴지던 차가운 공기.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코끝이 시릴 정도의 찬공기. 그래 이거지! 이게 가을아침이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온도, 공기, 아침. 기분이 좋아졌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번주 내내 이 기온이라면 계속 나와서 느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원으로 향했다. 날이 흐리다고 비가 온다고 올해는 무슨 가을이 이러냐고 툴툴대는 동안에도 나무들은 부지런히 제 몫을 하고 있었다. 색을 갈아입고, 나뭇잎을 떨궈내며, 그 자리에서 묵묵하게. 기온이 예전같지 않고, 왔다갔다 하더라도 그저, 본인들의 일을 해내고 있었다. 환경에 따라 빠르고 느림의 차이는 있지만 건너뛰는 법은 없다. 색이 조금 탁하고 예전만큼의 화려함을 뽐내지는 않아도 할 수 있는 자신들의 최선을 다 하고 있었다.
난 어떤가? 환경을 핑계로, 이런저런 이유들을 들이밀며 내 할 일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봤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할수 없다고,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미루고 또 미루고 있는것들. 주어진 상황 안에서 환경 안에서도 충분히 내가 할수 있는 것들을 하면 되는데 온갖 핑계를 가져다 대며 움직이지 않고 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건 시스템의 문제라고, 어쩔 수 없는거라고 툴툴거리면서.
이제 겨우 두달 남은 2024년. 이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한번쯤 돌아봐야 할 때. 2025년도 올해와 똑같이 보내지 않으려면 올해를 돌아보고, 고쳐야 할 것들은 고치고 새롭게 해나가야 할 것들은 하나씩 계획을 세워야지. 너무 오래 움츠려 있었다. 온갖 핑계들을 가져다대면서. 다시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가을은 모든 날, 모든 시간이 가을답다. 나의 모든 날, 모든 시간도 나다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