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
7월 8일 일요일 오후 3시.
홍화중학교 정문에 아이들이 모여 있다. 문교, 태호, 표건, 효민. 그리고 가은.
아이들은 재혁이가 사라지고 난 뒤에 한 번도 함께 야구를 한 적이 없었다. 함께는커녕 그 이후에 배트를 잡아 본 적도 없었다. 남자 아이 네 명과 여자 아이 한 명.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가은아, 너 4반이지?”
효민이 쭈뼛거리며 가은에게 다가선다.
“어? 응.”
당황한 가은이 짧게 대답한다. 다른 아이들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문교만 둘을 곁눈질로 쳐다본다. 표건이는 운동화 앞 코로 땅바닥을 톡톡 차고 있고, 태호는 어딘지 불편한 기색이다.
사실 태호는 이 모임에 오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재혁이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바로 얼마 전까지 잊고 있었다. 재혁이가 실종 되던 날, 편의점 앞 간이 의자에 앉아 멀찍이 걸어가는 재혁이를 목격했었다는 사실을.
점심시간. 효민이 태호를 찾아왔다. 재혁이의 누나를 만나 이번 주 일요일에 재혁이의 집에 가기로 했다는 약속을 듣자 잊고 있었던 기억이 저 멀리에서 달리기를 하듯 뛰어와 머릿속을 강타했다.
“아……. 나는…… 안 갈래.”
“뭐? 왜?”
태호는 당혹스러운 마음에 눈을 굴렸다. 손에서 땀이 났다.
“나 그 날 약속 있었던 거 같아.”
“뭐? 무슨 약속?”
이걸 뭐라고 설명한단 말인가. 뭐라고 둘러댄단 말인가. 효민은 태호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있었던 거 같은 건 뭐야? 야, 친구가 그렇게 됐는데 가서 인사라도 하자.”
“……어? 나는…… 좀…….”
“누나한테 내가 너랑 표건이한테 연락한다고 말 해 놨어. 누나도 좋아하더라고. 같이 가.”
어쩐 일로 단호하게 말을 맺는 효민을 보니 더 이상 주춤거릴 수가 없었다. 머리가 하얘진 태호는 찝찝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학교에 도착하자 모두들 이미 와 있었다. 태호는 어색하게 인사하고 가장 구석진 자리에 서 있었다.
아이들은 예전만큼 친하지 않았다. 재혁이의 사고가 이들을 갈라놓은 것처럼 전과 같이 지낼 수 없었다. 5인방 중 한 명이 사라지고 나니 팀은 자연스레 와해되었다.
“다들 와 있었네?”
잠시 뒤 예나가 웃으며 아이들을 향해 다가왔다. 재혁이가 죽고 나서 예나는 옆 동네로 이사를 했다. 예나가 이끄는 대로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간 뒤 내렸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동네.
“누나. 여기로 이사 왔어요?”
태호가 두리번거리며 예나에게 묻는다.
“응. 왜?”
“4학년까지 여기에서 살았어요.”
“어? 정말?”
예나가 신기하다는 듯이 손뼉을 탁! 치며 묻는다.
“네.”
태호는 이어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사실 태호는 홍화초등학교로 전학 가기 전, 이 동네에서 재혁을 처음 만났다. 그때 재혁은 홍화초등학교에서 친한 친구 몇 명을 이끌고 태호가 다니던 초등학교로 축구 원정을 왔었다. 몇 차례 그렇게 만나 얼굴만 알음알음 알게 된 사이. 그런데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홍화초등학교로 전학을 간 태호를 재혁이 알아봤다.
“어? 너 우리 학교로 전학 왔냐?”
“응.”
“요즘도 걔네들이랑 축구해?”
“아니. 지금은 안 해.”
“야. 그럼 이제 나랑 야구하자.”
대수롭지 않게 씩 웃으며 태호를 자신의 야구팀에 넣어준 재혁. 5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야구팀이 꾸려지기 전까지 태호는 재혁의 캐치볼 상대였다.
그랬던 재혁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태호는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한편으로 재혁은 멀리 떨어진 다른 도시에서 발견 됐다. 태호가 재혁을 봤다고 말해본들 경찰이 재혁을 발견하는데 있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야! 여기 편의점 같은 거 없어?”
한참 축구를 하던 재혁이 태호와 친구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가장 가까이 있던 태호가 재혁에게 다가섰다.
“좀 가야 해. 저 아래로. 같이 가자.”
다소 통통한 태호는 축구가 딱히 재미있지 않았다.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공을 쫓으니 같이 했던 것뿐이지. 날쌘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10분가량 함께 거리를 내려가는 동안 둘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사내 아이 둘은 멀뚱멀뚱 길을 따라 내려갔다. 편의점에 들어간 재혁은 냉장고를 열고 음료수를 꺼낸다. 시원한 음료수를 먹고 싶은 마음은 태호도 굴뚝같았지만 수중에 돈이 없었다. 물끄러미 재혁을 눈으로 쫓는데 계산을 하고 뒤를 돌아본 재혁이 태호에게 똑같은 음료수를 건넨다. 태호는 선뜻 건네받지 못하고 쳐다만 본다.
“자.”
재혁이 재차 태호에게 음료수를 권한다. 태호는 눈을 꿈벅이며 의외라는 표정으로 재혁을 바라보고 얼떨결에 음료수를 건네받았다. 재혁은 씩 웃으며 들고 있던 음료수 뚜껑을 돌린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편의점 문을 밀고 나가더니 태호가 나올 때까지 문을 잡고 있다. 태호는 느릿한 걸음으로 재혁을 따라 편의점 밖으로 걸어 나온다. 태호가 문을 통과하자 재혁이 잡고 있던 문을 놓는다.
“가자.”
재혁은 고작 이 한마디만 하고 앞서 걷는다. 왔던 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태호는 재혁이 자신에게 건넸던 음료수가 1+1으로 판매하던 상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만약 자신이라면 얼굴만 알음알음 아는 친구에게 선뜻 음료수를 건네줬을까? 뭐 줄 수도 있지만 아직은 어색한 친구에게? 태호에게 재혁은 그렇게 기억되어 있었다.
예나가 이사한 집은 버스 정류장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다세대 주택들이 늘어서 있는 주택가 한 곳에서 예나가 걸음을 멈췄다. 예나는 자신의 뒤에 줄 지어 서 있는 아이들을 보고 미소를 지어준 뒤 대문을 열었다. 꽤 오래되어 보이는 빨간 벽돌집. 예나는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 단출한 집안이 나타났다. 현관에서 바로 보이는 일자형 부엌에는 재혁의 어머니가 음식을 접시에 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보고 힘없는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원래 부모보다 먼저 떠난 아이는 제사를 지내주지 않아. 그래서 재혁이 아버지가 반대했단다. 하지만 나랑 예나는 그럴 수가 없었어. 올해 딱 한 번. 더 이상도 없고 딱 한 번만 지내게 해 달라고 아버지한테 사정을 했지.”
거실이라고 할 것도 없는 작은 집. 재혁이의 제사상은 안방에 만들어져 있었다. 한 여름이지만 창문에는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었다. 어두운 방 안에 재혁의 사진만 홀로 웃고 있었다. 재혁이 아버지는 집에 없었다. 먼저 가버린 자식 제사상을 내가 봐서 뭐하나. 마음만 더 아프지. 친구들 가고 정리되면 전화해라. 예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왔다고 하신다.
어머니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간 아이들은 절을 해야 하나 쭈뼛거렸지만 예나가 말렸다.
“그런 거 안 해도 돼. 우리는 그냥 여기 앉아서 재혁이한테 인사나 하려고 했어.”
예나의 제안으로 아이들은 제사상을 보고 앉았다. 하지만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불편한 침묵이 흐르자 예나가 아이들을 둘러보더니 먼저 인사를 시작했다.
“재혁아. 우리가 왜 그렇게 싸웠는지 모르겠어. 그치? 지금은 이렇게 보고 싶은데……. 네가 없는 1년 동안 정말 많이 변했어. 네가 없어도 시간이 계속 흘러간다는 게 이상해.”
예나는 눈물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어디선가 죽은 사람을 자꾸 생각하면 천국에 못 간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래서 이제는…… 너한테 인사를 하고…….”
예나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예나는 남은 말을 마저 했다.
“이제는…… 이제는 그만…… 너를 놓아주려고.”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이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예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눈물을 닦았다. 잠시 숨을 내쉬더니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음으로 인사할 사람?”
아이들은 모두 재혁이에게 한 마디씩 말을 건넸다. 모두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표건이가 말을 끝내자 가은이 시작했다. 가은이 마치자 효민이 말했다. 다소 담담하게 문교가 인사말을 건넸다. 문교의 말을 끝으로 침묵이 흘렀다. 아이들은 남은 태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태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호는 입을 다물고 끄억거리며 여전히 말없이 앉아있었다. 대신 태호는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하지 못한 말을 꾹꾹 담아 눈물로 내뱉듯이…….
“다들 오늘 와 줘서 고맙다. 작년 담임선생님도 가끔 전화를 해서 재혁이 이야기를 해준단다. 다들 재혁이를 사랑해줘서 고맙다. 아…… 그리고 이건 남은 음식인데 조금씩 나눴어. 우리는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하고, 여름이라 오래 놔두면 상할지도 모르니까 집에 가면 빨리 냉장고에 넣어둬라.”
재혁이의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포장한 작은 종이가방을 쥐어줬다. 그러면서도 연신 아이들을 쓰다듬었다.
“고맙다. 애들아. 정말 고맙다.”
눈물이 맺힌 눈으로 거듭되는 어머니의 감사 인사에 아이들은 몸 둘 바를 몰랐다.
“엄마, 내가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고 올게.”
예나가 아이들 배웅을 자처했다. 계단을 내려와 대문을 나설 때까지도 어머니는 2층 난간에 서서 멀어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