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재혁이를 따라가볼래?
“가은아. 어디 갔다 와?”
가은이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자 오랜만에 집에 놀러온 이모가 가은을 맞았다.
“어? 이모?”
이모는 웃으며 가은이 들고 있는 종이가방을 건네받았다.
“이게 뭐야?”
“아…….”
가은은 뭐라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종이가방을 열어 본 이모가 가은을 보며 물었다.
“제사 음식이야?”
“응.”
“이걸 네가 어디서 났어?”
“아……. 나랑 소꿉친구였던 재혁이……. 오늘로 1년 됐대. 아줌마가 싸주셨어.”
“재혁이? 그 어린애 제사를 지냈어?”
이모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사까지는 아니고……, 그냥 친구들이랑 인사만.”
현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엄마가 주방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왔으면 손 씻어.”
“이모. 잠깐만.”
가은은 이모를 남겨두고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었다. 쏴아 하면서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따질 것이 많은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했다. 이모도 물론 재혁이를 알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재혁이가 증발하듯 한 순간 사라지더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친구인 가은도 충격을 받았는데 가족들은 오죽할까? 게다가 범인은 1년이 지나도록 잡히지 않았다. 남은 가족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오늘 본 아줌마와 언니는 위태로워 보였다. 그런데 그깟 제사가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가은이 손을 씻고 거실로 나오자 주방에 서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식탁 위에는 재혁이 제사음식이 들어있는 종이가방이 놓여있었다.
“엄마, 이모는?”
“네 방에.”
엄마는 콧노래를 부르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모가 오랜만에 놀러 와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가은은 종이가방채로 냉장고에 넣고, 방으로 향했다.
이모는 가은의 침대에 걸터 앉아있었다. 방문에 가은이 서 있는 것을 보더니 웃으며 옆을 톡톡 쳤다. 가은이 이모 곁에 다가가 침대에 앉자 이모가 잠시 가은을 내려다보더니 망설이듯이 입을 열었다.
“재혁이 범인 못 잡았지?”
“응.”
가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모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재혁이가 너 따라왔어.”
“뭐?”
“지금…… 여기 있다고.”
“뭐?”
이모는 조용히 가은의 눈을 바라보았다. 가은은 당혹스러웠다. 재혁이가 여기 있다고? 이게 대체 무슨 말이람?
“이모. 무슨 소리야?”
“쉿! 엄마한테 못 들었어?”
“뭘?”
어리둥절한 가은에게 이모가 소리 낮춰 말했다.
“이모는 조금 볼 수 있는 사람이야.”
“어?”
“진짜…… 조금.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조금…… 느낄 수는 있어. 그것도 익숙한 사람의 기색만 느낄 수 있어. 재혁이는…… 어렸을 때부터 봤기 때문에 확실해.”
가은은 혼란스러웠다. 이모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전 처음 듣는 말이다. 엄마한테도 들은 적이 없다. 가은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뭐…… 들은 적 없는데? 뭐? 재혁이?”
“네가 재혁이 제사음식을 갖고 들어와서 따라왔을지도 모르고.”
“아냐. 나만 갖고 온 거 아냐. 아줌마가 다 나눠줬어.”
가은의 말을 들은 이모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모르지. 암튼 재혁이는 너를 따라왔어.”
가은은 갑자기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양 손으로 팔을 문지르면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거기 아니고. 사람들은 왜 다들 뒤를 돌아보는지 모르겠네.”
“응?”
“너한테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아. 근데 그게 뭔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소리는 못 들으니까.”
“그럼 뭘 하고 있는데?”
저도 모르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가은이 이모에게 물었다.
“내가 자신을 알아본다는 걸 느낀 것 같아. 계속 너랑 내 사이를 맴돌고 있어.”
“어?”
“그런데…… 너무 슬퍼. 느낌은 그래.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야.”
이모의 말을 들은 가은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머물러 있다는 재혁이.
“이모.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해?”
이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나도 모르지. 재혁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니까. 그냥…… 너무 슬픈 기색이야.”
열린 창문 사이로 한 줄기 바람이 들어왔다. 가은의 침대 머리맡에 걸어두었던 하얀 깃털로 만들어진 드림캐처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허공을 바라보던 이모의 시선이 무언가를 따라 움직이듯 고개를 돌려 드림캐처를 바라보았다. 이모는 눈을 감고 숨을 내쉬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가은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꿈에서…… 재혁이를 따라 가볼래?”
“규칙은 간단해.”
이모는 다섯 명의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이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결연한 눈빛의 아이가 있는가 하면, 겁을 먹은 것처럼 어깨가 움츠러드는 아이도 있었다.
“재혁이가 다섯 명을 원하는 것 같아. 꿈을 꾸는 시간은 짧으니까. 언제 누가 재혁이의 꿈을 꾸게 될지는 몰라. 확실한 것은 꿈을 꾸는 사람과 연관이 있는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
이모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끝을 흐렸다.
“확실하다면서요?”
문교가 물었다.
“하,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 확실한 건 하나도 없어. 그냥…… 그렇지 않을까 추측만 하는 거지. 얘들아, 나 이런 거 한 번도 해본 적 없거든?”
“꿈을 꾸는 건 맞아요?”
효민이 이모를 향해 물었다.
“응. 아마도? 재혁이가 너희한테 뭘 보여줄지는 모르겠어.”
“꿈을 꾸려면 뭘 해야 되는데요?”
“나도 이런 걸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어디선가 알음알음 들은 건데 망자와 관련 있는 물건을 배게 밑에 넣고 자면 된다고 하더라.”
“그럼 우리가 뭘 보는 거야, 이모?”
“나도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나는 단지 재혁이의 기색을 읽을 수 있는 정도랄까? 처음 가은이 너를 따라왔을 때는 아주 슬펐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 약간…… 흥분해 있다고 할까? 이런 느낌으로 봐서 내 생각에는…….”
아이들이 모두 이모를 바라보았다. 이모는 잠시 주저하더니 말을 이었다.
“범인을 가르쳐주지 않을까…….”
일순간 아이들은 멈칫하며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범인이라고? 재혁이가 죽은 지 1년이 지났지만 경찰은 범인은커녕 용의자도 추리지 못했다. 그런데 재혁이가 우리에게 범인을? 위험한 일은 아닐까? 그는 살인자다. 어쩌면 아이 하나 더 죽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나서도 되는 걸까? 누구 하나 입 밖으로 이 말을 내뱉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모두 이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할래요.”
표건이 손을 들으며 말했다. 다른 아이들이 일제히 표건이를 바라보았다.
“왜? 무서워서 망설이는 거야?”
표건은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재혁이가 죽었잖아. 그렇게……. 그런데 우리는 아무것도 못했어. 작년에 우리 모두 재혁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누구도 나서서 물어보지 않았잖아. 그런데 그깟 꿈 하나 때문에 망설이는 거야? 우리한테 범인을 잡으라고 말 하는 것도 아니잖아. 알려준다는 거지. 정말로 범인을 알려주면 그때는 경찰에 말하면 되는 거야.”
“경찰이…… 우리가 꿈에서 범인을 봤어요. 라고 하면 아~ 그렇구나. 저 사람이 범인이구나. 하고 우리말을 믿어줄 것 같아?”
문교가 표건을 향해 말했다. 문교의 말에 표건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래도 나는 할래.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 아무것도 안하고 앉아서 걱정부터 하기는 싫어.”
“나도 할래.”
가은이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럼…… 나도.”
효민이 눈치를 보며 손을 들었다. 그런 효민을 보며 문교가 혀를 차더니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태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태호는 어쩐지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나는…….”
태호가 웅얼거리며 말을 멈췄다. 그러더니 급기야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야, 너 왜 울어?”
놀란 문교가 태호에게 물었다. 하지만 태호는 대답하지 못하고 계속 울었다. 어리둥절한 아이들 속에서 이모가 태호에게 다가가 등을 쓸어내렸다.
“태호야, 너 무슨 일 있었어?”
이모의 말을 들은 태호는 이제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눈물과 함께 마음의 짐도 쏟아져 나오기를 바란 것처럼. 태호는 이모의 팔을 잡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며 울었다. 아이들은 모두 조용히 태호를 기다렸다. 마침내 울만큼 모두 울었는지 태호의 흐느낌이 잦아들며 어렵사리 침을 삼켰다.
“나…… 사실은 그 날…… 재혁이를 봤어.”
“뭐? 어디서?”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태호에게 물었다.
“사거리 편의점 앞에서…….”
“그 날이 언제야?”
“재혁이가 실종 된 날.”
“어른들한테 얘기 했어?”
“아빠한테만.”
“경찰에는?”
태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왜?”
가은이 태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
“내가 태호를 봤을 때는 그냥…… 혼자 걸어가고 있었어. 그게 다야. 그래서…… 실종이랑은 아무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빠도 괜히 골치 아파지니까 말하지 말라고 했고…….”
“야. 너…….”
문교가 입을 열었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모가 문교를 저지 시켰다.
“어디에서 봤는지 자세히 말해 줄 수 있어?”
“학교에서 우리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편의점이요. 재혁이는 집이 있는 골목길에서 나와서 학교 가는 골목길로 걸어갔어요.”
아이들은 모두 이 길이 어떤 길인지 알고 있었다. 사거리라고는 하지만 이 길은 알파벳 K 모양으로 생겼다. 편의점은 그 중 가운데에 있었고 학교는 구부러진 위쪽 골목에, 재혁의 집은 아래쪽 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재혁이가 어디 가고 있었는데?”
표건의 질문에 태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몰라. 그냥 걸어가는 걸 본 게 다야.”
“재혁이가 학교로 갔을까?”
이모의 질문에 아이들은 대답이 없었다. 모르겠다.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재혁이가 실종된 날은 토요일이었어요. 다음 날 아침부터 경찰이 집에 전화해서 기억해요. 일요일이라 제가 집에 있었거든요. 토요일 오후에 뭐 하러 학교에 가겠어요?”
표건이 이모를 보며 대답했다.
“그럼…… 그 골목길을 따라가면 학교 말고 뭐가 있어?”
아이들은 서로를 멀뚱히 바라볼 뿐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태호가 울음으로 격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버스정류장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