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드림캐처 13화

드림 캐처

아무도 모르는 전학생

by 포뢰

잠에서 깬 가은은 잠시 가만히 누워있었다. 감정을 어느 정도 추스르고 마음을 진정시킨 후 재빨리 눈물을 닦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스마트 폰의 진동은 계속 울렸다.

친구들. 아마 궁금할 것이다. 그 여자아이가 누구인지 가은만 알고 있을 테니까.

가은은 팔을 뻗어 스마트 폰을 잡았다. 무수히 쏟아지는 대화들. 가은을 찾고 있는 친구들의 메시지.

가은은 친구들에게 보낼 메시지를 입력했다.


가은: 내일 우리 반으로 와 줘.





“그 아이 이름은 송유라야.”


가은은 친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유라를 친구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름을 입에 올리자 마음이 착잡해졌다. 가은은 유라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하지만 결과가 이렇다니…….


유라는 전학생이었다. 하지만 가은도 같은 반이 아니라서 언제 전학을 왔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가은이 기억하는 유라는 짧은 커트머리였다. 같은 반 남자아이보다 더 짧은 머리. 그래서 단발머리였던 유라를 가은은 알지 못했다.


“그림을 좋아했나봐.”


표건과 문교, 태호와 효민은 꿈꾸듯 말하는 가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은의 마음은 달랐다. 꿈꾸듯 몽환적인 기분이 아니었다. 그저 기억나지 않는 것을 끄집어내려 애쓰고 있을 뿐이다.


“영어 학원에서 잠깐 만났어.”


학원에서조차 가은과 유라는 같은 반이 아니었다. 가은은 어쩌다 유라가 눈에 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유난히 짧은 커트머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유라를 봤을 때 가은은 모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머리에 보이쉬한 얼굴. 마른 몸에 긴 팔다리. 부럽다고 생각했다. 나도 말랐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아이는 친구 없이 항상 혼자였고, 웃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도도하다고 하기엔 표정이 없고, 사소한 것에도 움찔움찔 놀라기 일쑤였다.



토요일 보강수업.

A반과 B반이 함께 수업을 들었다. 가은은 그때 처음으로 유라의 옆에 앉게 되었다. 수업 시간 내내 유라는 고개를 파묻고 책에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그것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작고 동글동글한 캐릭터들. 마치 초등학생이 교과서에 그려 넣음직한 두서없는 그림들. 곁눈질로 그림을 본 가은은 웃음이 나왔다.

쉬는 시간. 가은은 옆에 앉은 유라의 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거 뭐야?”


가은의 질문에 유라는 깜짝 놀라며 가은을 쳐다봤다. 손으로 책에 그려 넣은 그림을 가렸지만 가은은 웃으며 손가락으로 책을 톡톡 두드렸다.


“이거…… 수업시간 내내 그렸잖아. 귀여워.”


가은의 말을 들은 유라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 모습을 보자 가은은 수줍음이 많은 이 친구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네고 싶어졌다.


“너 몇 반이야?”


유라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9반.”

“홍화초에서 왔어? 못 봤는데?”

“아니. 얼마 전에 전학…….”

“어디에서?”


하지만 유라는 얼굴만 붉힐 뿐 대답하지 않았다. 수줍음이 많은 아이구나. 가은은 짓궂은 마음이 들었다.


“짧은 머리 잘 어울린다.”


유라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가은은 유라에게 공책을 내밀었다.


“필기 못했지?”


움츠러들고 어딘지 주눅 들어 보이는 친구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었다. 수업 시간 내내 무엇인가를 끄적이느라 칠판 한 번 쳐다보지 않았던 아이. 그런데 이 아이는 오히려 당황하면서 가은이 내민 공책을 바라보기만 하고 있다. 어쩐지 얼굴도 더 빨개진 것 같다.


“필기 했으니까 보고 나중에 갖다 줘.”


귓불까지 빨개진 아이는 여전히 공책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 혹시 기분이 상했나싶어 물어보려던 차에 유라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래도 돼?”

“응.”


가은이 미소 지은 채 대답했다.




“실제로 유라와 친하거나 하진 않았어. 학원에서 가끔 보고, 학교에서 마주치는 정도. 그때마다 인사나 했지. 그런데 곧 학원도 그만뒀어.”

“걔…… 지금은 몇 반이야?”


문교가 가은에게 물었지만 가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망설이던 가은이 말했다.


“1학년 2학기 때 전학 갔어.”

“뭐? 어디로?”

“나도 잘 몰라.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니까.”

“머리를 자른 거야?”


효민이 가은에게 물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아. 내가 본 유라는 항상 커트머리였어. 그래서 네 꿈에서 유라를 못 알아본 것 같아.”


가은이 고개를 숙였다.


“네 잘 못 아니잖아. 어쩔 수 없지. 게다가 전학까지 갔다면 더 생각 못 했을 거야.”


표건이 말했다.


“그래. 처음부터 알아봤대도 달라질 건 없어. 그럼 이제 어쩌지?”


문교가 아이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일단 작년에 9반이었던 애를 찾아봐야지.”





“송유라?”

“응. 혹시 알아? 너랑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것 같은데.”

“전학생 말하는 거지?”


태호는 같은 반 여자아이를 향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 9반이었다는 아이. 아이는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다.


“정말 별 특징이 없었던 것 같은데……. 2학기에 다시 전학 갔어. 아빠 따라서 이사 다닌다고 했던 것 같아. 반에서 거의 왕따라서 아는 게 별로 없는데?”

“왕따였어?”

“친구도 없었고, 말도 없었고, 좀 음침했지. 수업 시간에도 책에다 낙서만 하는 것 같더라.”

“아…….”

“체육시간에도 짝 없어서 혼자 남는 애들 있잖아. 딱 그런 애였어. 그래서 선생님이 같이 짝 해줬던 것 같아.”

“혹시 어디로 전학 갔는지 알아?”

“아니. 당연히 모르지.”


뭐 이런 걸 묻느냐는 투로 여자 아이가 대답했다.


“근데 걔는 왜?”

“어? 아니…… 그냥.”


태호의 맞은편에 서 있는 여자아이는 눈을 굴렸다. 그러더니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맞다! 걔 엄마 없어.”




아이들이 얻어온 정보는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송유라의 주변에는 친구가 없었다. 항상 혼자였고, 누군가와 어울릴 생각도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수업시간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를 끄적이던 아이.

홍화중 전학 당시에는 단발머리가 맞았다. 그랬던 아이가 어느 순간 짧은 커트머리를 하고 등교했다.


“하복으로 갈아입을 때쯤이었나? 갑자기 짧은 머리를 하고 왔더라고. 단발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지.”


가은과 같은 반 친구가 말했다.


“혹시 어디로 전학 갔는지 알아?”

“아니. 작년 9반 애들 중에 아는 애 한 명도 없을 걸?”

“……그래?”

“누구랑 얘기하는 걸 본 적이 없다니까.”


가은은 실망했다. 친한 친구는커녕 학교에서 대화조차 하지 않던 아이라니. 유라는 분명 범인인 선생님과 재혁을 연결해주는 중간다리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때 같은 반 친구가 말했다.


“아! 얘기하는 거 본 적 있다!”

“누구랑?”


가은은 기대감에 차 물었다.


“걔! 죽은 애. 표재혁.”


가슴에 무엇인가가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다. 가은은 놀란 눈으로 친구를 응시했다.


“복도에서 몇 번 봤어. 쉬는 시간에 둘이 서 있던 거.”

“……재혁이?”

“응. 아마 맞을 거야. 처음에는 쟤네 사귀나 했는데 지나가면서 보니까 그런 분위기가 아니더라고. 둘이 엄청 안 어울리잖아.”

“……둘이?”

“응. 신기해서 기억난다. 둘이 완전 극과 극이잖아.”


그래. 효민의 꿈에서도 둘은 복도에 서 있었다. 그렇다면 유라는 재혁의 반에 가서 누군가에게 재혁을 불러달라고도 했을 것이다. 재혁의 망가진 휴대폰에서 범인에 대한 단서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됐다. 유라는 재혁에게 시간과 장소를 전달해주고 현장에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날……. 효민의 꿈에서 본 날. 재혁과 마주 선 유라는 최대한 고개를 돌리고 재혁의 시선을 피했다. 약속장소를 확인한 재혁의 손에서 종이를 빼앗아 도망치듯 달려가던 유라. 자신의 치부를 들킨 유라는 재혁이와 마주하는 것이 분명 유쾌하지 않았을 것이다. 창피함을 넘어 치욕스러웠겠지. 가은이가 유라였다면 재혁의 그림자조차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라는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재혁을 만나러 갔다. 이게 과연 자의였을까? 유라의 뒤에는 도대체 누가 있었던 것일까?


가은은 망연자실한 채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바삐 돌아가는 머리와는 달리 눈은 공허함이 담겨있다. 친구는 의아한 눈으로 가은을 보았다.


“왜? 너 괜찮아?”


친구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가은은 고개를 끄덕이고 휘청휘청 걸어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알았다. 교무실 한켠에 면해 있는 비품창고에서 모든 일이 시작됐다. 재혁이를 죽음으로 내 몰고, 유라를 꼭두각시처럼 이용한 사람. 우리 학교 선생님.

이제 그가 누구인지 밝혀낼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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