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드림캐처 14화

드림 캐처

추리

by 포뢰


“이렇게 돼버리니까 우리학교 남자 선생님이 다 의심스러워.”


문교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래도 일단 결혼한 선생님은 빼야겠지?”

“왜?”


태호의 말에 표건이 기가 차다는 듯이 물었다.


“응? 결혼했으니까. 설마 결혼 한 사람이 그러겠어?”

“그건 모르지. 인마.”


태호가 억울한 표정으로 입을 벙긋 거릴 때 누군가 말했다.


“누가 됐든 그 사람이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는 이상…….”


모두 가은을 쳐다보았다. 가은은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우리한테는 유라가 필요해.”

“1년 전에 전학 간 애를 어디서 찾냐?”

“그 아이를 찾았다고 한들, 경찰이 믿어줄까?”

“그래. 이런 악질이라면 분명 거짓말로 둘러댈걸?”


아이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모두들 막막함을 느꼈을 것이다.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 표건이 말했다.


“알아. 그래도 가은이 말대로 유라가 필요한 건 맞아. 하다못해 증언이라도. 재혁이를 죽인 그 새끼랑 분명 연결고리가 있을 거야.”

“연결고리? 이 새끼, 무슨 탐정처럼 말하네.”


문교가 씩 웃으며 대꾸했다.


“그런데 생각해 봐. 유라인가 유리인가 걔를 찾았다고 쳐. 어떻게 알아내서 개고생 해가며 찾아냈어.

그런데 걔가 말해주겠냐? 어…… 나, 너희 같은 애들을 기다렸어. 너무 말하고 싶었어. 있잖아. 사실은…….”


문교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발을 동동 구르며 말하다가 체념한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럴 확률이 얼마나 되겠냐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유라가 중요한 건 맞아. 하지만 얘는 어디까지나 두 번째야. 우리가 찾으려고 했던 건 유라가 아니잖아.

우리는 범인을 찾고 있었던 것 아니었어?”

“범인을 찾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가 범인입니다. 하고 순순히 자백하겠냐?”


표건이 문교의 말을 받아쳤다.


“무언가 있을 거야. 나는 그렇게 믿어. 유라한테 범인을 엮을 수 있는 무언가 있다고…….”


가은이 절박하게 말했다. 문교가 가은을 흘끔 보더니 한 숨을 내쉬고 말했다.


“알았어. 유라가 중요한 건 알겠어. 그런데 그 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범인의 특징을 좀 꼽아 볼까? 그럼 어느 정도 추려지지 않겠어?”

“나쁜 놈이라는 거?”


표건이 말했다. 표건의 대답에 문교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아. 그건 맞는 말이지. 또 다른 건?”

“……재혁이의 글러브를 알아봤다?”


태호의 말에 모두 태호를 바라보았다. 태호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 맞아! 그렇다면…… 누가 재혁이의 글러브를 알아볼 수 있었을까?”

“누군가 우리가 야구 하는 걸 본 사람?”

“그런 사람이 있어?”

“간혹 지나가던 선생님이 보기도 하잖아. 주로 운동장에서 하니까. 지난번에는 나랑 표건이가 캐치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국어선생님이 와서 캐치볼 해주기도 했는데?”


효민이 표건을 보며 말했다.


“솔직히 국어 선생님 캐치볼 엄청 못했지?”


표건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재혁이랑 캐치볼 했는데 다른 선생님이 와서 같이 한 적 없어?”


효민이 친구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자 태호가 대답했다.


“나…….”


아이들이 일제히 태호를 바라보았다. 문교가 다급하게 말했다.


“재혁이랑 둘이 캐치볼 한 거 말고……. 중간에 선생님이 온 거야?”

“……응.”

“누구?”


태호는 잠시 주춤하더니 입을 열었다.


“음악.”

“어? 음악?”

“응.”


각자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음악이라!


“문호범? 그 선생님? 학교에서 맨날 노래 부르면서 다니던 사람?”


성악을 전공했는지 모르지만 음악선생님은 항상 복도를 지나다닐 때 바리톤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다녔다.

마치 내가 왔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뭐가?”

“캐치볼 잘해?”


문교의 질문에 태호는 슬쩍 친구들의 눈치를 보더니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아니.”

“몇 번이나 했는데?”

“딱 한 번.”

“흠…….”

“그 선생님 같아?”


가은이 친구들을 향해 물었다.


“모르지. 확실히 음악은…… 매일 구두를 신고 오긴 해. 왜…… 문교 꿈에서 구두를 신고 있었잖아.”

“아……. 그랬었지.”

“게다가 3층 교무실을 쓰기도 하지. 예체능이니까.”

“그러네?”

“씁…… 그런데 음악이 범인이냐고 묻는다면…… 아닌 것 같아.”

“왜?”


가은이 표건을 향해 물었다.


“문교 꿈에서 나왔던 남자랑 뭐랄까? 실루엣이라고 하나…… 너무 다르지 않냐?”

“아!”


그랬다. 문교의 꿈에 나왔던 남자보다 음악 선생님은 확실히…… 키가 작고 통통했다.


“하지만 우리는 꿈을 본거라…… 재혁이의 기억이 왜곡될 수도 있지 않을까?”


효민이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또 다른 건 없어? 재혁이가 선생님이랑 엮일 만 한 거.”

“예나 누나 작년 담임?”

“아! 그럴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예나 누나한테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이잖아!”

“잠깐만. 예나 언니 담임이 범인이라면 굳이 재혁이에게 언니가 몇 학년 몇 반이라고 쓴 쪽지를 보냈을까?

그렇게 안 해도 재혁이가 알 텐데?”

“……그런가?”


아이들은 김샌다는 표정으로 가은을 보았다.


“그리고 또 하나. 너희들이 야구할 때 본 것만으로 이게 재혁이 글러브다! 라는 걸 알 정도의 사람이면 야구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일거라는 생각은 안 해?”

“몇 번만 보면 그냥 척 봐도 이건 누구 글러브라는 걸 알 텐데?”


표건의 말에 가은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매일 같이 야구를 했던 너희들이나 알지. 난 항상 지나가면서 너희를 봤지만 지금 글러브를 들이밀면서 누구 건지 맞춰보라고 하면 난 하나도 못 맞출 거 같은데?”

“아. 그래서 대체 누구야?”


문교가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짜증스레 물었다.


“우리도 모르지. 혹시…… 작년 재혁이네 담임은 어때?”

“그건 문교랑 이미 얘기해 봤는데…… 아닌 것 같아.”

“왜? 체육이니까 글러브정도는 유심히 볼 것 같은데?”

“지금 너희 담임이잖아. 박정호. 그치?”


표건의 말에 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 너희 담임이 구두 신고 온 거…… 본 적 있어?”


가은은 눈을 굴리며 생각해 보았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들어보면 가끔 재혁이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재혁이 얘기도 하고, 범인은 잡혔는지 물어보기도 하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이 범인이겠냐?”

“아……. 그러고 보니 나한테도 지난번에 그런 얘기 했었네. 재혁이네 아줌마하고 통화했었다고.”

“거봐. 체육은 아니야.”


범인과의 거리를 조금도 좁히지 못 한 채, 원점으로 돌아왔다.


“일단 유라를 찾아보고, 마지막 남은 표건이 꿈을 기다려봐야겠네.”

“그래야겠다.”

“어? 야. 나 먼저 갈게. 우리 합창대회 연습 있다고 했는데.”

“점심시간인데?”

“응. 나중에 또 얘기하자!”


친구들을 남겨두고 태호가 서둘러 교실로 뛰어갔다.


“우리도 가자.”






“가은아. 혹시 재혁이 관련해서 뭐 들은 거 있니?”


학교가 끝나고 가은은 담임선생님 심부름으로 교무실로 향했다. 종례시간. 담임선생님이 가은이에게 학교에서 나눠준 학교 강당 보수공사 유인물을 걷어서 교무실에 두고 가라고 했다. 가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네.”라고 대답했다.

평소에는 반장이 할 일인데 왜 나한테? 반 친구들은 하교하면서 가은이에게 유인물을 주고 가버렸다. 가은은 걷어놓은 유인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교무실로 향했다. 오래된 학교 강당 보수공사에 쓰인 지출결과통보서. 다른 반은 그냥 주고 끝인데 왜 우리 반은 부모님 싸인까지 받아오라고 하는 건지. 투덜대며 교무실로 들어서는 가은에게 담임선생님은 뜻밖의 말을 꺼낸다.


“네? 없는……데요.”

“그래?”

“네.”

“음……. 그 재혁이랑 야구하던 친구들이랑 꽤 자주 어울리길래.”

“아…….”


가은은 당황스러웠다. 선생님이 나를 보고 있었나?

선생님은 자리에 앉은 채 팔을 뻗어 가은의 손을 잡았다.


“재혁이랑 친했지?”

“……아니요. 친한 건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친구…….”


선생님은 가은을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 호감형의 얼굴에 사람 좋아 보이는 주름이 졌다.


“그게…… 친한 거야.”


가은은 처음 보는 선생님의 태도에 어리둥절했다.


“재혁이를 죽인 사람은 아마도 무서운 사람일거야. 머리도 좋고. 아직도 안 잡혔잖아.”


선생님은 말을 멈추고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가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쩐지 대답을 원하는 것 같지 않았다. 선생님은 잡고 있던 손을 살짝 풀더니 두 번째 손가락으로 가은의 손등에 원을 그렸다. 한 바퀴, 두 바퀴. 천천히 원을 그리더니 마침내 팔을 거뒀다.


“네가 걱정 돼서. 내가 작년에 재혁이 담임이었잖아. 잊을 수가 없지. 그런 일은 평생에 한 번이면 족해.”


담임이 가은을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이제 가 봐. 수고했다.”


교무실 문을 열고 나오는 가은은 혼란스러웠다.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지? 왜 이러는 거야? 선생님이 원래 이랬었나? 이상한 기분에 교무실을 뒤돌아봤다. 뭔가 찜찜해.


하지만 이런 가은의 기분과는 다르게 선생님은 예전과 같았다. 가은을 눈여겨보는 눈치도 없고, 따로 부르거나 하지도 않았다. 선생님이 정말 걱정해서 그런 말을 했을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재혁이를 죽인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고, 따라서 범행동기도 밝혀진 것이 없었다.

홍화중 야구 5인방과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만으로 가은에게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이상하다고 파고들면 한 없이 의심스럽고,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면 내가 과한가 싶은 생각도 든다. 혹시 담임선생님이 범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특이한 점은 찾을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라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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