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드림캐처 15화

드림 캐처

표건이의 가죽지갑

by 포뢰

완연한 가을.

그동안 보수 공사를 끝낸 강당에서 며칠 후면 합창대회가 열릴 것이다.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지만 중학교 역시 학교 행사를 가장 즐길 수 있는 나이는 중2라고 한다. 1학년은 잘 모르고, 3학년은 공부를 해야 하니까. 그 말이 맞다. 1학년 합창대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해 실수 투성이었지만 2학년은 작년에 한 번 해봤다고 제법 능숙하게 준비한다. 각자 노래를 정하고 파트를 나눠 연습을 한다.

하교 후, 쉬는 시간, 점심시간을 쪼개서 연습하고 선생님에게 합창 연습을 해야 한다는 핑계로 수업을 빼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오합지졸. 처음에는 들어주기 어려웠던 노래도 어느새 점차 화음이 되어가고, 처음 들어본 가곡이나 민요도 익숙해져 간다.


“하……. 우리 담임 이번 합창대회에 목숨 걸었어.”


가은이 투덜대며 말했다. 가은의 투덜거림에 효민이 웃으며 말했다.


“작년에도 그랬어. 봄에는 합창대회, 가을에는 체육대회. 상은 꼭 받아야 한다면서.”

“어? 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봄에 합창대회 했었네?”


태호가 이제야 기억난다는 듯이 말했다.


“응. 지금까지 계속 봄에 합창대회 했는데 강당 보수 공사 한다고 가을로 옮겼잖아. 대신 체육대회를 봄에 하고.”

“아! 그랬지. 기억난다!”


태호와 효민, 가은은 함께 하교하는 길이다. 문교와 표건은 다음날 있을 합창대회 최종 연습을 해야 한다면서 학교에 남았다.


“그런데 너희 반은 담임이 그렇게 극성인데 오늘 같은 날 연습 안 해?”


태호가 가은에게 물었다.


“응. 오늘은 컨디션 조절해야 한다고 그냥 가래.”

“오! 역시 체육! 중요한 경기 전에 쉬라는 건가?”

“그런가봐. 오늘은 말도 적게 하고 목을 아끼라던데?”


가은이 생글거리며 대답했다. 아이들은 함께 걸어오다가 사거리에서 헤어졌다.


“내일 봐. 노래 잘하고!”





표건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어쩐지 피곤한 날이다. 학교가 끝난 후에도 합창대회 연습을 한다며 한 시간이나 학교에 남아있어야 했다. 표건이 보기에는 한 시간이 아니라 하루를 꼬박 연습해도 좋아질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꽥꽥 질러대는 목소리, 엉터리 화음, 아직도 가사를 외우지 못해 입만 뻥긋대는 아이들도 있었다. 수학을 가르치는 담임이 합창대회 따위 관심이 없어서 다행이다.

표건은 침대에 눕기 전 배게를 들췄다. 배게 아래에는 5학년 가을 소풍 때 함께 만들었던 가죽공예 카드지갑이 놓여있었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함께 만들었던 카드지갑. 소풍을 갔던 곳은 여러 가지 체험 할 것이 많았다. 여자아이들은 캔들과 석고방향제에 몰려갔다. 딱히 땡기는 것이 없었던 표건은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금속과 가죽, 도예 체험 중 고민하다가 가죽공예를 체험하기로 했다. 다시 가죽공방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재혁과 마주쳤다.


“너 뭐하기로 했냐?”


인사도 없이 표건이 불쑥 물었다. 재혁은 관심 가는 것이 전혀 없다는 듯이 살짝 찡그리더니 가죽공방이 있는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른 애들은 다 금속공방으로 갔어.”

“너희도?”


표건이 킬킬대며 웃었다.


“그렇지 뭐. 여자는 비누, 남자는 금속. 아니, 비누는 왜 만드는 거냐?”


재혁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야. 우리 반 여자애들은 캔들로 갔어. 난 지금까지 촛불 켜 본 적도 없는데.”


표건의 말에 재혁이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금속 잠깐 갔었는데 애들이 바글바글하잖아. 그래서 이쪽으로 피해왔지.”

“나도 그럴까하고. 같이 가자.”


둘은 가족공방으로 향했다. 재미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작은 카드 지갑을 만들다보니 예상 외로 재미가 있었다.


“여기 뒷면에는 여러분이 쓰고 싶은 글자를 써 넣으시면 됩니다.”


표건은 재혁이 뭐라고 써 넣는지 슬쩍 곁눈질을 했다.


<5학년 표재혁>


“너 진짜 이렇게 쓸 거냐?”

“응. 그래야 안 잃어버리지.”

“이 정도 실력이면 잃어버리는 게 낫지 않겠냐?”

“아. 이 새끼가.”


재혁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넌 뭐라고 쓸 건데?”

“나?”


표건은 잠시 생각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나는 이렇게.”


표건은 손을 움직여 글씨를 쓰고 재혁에게 보여줬다. 카드 지갑 뒷면을 본 재혁은 큰 소리로 웃었다.


<현장체험>




표건은 뒷면에 현장체험이라고 쓴 카드 지갑을 집으로 갖고 와 처음에는 엄마에게 선물했다. 하지만 엄마가 거절했다.


“너 현장체험 갔다 왔다고 쓴 걸 왜 엄마한테 주니?”

“엄마 써.”

“됐어. 너나 써. 아들.”


그 다음에는 아빠에게 건넸지만 아빠도 거절했다. 형도 마찬가지였다.


“너나 써. 쪽팔리게.”


카드 지갑은 표건의 책상 서랍 속에서 뒹굴었다. 너무 멀쩡해서 버리기에는 아깝고, 직접 쓰자니 어딘지 창피한 마음이 드는 카드 지갑. 벌써 3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카드 지갑은 여전히 멀쩡했다.


‘가죽이 좋은 건가?’


표건은 손가락 끝으로 가죽을 쓸어보았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도 흠집 하나 없을 정도로 좋은 가죽이었다면 글러브를 만들어 볼 걸.

이제…… 남은 건 나뿐이다. 모두 재혁이의 꿈을 꿨다. 제발 재혁이가 범인을 알려줬으면. 표건은 씁쓸한 웃음을 짓고 카드 지갑을 다시 배게 아래에 넣은 후 잠이 들었다.





그 여자아이다. 짧은 커트 머리의 여자아이. 송유라.

유라가 경찰로 보이는 남자와 함께 있다. 여기가 어디지? 처음 보는 곳이다. 허름한 다세대 주택이 늘어서 있고, 유라는 대화 도중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유라의 뒤에는 아무도 없다. 낡고 낮은 대문만 있을 뿐이다.


“네. 그 날…… 제가 선생님하고 같이 있었어요.”

“토요일 오후에?”

“네.”

“학교 수업이 없는 날인데? 왜 같이 있었어요?”


유라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아빠가 주무시고 계셔서 다른 곳에서 얘기하면 안 되나요?”

“아…… 그래? 차에서 얘기할까? 그래도 괜찮겠어?”


유라의 앞에는 두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젊지만 피곤해 보였고, 다른 한 명이 주로 유라에게 질문했다. 차에서 대화하자는 남자의 권유에 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 한 명이 앞서 걷고 중간에 유라가 그 남자를 따라간다. 젊은 남자는 유라의 뒤에 있다. 그들은 잠시 걸어 주차되어 있는 차에 올라탄다.


“그냥…… 별 거 아니야. 다 확인해야 하는 일반적인 절차니까 편하게 생각해.”

“네.”


유라는 주눅 든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토요일 오후에 선생님이 너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맞아?”

“네.”

“왜?”


남자는 다정한 말투로 물어보았지만 유라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남자들은 끈기 있기 기다렸다. 마침내 우물쭈물하며 유라가 입을 열었다.


“제가…… 학교에서 친구가 없어서…… 선생님께 상담을…… 신청을 했어요.”

“그래? 그랬구나.”


질문을 주도하던 남자가 수긍하며 한 박자 쉬었다가 다시 질문했다.


“그런데 왜 학교에 있을 때 상담을 안 하고 따로 만났을까?”


남자의 질문에 유라는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창피했어요. 학교에서 누가…… 보기라도 하면…… 제가 왕따……라는 걸 알테니까요.”


남자는 애잔한 눈빛으로 유라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젊은 남자가 말했다.


“그런데…… 그런 문제는 대부분 담임선생님한테 상담하지 않니? 이 선생님은 담임도 아닌데…….”


유라는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껌벅이며 볼 안쪽을 씹었다.


“……선생님하고 ……친했어요. 체육시간에…… 항상 선생님이 저랑 짝을 해주셨거든요.”

“선생님하고는 어디에서 만났니?”

“학교…… 운동장이요.”

“혹시 몇 시쯤 만났는지 기억하니?”


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4시 반쯤이요. 한 시간 조금 넘게 얘기했는데…… 제가 울어서 선생님이 기다렸다가…… 저를 집까지 데려다 주셨어요.”

“집에 오니까 몇 시였어?”

“잘 기억이 안나요. 조금…… 늦었던 것 같아요. 아빠가 일어나서 저녁을 안 해놨다고 혼냈어요.”


유라의 대답에 남자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엄마가 안 계시니?”

“네…….”


유라는 작게 움츠러들며 대답했다.


“유라가 선생님과 같이 있었다는 걸 우리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유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함께 있는 걸 본 사람이 있을까?”


유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학교에 CCTV……."

“확인해 봤는데 학교 운동장에는 CCTV가 없더라고.”

“아…….”


유라는 잠시 쉬었다가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이랑 있었던 건 맞아요. 제가 학교에…… 적응을 못해서.”

“그래, 그래. 알았다.”

“혹시 그 날 선생님이 뭘 입고 있었는지는 기억하니?”

“네. 항상 입는 트레이닝복에 운동화요. 짙은 남색…….”


남자는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어 넣기도 하고 줄을 긋기도 했다. 마침내 수첩에서 얼굴을 든 남자가 유라를 보며 말했다.


“그래. 고맙다. 이제 집에 가도 돼.”


유라는 인사하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더니 차에서 내렸다. 멀어지는 유라를 보며 젊은 남자가 말했다.


“그 선생 알리바이가 진짜였네요.”

“아직 진짜라고 할 수는 없지. 뭐 확인 할 수가 없으니까. 애 진술만 갖고는…….”

“그 날 선생 옷차림도 맞고, 학교 현관에 찍힌 CCTV 영상 보면 얘랑 만났다는 시간이랑 얼추 맞아요.”

“토요일이라 수업도 없는데 선생은 학교에 왜 들어갔어?”

“금요일에 퇴근하면서 뭘 놓고 가서 토요일에 학교 간 김에 잠깐 들어갔다 왔대요.”

“선생이 학교에서 나간 시간이 몇 시였지?”


젊은 남자가 수첩을 넘겼다.


“오후 4시 17분”


젊은 남자는 한 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작년에 이 학교로 부임했고, 대체로 평판도 좋네요.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실제로 수업이 없는 토요일인데도 학교에서 상담도 해줬잖아요.”


남자는 뒷좌석 시트에 몸을 묻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런 남자에게 젊은 남자가 말했다.


“뭐 걸릴 게 없네요.”





하지만 유라는 달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걸음이 무거웠다. 경찰이라고 밝힌 저 남자들이 자신의 목덜미를 잡을 것 같았다. 뒤 돌아보지 않으려 애 쓰며 한 발, 한 발 부자연스럽게 걸음을 떼었다. 마침내 집에 도착해서 대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버지가 나왔다. 유라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아버지는 대문 앞에 서 있는 유라에게 인상을 쓰며 팔을 들어 유라를 밀어냈다.


“안 비키고 뭐 해?”


유라는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쳐 아버지가 나갈 수 있도록 물러났다. 아버지는 유라를 위 아래로 훑어 본 뒤 낡은 대문을 열어 놓은 채 집 옆에 주차되어 있는 차 운전석 문을 열었다. 검정색 그랜저 TG.


유라는 아버지가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대문을 닫고 반지하 방으로 향했다. 어둑어둑한 방. 불을 켜자 현관과 맞닿은 작은 부엌이 보이고 방문이 두 개 보인다. 유라는 그 중 현관 맞은편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선다. 하나 밖에 없는 방. 아버지는 야간 일을 하시기 때문에 밤에는 유라 혼자 집을 지킨다. 유라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한 마음으로 책가방을 뒤진다. 작은 일기장. 떨리는 손으로 더듬더듬 펜을 잡고 일기장에 글씨를 쓴다.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눈물이 흐른다. 일기장에 톡톡하고 눈물이 떨어진다. 그가 정말 나를 사랑할까? 그에게 수없이 들었던 말들. 사랑해. 괜찮아. 달콤한 말들, 위로의 말들. 하지만 이제…… 모르겠다.


유라는 솟구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일기장을 옆으로 밀치고 엉엉 울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그 남자아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죄책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늘 그랬듯 유라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정신을 억압하는 아빠, 달콤한 말로 속살거리며 유라를 조종하는 선생님.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무력함이 남아 있던 힘을 모조리 앗아갔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우는 것뿐이다. 시간이 지나고 눈물이 잦아들 때 쯤 웅웅거리는 진동음이 들린다. 유라는 눈물을 닦고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시야가 뿌옇다. 선생님이다.


“여보세요.”

“경찰들 왔다 갔어?”


유라는 어렵게 침을 삼키고 대답했다.


“네.”

“말 잘 했지?”

“네. 시킨 대로…….”

“내가 시킨 대로 말 했어?”

“네.”

“그래. 잘 했어. 내가 감옥에 가면 너도 외롭잖아. 그치?”


유라는 대답할 수 없었다.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네 아빠한테서 너를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그렇지?”

“……네.”

“그래. 잘 했어. 만약에 또 그 사람들이 찾아와도 똑같이 말 하면 돼. 운동장에 CCTV 없는 것도 확인했고, 시간 맞춰서 현관 CCTV에 찍혔으니까 더 이상 의심 안 할 거야. 알았지?”

“네.”

“그래. 알았어.”


수화기 너머 멀찍이 여자 목소리가 들리더니 전화가 끊겼다. 유라는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말대로 하면 정말 안전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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