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 인형
가은은 나머지 꿈 이야기를 했다.
재혁의 앞에 서 있던 단발머리 여자아이. 쪽지에 적혀있던 이름, 날짜와 시간, 장소까지.
아이들은 놀라움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가은이 봤다던 쪽지의 날짜는 재혁이 실종된 날이다. 적혀있는 장소는 태호의 꿈에서 나온 편의점이다.
조금씩 그 날의 행적이 맞춰지고 있다. 재혁이가 왜 누구에게도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리로 끌려갔는지 친구들은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누나를 볼모로 재혁을 꼭두각시처럼 움직였다. 가은은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나쁜 짓은 다 해놓고…… 어떻게 재혁이를…….”
다른 아이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재혁이는 어땠을까?
“그때 우리는 고작…… 중학교 1학년이었어. 어떻게…… 열네 살 아이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마음이 아팠다. 가은의 말이 맞았다. 이럴 수는 없다. 어른이, 그것도 선생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착잡하다.
“……그래서 재혁이가 우리한테 범인을 알려주려는 거잖아.”
표건이 비통한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나쁜 놈이니까. 억울하기도 하고……. 우리가 누군지 알아내자.”
“그래. 우리가 알아내자.”
아이들은 결연하게 말했다.
“그럼 일단…… 우리가 알아낸 것 좀 정리해 볼까? 어때? 가은아?”
가은이 일어나서 책상에서 노트를 꺼내왔다. 눈에는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지만 안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시간 순으로 적을까?”
“응. 그게 좋겠다.”
“문교 꿈이 가장 먼저 있었던 일이었나?”
“응. 그랬던 것 같아. 내 꿈에서 봤던 장면이…… 이 일의 시작이니까.”
가은은 노트에 문교의 꿈이라고 적고 괄호 안에 교무실이라고 썼다.
“근데 그 남자 누군지 혹시 알겠어?”
아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어두운데다 남자는 등지고 있어서. 여자애는 혹시 알겠어?”
“나는 사실…….”
가은이 볼펜을 만지작거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낯이 익어.”
“뭐?”
“누군데?”
“그런데 확실하지도 않고 잘 모르겠어. 게다가 내가 아는 그 애는 단발머리였던 적이 없었거든.”
“머리야 자를 수 있잖아.”
“그야 그런데……. 뭔가 미심쩍다고 해야 하나?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그래. 엄한 사람을 잡을 수는 없어. 일단 누군지 모르니까 이건 제쳐놔.”
“아무튼 문교의 꿈이 원인이야. 그건 맞지? 그럼 6월 10일까지 재혁이는 뭘 했을까?”
“그때 재혁이는 야구도 안하고, 학교에서도 말없이 조용히 있었어.”
작년에 재혁이와 같은 반이었던 효민이 말했다.
“저기…….”
다들 태호를 돌아봤다. 시선이 쏠리자 부끄럽다는 듯이 태호가 말했다.
“내 꿈에서 본 검정색 차 말이야.”
“아! 그랜저 TG!"
“응. 재혁이는 편의점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그 차에 올라탔어. 그건 재혁이가 그 차를 알고 있다는 게 아닐까?”
태호의 말에 아이들은 무릎을 쳤다.
“그래! 그런가 보네! 너희라면 생전 처음 보는 차에 그냥 막 올라타겠어?”
문교가 말했다.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6월 10일 전에 재혁이가 그 차를 봤거나, 그 차에 탄 적이 있거나……?”
“그래. 그게 말이 된다.”
사건의 가닥이 잡혀가는 느낌이다.
“그 차가…… 선생님이라는 사람의 차다?”
“오! 안효민! 좀 치는데?”
“그 차가 어떻게 생긴 차라고?”
가은이 물어보자 태호가 스마트폰에서 검색해서 차 외관을 보여줬다.
“찾아보자. 개학하면 선생님들 차 중에 이 차가 있는지.”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한창수 경장입니다. 기억하시죠? 표재혁.”
“아……. 네, 네. 그럼요. 기억하죠. 잘 지내셨죠?”
“하하……, 저야 늘 그렇죠. 저, 선생님. 재혁이 일로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재혁이 일로요? 뭐…… 수사에 진전이 있었나요? 벌써 1년이 지났는데.”
“네, 네. 새로운 제보가 들어왔는데…… 그래도 일단 확인은 해야 해서요.”
“제보가 들어왔다니 놀라운데요. 어떤 거죠?”
“혹시 선생님 자차 있으신가요?”
“네. 작은 차가 하나 있어요.”
“차종이…….”
“제 차요? 스포티지입니다. 2018년형.”
“아! 그러시군요. 확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도와야죠. 차종에 대해 제보가 들어왔나요?”
“아……. 네.”
한창수 경장은 멋쩍은 듯이 웃었다.
“어떤 차인가요? 제가 근처에서 봤을 수도 있을 텐데.”
“아…… 아직 확인 단계라서요. 확실해지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예.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통화목록을 내려다봤다. 경찰이 제보 받았다는 차가 대체 뭘까? 그 차에 재혁이가 타는 것을 근방에서는 본 사람은 없을 텐데. 설사 봤다 해도 1년이나 지난 지금 제보를? 이상하네. 누가 뭘 본 거지?
개학을 하고 난 후 아이들은 등하굣길에 지나가는 차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랜저TG라는 차는 꽤 많이 팔렸는지 의외로 자주 목격 됐었지만 이상하게도 선생님 중에는 없는 것 같았다.
“형한테 물어봤는데 꽤 오래된 차라던데?”
표건이 책상에 기댄 채 말했다. 친구들은 다들 표건을 바라보았다.
“언제 나온 건데?”
“십 년이 넘었대.”
“차를 사면 보통 얼마나 타는데?”
태호의 질문에 표건이 어깨를 으쓱했다.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어쨌든 오래된 차라서 그 사이에 폐차를 하고 다시 샀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그렇다면 우리는 그 차를 못 찾아.”
“그럴 수도 있겠다. 이미 팔았거나 폐차했으면 그 차에 재혁이 머리카락이나 피가 떨어졌어도 못 찾겠네.”
가은이 암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학교에 그 차가 없었나?”
“이제 가은이랑 표건이만 남았지?”
문교가 말하자 아이들은 가은이와 표건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이들은 눈을 껌벅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확실한 것 하나 나왔으면 좋겠다.”
“아니. 재혁이는 왜 이렇게 어려운 방법을 쓰는 거야? 그냥 그 쓰레기 같은 놈 얼굴을 떡하니 보여주면 안 돼?”
문교가 투덜대자 표건이 말했다.
“그걸 어떻게 납득 시킬 건데? 그냥 무작정 경찰에 찾아가서 이 사람이 범인이에요! 꿈에서 봤어요! 라고 할 거야?”
“그래도 너무 돌아가잖아. 우리가 재혁이 집에 모였던 날이 한 달도 더 전이라고.”
“너만 그런 것 아니야. 우리도 범인이 빨리 잡혔으면 좋겠어.”
가은이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두 달 전만해도 전혀 몰랐던 일들이잖아.”
아이들은 터덜터덜 각자의 교실로 향했다. 멀어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며 가은은 답답함을 느꼈다. 그 여자 아이. 누군지 알 것 같으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개학을 한 지 2주가 지났지만 가은도 표건도 꿈을 꾸지 않았다.
“지난 번에 내 꿈에서 너무 많이 보여줬나?”
문교가 말했다. 문교와 표건은 함께 하굣길에 올랐다.
“나만큼 답답하겠냐?”
“그건 그렇지.”
표건의 말에 문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진짜 이 새끼가 뭘 보여주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표건이 원망 섞인 말을 내뱉었다.
“있잖아. 내 꿈에서…… 그…… 여자 아이 앞에 서 있던 선생님 말이야.”
표건은 문교를 바라보았다. 뜬금없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너도 봤겠지만 구두를 신고 있었어. 난 처음에는 작년 재혁이네 반 담임을 의심했거든? 체육선생님 말이야.”
“아…….”
“개학하고서 유심히 봤는데…… 한 번도 구두를 신은 적이 없더라. 항상 운동화였어.”
“왜 체육을 의심했는데?”
표건의 질문에 문교는 고개를 까닥이며 자신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담임이니까. 그 글러브가…… 재혁이 글러브라는 걸 담임이 제일 잘 알지 않았을까 해서.”
“오! 그럴싸하네. 게다가 체육이니까 유심히 봤을 수도 있지.”
“그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문교가 다소 자신감을 얻은 듯 말했지만 다시금 풀이 죽었다.
“그런데 체육이 구두 신고 온 거…… 너 본 적 있어?”
표건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못 본 것 같아. 체육이 치마 입은 걸 보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미친…….”
문교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9월 중순이 되어 가고 있었다. 여름만큼 덥지는 않지만 9월의 한 낮은 아직 더웠다. 하지만 사이사이 불어오는 바람에는 가을의 냄새가 간혹 섞여 있었다.
가은은 잠을 자고 있었다. 배게 옆에는 작은 거북 인형이 놓여 있었다. 가은과 재혁은 같은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에 진학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둘은 그럭저럭 친하게 지냈지만 4학년을 기점으로 서먹해지기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단지 그때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식한 모양이다.
이모가 재혁이와 관련 있는 물건을 가까이 두고 자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거북 인형이다. 이 인형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재혁에게 최초로 받은 생일선물이었다. 그것도 같은 유치원에서.
그때는 분명 반 아이들과 돌아가면서 생일파티를 했었지? 개구진 재혁이가 직접 골랐을지는 모르겠지만 가은은 이 독특한 인형이 마음에 들었다. 흔한 곰 인형이나 강아지 인형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가은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작은 단독주택에 살고 있던 가은은 잠시 어딘가 나갔다 집에 오는 길이었다. 대문을 열면 손바닥 만 한 마당이 나오고 바로 현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가은이 대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았다.
“가은아.”
손을 내리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라다. 송유라.
“어?”
가은은 어리둥절했다. 쟤가 왜 여기에 있지? 가은은 유라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
“지나가는데 네 뒷모습 같아서.”
유라는 힘없이 웃으며 가은에게 말했다.
“아. 잠깐만.”
유라는 메고 있던 크로스백을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꺼내 가은에게 건넸다.
“이거 공책. 빌려줘서 고마웠어.”
가은은 유라가 내민 공책을 바라보았다.
“이거 갖다 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유라는 쑥스러워하며 말끝을 흐리더니 가은의 안색을 살피 듯 얼굴을 보며 말했다.
“별 일 없지?”
“나?”
“응.”
“응. 뭐 있나? 아무것도 없지.”
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말인가 하려는 것처럼 뜸을 들이더니 이내 단념하듯이 입을 다물었다.
“월요일에 학교에서 보자.”
“응. 그래. 공책…… 갖다 줘서 고마워.”
“아냐. 빌려줘서 고마웠어.”
쭈뼛대며 말하는 유라가 안쓰럽기도 하고, 거듭 고맙다는 인사가 민망하기도 해서 가은은 미소를 지었다.
“잘 가.”
유라와 헤어지고 가은은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2층 방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커튼을 닫으려고 창가로 다가섰다.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으려고 가방끈을 손으로 잡고 왼손으로 커튼을 잡았다. 그러자 골목길 끝에서 몸을 돌리는 남자아이가 보였다. 재혁이다. 게다가 그 옷! 태호의 꿈에서 검정색 승용차에 올라탈 때 입고 있던 그 옷! 실종 당일 재혁이 입고 있던 옷이다. 회색 후드 집업에 검은색 반바지와 운동화.
왔었구나! 그 날 재혁은 가은을 찾아왔었다. 재혁은 몸을 돌리고 왔던 길로 뛰어갔다. 왜? 이 골목길을 찾아왔다면 가은에게 왔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지나갔을 텐데……. 재혁은 왔던 길로 다시 뛰어갔다. 가은은 골목길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유라가 서 있었다.
유라는 가은을 만났던 모습 그대로였다. 짧은 커트머리. 단조로운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크로스백을 메고 있었다. 유라는 뒤돌아 뛰어가는 재혁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재혁이 사라지자 몸을 돌려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가은은 방문을 열어젖히고 다급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현관을 나와 작은 마당까지 뛰어내린 후 대문을 열고 유라가 사라진 방향으로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유라는 이미 골목길에 없었다. 재혁도 없었다. 골목길 가운데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좌우를 두리번대던 가은은 유라가 사라진 방향으로 검정색 승용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저게 무슨 차인지, 어느 회사 차인지도 모른다. 차는 골목길 끝에 있어서 번호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차 뒤에 빨간색 등. 점점이 박힌 빨간색 등이 태호의 꿈에 나타났던 차와 똑같다는 확신을 준다.
가은은 차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차는 이미 사라진 후다. 골목길 끝까지 달려온 가은은 허탈함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너야? 너였어? 재혁이가 왔었는데 너를 보고 도망갔구나! 허탈한 마음에 가은은 주저앉은 채 울고 있었다. 그때 미처 벗지 못한 가방에서 진동 소리가 들렸다. 전화가 왔나? 가은은 눈물을 닦고 가방을 열었다.
휴대폰 액정에 불이 들어왔다. 가은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전화를 받기 위해 가방 속으로 손을 넣었다.
하지만 손에 잡힌 것은 스마트 폰이 아니라 거북 인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