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드림캐처 11화

드림 캐처

by 포뢰

가은은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다. 몸이 두둥실 떠 있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가은 역시 선잠에 빠졌다가 깨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시야는 뿌옇고,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러다 다시 잠에 빠졌다.

학교. 교실. 뛰어다니는 아이들. 가은은 지금 복도에 서 있다. 앞에는 여자아이가 서 있다. 마주보고 있지만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듯 여자아이는 고개를 한껏 뒤로 돌려 운동장을 보고 있다. 단발머리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고개를 숙이고 복도에 서서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건 꿈이다. 갑작스레 기억이 났다. 가장 처음 꾸었던 효민의 꿈. 가은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 여자아이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쪽지에 적힌 내용도 궁금했다. 가은은 재혁의 시선으로 쪽지를 들여다봤다. 휘갈겨 쓴 내용은 길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간단해서 한 눈에 들어왔다.


표예나. 3학년 7반.

6월 10일 5시 XX 편의점 앞으로.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것이 느껴진다. 몸이 얼어붙는다. 각인이 된 듯 이름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표예나. 재혁의 누나가 아닌가?

……왜? 이 이름이 왜? 재혁의 가슴이 방망이질 치는 것이 느껴진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재혁의 손에서 누군가 쪽지를 낚아챈다. 하지만 재혁은 움직일 수 없다. 단발머리 여자아이는 재혁의 곁은 스치며 조용히 말한다.


“말하지 마.”


여자아이가 뛰어간다. 수업 시작종이 울린다. 간신히 쉬고 있는 얕은 숨 위로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껴진다. 어째야 할지 몰라 입술을 깨물며 교실 문으로 향하다가 이내 시선을 돌린다. 효민이 교실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아, 봤을까? 재혁은 어렵게 침을 삼키고 최대한 멍한 표정으로 뻣뻣하게 굳은 다리를 움직여 교실 안으로 들어간다.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주먹을 말아 쥐고 있다. 설마 효민이 눈치를 채거나 하진 않았겠지?

그런데 그 자식이 누나를 알고 있다. 누나를 이용할 줄이야. 분한 마음에 또 눈물이 날 것 같지만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고 참는다.






누군가 몸을 흔들어 댄다. 소리가 들렸다 안 들렸다 반복된다.


“문교야! 일어나! 언제까지 잘 거야?”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눈을 뜨기 어렵다. 몸도 천근만근이고 머리도 무겁다.


“야!”


마침내 짝! 소리가 나도록 엄마가 문교의 허벅지를 때린다. 아프기도 했지만 찰진 매타작 소리에 점점 정신이 돌아온다.


“친구들 왔어! 일어나!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자?”


문교는 천천히 눈을 떴다. 침대에 면한 벽이 보였다. 누운 채로 뒤를 돌아보자 표건이와 태호가 방에 들어와 있었다.


“……지금 몇 시야?”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문교가 물었다.


“1시. 넌 밥도 안 먹고 잠만 자니?”


엄마가 대답하더니 친구들을 남겨두고 방에서 나갔다.

표건이와 태호는 잠시 서 있다가 엄마가 방에서 나간 것을 확인하고 문교에게 다가섰다.


“야. 넌 아직까지 자냐? 깼다가 또 잠든 거야?”


표건이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문교는 곁눈질로 표건을 쓱 보고 오른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아니. 나 지금 일어났어.”

“그래 보여.”


태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지금 일어났다고. 나 그때 못 일어났어.”

“응?”


표건이가 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물었다. 문교가 끙 소리를 내더니 침대에 앉았다.


“나 새벽에 못 일어났다고. 계속 자다가 지금 일어 난거야.”

“뭐?”


문교의 말을 들은 표건과 태호는 의아하다는 듯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안 깨고 지금까지 계속 잤어?”

“그렇다니까.”

“너 꿈에서 야구공 안 만졌어?”

“야구공이 떨어져서 굴러갔어.”

“뭐?”


표건이 놀라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됐어?”


문교는 대답 없이 잠시 생각을 했다. 아직 머리가 무거워서 정신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생각이 났다. 글러브.


“너희 어디까지 꿨어?”

“재혁이가 학교에서 그…… 걸 보고 집으로 돌아온 거. 글러브랑 야구공을 잡는 것 까지 보고 깼지.”

“아…….”


문교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져갔다. 문교가 표건을 붙잡고 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나…… 나 더 있었어! 그 후에…… 다른 꿈을 꿨다고!”

“뭐?”


표건이 눈을 깜박였다.


“무슨 꿈?”


태호가 의자에서 일어나 문교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문교는 입을 벌린 채 태호와 표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게 정말이야?”


표건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문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재혁이 글러브를 책상에 놔뒀어. 재혁이는 금요일 오후에 글러브를 팽개치고 도망갔는데.”

“대체 누가?”


태호가 물었다.


“나도 모르지. 난 거기까지만 봤어.”


문교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잠깐만.”


표건이 대화를 멈췄다.


“잘 생각해 봐. 금요일 오후에 학교에는 아무도 없었어.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없었겠지? 그런데 월요일에 등교하고 보니까 책상 위에 글러브가 있었단 말이잖아? 그럼 그 글러브를 누가 갖다 놓았겠어? 월요일에 아침 일찍 학교에 온 다른 사람이 3층 계단에 떨어져 있던 글러브를 보고 ‘어? 아니 이건 내가 예전부터 눈여겨 봐왔던 표재혁의 글러브네? 5층 교실에 갖다 줘야겠군!’ 하고 갖다 놓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 안 그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금요일 오후에…… 그 인간이 재혁이를 알아봤다는 거지. 아니면 재혁이를 원래 알고 있던 사람이 글러브를 보고 재혁이라는 확신을 갖았거나.”


표건의 추리에 문교와 태호는 말을 잃었다. 둘 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표건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표건은 말을 이었다.


“학교에서 여자애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한 인간이야. 어쩌면 재혁이를 죽인 인간이 그 새끼일지도 몰라.”





효민은 아침부터 계속 가은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문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메신저에서는 문교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효민은 불안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왜 문교일까? 가은은 문교와 따로 연락을 하는 것일까?

효민이 가은에게 한 번 더 전화를 하기 위해 휴대폰을 집어 들었을 때 표건에게 전화가 왔다. 효민은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야. 가은이 연락 됐어?”

“아니.”

“가은이 집에 가 봐. 지금.”

“뭐? 왜?”

“나 지금 태호랑 문교네 왔어. 문교가 지금까지 자고 있더라고. 어쩌면 가은이도 그럴지 몰라.”

“뭐? 중간에 안 깼단 말이야?”

“응. 그러니까 가서 가은이 좀 깨워.”

“야. 아무리 그래도 나 혼자 어떻게 가?”

“우리도 따라 갈 거야. 문교랑 같이. 먼저 출발하라고.”


전화를 끊은 효민은 대충 옷을 갈아입고 가은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무리 친구라도 해도 혼자 찾아가기가 여간 민망한 게 아니었다. 효민은 가은의 집으로 향하는 중간 중간 계속해서 가은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가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포기하고 가은의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효민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자 액정에는 <정가은>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어? 가은아!”

“효민아, 미안해. 나…… 지금 일어났어.”

“아…… 역시.”

“메신저 보니까 너희는 새벽에 깼나보네?”

“응. 너랑 문교만 지금 일어난 것 같아.”

“다들 어디 있어?”

“나는 너희 집에 거의 다 왔고, 표건이랑 태호, 문교도 지금 오고 있어.”

“알았어. 기다리고 있을게.”


효민이 먼저 가은이 집에 도착하고 잠시 기다리자 곧이어 나머지 셋도 가은의 집에 도착했다. 모두 모이자 문교가 자신의 꿈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표건의 추리까지. 이야기를 들은 효민과 가은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럼…… 우리 학교 선생님 중에 한 명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 여자아이가 ‘선생님’이라고 불렀잖아.”

“너도 나랑 같은 꿈…… 아니었어?”


문교가 가은에게 물었다. 가은은 눈을 껌벅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다른 걸 봤어.”

“어떤 건데?”

“쪽지.”

“쪽지?”


아이들이 되물었다. 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쪽지. 효민이 꿈에서 재혁이가 들고 있던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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