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교 다닐 때 코바늘을 배우지 않았을까.
아빠에게 약간의 손재주를 물려받은 나에게 뜨개질은 항상 선망의 대상이었다.
특별히 뜨개품에 대한 애정은 없지만 대나무 바늘 사이로 길게 늘어진 직물이나 손목을 움직일 때마다 커지는 원형의 코바늘 뜨개품을 볼 때마다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뜨개질이라고는 고작 대바늘 뜨개질뿐이고 그것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겉뜨기와 안뜨기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개질에 대한 욕구는 매년 겨울 불타올라 다이소에서 저렴하게 파는 털뭉치를 볼 때마다
주제를 생각하지 못하고 한 두개를 집어오곤 했다.
2년 전 큰 마음 먹고 딸의 목도리를 대바늘 뜨기로 떠 준 적이 있었다. 희한하게도 뜨개질은 항상 일직선이 되질 못했고 끝으로 갈 수록 넓어지거나 뜨면 뜰 수록 좁아졌다. 하지만 뜨개질 할 때의 손맛이 너무 좋다보니 어설프지만 매년 뜨개코너를 기웃거리고 올해는 뭘 뜰 수 있을까 검색을 해보곤 한다.
역시 2년 전 자이언트 얀으로 만든 가방이 유행이었다. sns를 잘 안하다보니 이런 가방이 있는 줄도 몰랐다.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여직원이 우연히 자이언트 얀으로 만든 가방 사진을 보여줬다. 하나 사려고 하는데 어떤 색상이 예쁠 것 같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이걸 돈 주고 산다고?"
"네."
"이 사람들 이거 만든 거 아니야?"
"맞아요."
"그럼 쌤도 만들면 되잖아?"
"......못 만들어요."
만드는 과정을 보니 어려운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저 사람들도 뚝딱뚝딱 만드는데 나라고 못 할 것 있나.(매사 시작을 쉽게 생각하는 1인)
"혹시 뜨개질 할 줄 알아요?" 라고 묻는 질문에 직원의 눈이 동그래진다.
"제일 싫었어요. 학교 다닐 때 뜨개질 숙제 있으면 매일 엄마한테 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진저리를 친다. 그 모습이 우습다. 아항. 그렇구나.
재미있다.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사부작 사부작 노는 걸 좋아했던 나는 엄마에게 물어보긴 했지만 부탁했던 적은 없었는데.
"일단 가방 사지 말고 있어 봐. 기회되면 내가 한 번 해 볼게."
"이걸요?"
"응."
원리는 뜨개질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대나무 뜨기 밖에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도움이 될 줄이야.
자이언트 얀 실 두 뭉치를 주문했다. 딸에게 물었더니 유행이라며 갖고 싶다길래 딸이 좋아하는 색인 민트색과 적당히 무난한 다크 그레이로. 딸 가방도 만들고 직원 가방도 만들어주고 시어머니 가방도 만들어주고 자투리 실로 작은 가방을 하나 더 만들었더니 금세 달라는 사람이 생겼다.
어설퍼 보이지만 선물 받은 사람들은 좋아했다. 그들이 좋아해주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다이소에 가니 다른 소재의 자이언트 얀이 출시됐다. 손으로 만지작 거리니 포슬포슬 한 느낌이 좋았다. 몇 뭉치를 샀는지 모르겠다. 딸이 백팩을 갖고 싶다고해서 자이언트 얀으로 백팩도 만들어주고, 회사에서 쓸 숄도 만들고, 시어머니께 드릴 가방을 또 만들었다. 남은 실로 네 명의 직원에게 작은 손가방을 만들어 선물하니 고맙게도 다들 좋아해줬다.(커피도 한 잔 얻어마심. ^^)
자투리 실을 엮어서 평소 귀여워해주는 아이에게 줄 작은 크로스백도 만들었다.
무지개떡같이 떠진 크로스 백.
바늘 없이 오직 손으로 떠서 더 졸작.
며칠 잘 놀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뜨개질을 더 하고 싶다는 욕구가 뿜뿜.
결국 다이소에 가서 털뭉치를 몇 개 더 샀다. 그리고 유튜브를 뒤지며 대나무 바늘로 내가 뭘 뜰 수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며 안해본 뜨개질을 도전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다시 한 번 느꼈다. 예쁜 뜨개품은 죄다 코바늘이구나. 하...나는 코바늘을 안 배우고 뭐했을까.
어찌됐건 들뜬 마음으로 남편에게 연락을 한다. 이제 저녁에 뜨개질을 독학하겠다고. 남편은 남는 시간에 뭘 하든 본인의 자유이니 알아서 하라고 한다. 기분이 좋다.
사실 불과 얼마전까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저녁하고, 살림하고 허리 펴면 운동하는 아들 픽업시간이다. 아들 데리고 와서 저녁 주고 치우면 11시가 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데 9월 말 아들이 원주로 전학을 갔고, 딸은 내년 3월에 전주로 갈 예정이다.(아들과 딸 모두 기숙사)
이렇다보니 이제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조금씩 진행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하고 싶은 거야 끝도 없이 많지만 그 중 첫 번째로 뜨개질을 꼽았다. 정말 너무 너무 배우고 싶다. 코바늘.
수세미도 뜨고, 레이스도 만들고 스킬이 오르면 인형도 만들고 싶다.(아이러니하게도 수세미를 제외하면 내가 쓸 것은 없다. ^^ )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보니 프랑스자수도 배우고 싶고, 미싱도 해보고 싶고, 베이킹도 도전해보고 싶다. 책도 더 많이 읽고, 조용한 곳에서 글도 쓰고 싶다.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괜시리 기분이 좋다. 천천히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해 볼 생각이다.
가방에는 털실과 대바늘, 코바늘이 들어 있다. 원래도 기다렸던 퇴근시간인데 이제 콧노래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몇 주 간 힘들었던 일도 있었고, 시간적 여유도 정신적인 여유도 없어서 글을 쓰지 못했다. 일은 조금씩 풀어나가고 있고 언제 또 힘들어질지 알 수 없지만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 팔자가 원래 이런건지 항상 바쁘고 신경 쓸 일이 많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헤쳐나가다보면 언젠가 해결되고 여유로워지는 날도 오겠지.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