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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뢰 Oct 23. 2024

결혼 기념일

이 날 누구랑 결혼했어?

유독 날짜에 둔감한 남자가 있습니다.

옆에는 가족들의 기념일을 챙겼다가 미리미리 알려주는 아내가 있었죠.


 "오늘 친정 엄마 생신이니까 전화드려."

 "이번 주 시아버지 생신이라 저녁 먹어야 하니까 시간 비워놔."

 "다음 주에 시어머니 병원 가는 날이야. 당일에 다시 알려 줄테니까 저녁 때 전화 드려."


매년 고정되어 있는 날부터 유동적으로 변하는 날까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이 남자는 가족들의 기념일에는 딱히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자녀가 있습니다. 아들 하나, 하나. 

그리고 결혼이라는 것을 했으니 결혼기념일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날짜가 요상하게 겹치게 됐고 

원래도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남자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




가끔 생각날 때마다 남편에게 묻는다. 


 "아들 생일 언제인지 알아?"

 "딸 생일은 알아?"

 "우리 결혼기념일은 언제야?"


질문은 항상 3단 콤보. 왜냐면 날짜가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아들 생일. 9월 21일

딸 생일. 7월 12일

결혼기념일. 10월 21일


달은 다르지만 날짜는 1과 2과 중복된다. 그리고 남편은 이 날짜를 분간해내지 못한다. 

어찌해서 아들 생일을 맞춰도 딸 생일을 틀리거나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식들의 생일을 기억해내도 

결혼기념일은 틀린다. 

사실 틀려도 섭섭하거나 서운하지는 않다. 오히려 좋은 놀림감이 되서 재미있다. 


2020년 10월.

어김없이 결혼기념일이 다가왔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에게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묻는 것이다. 

 

 "금."

 "금?"

 "응."


혼란스러운 표정. 나는 장난기 가득 담은 눈으로 남편을 올려본다. 


 "무슨 금?"

 "금. 골드."

 "왜?"

 "갖고 싶어. 거기에 결혼 몇 주년하고 날짜 써서 줘. 나 기념으로 갖고 있을 거야."

 "아......"


이제야 이해가 되는 눈치다. 

금은 많이도 필요없다. 엄지손톱만한 작은 조각이라도 괜찮다. 그저 우리 기념일이 적힌 작은

금이 갖고 싶을 뿐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사실 이런 대화 자체를 잊고 있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온 남편이 작은 종이가방을 내민다. 

받아든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금은방에서 나온 가방이라는 것을. 


 "뭐야?" -> 대화를 아예 잊고 있었음.

 "금 선물 받고 싶다며."

 "진짜 샀어?"

 "응."


쿨하게 종이 가방을 나에게 던지고 씻으러 화장실로 간 남편. 

나는 오오! 탄성을 지르며 가방에 담긴 분홍색 상자를 꺼낸다. 




??????

13주년은 맞다. 그런데 2020년 10월 12일이라고? 

웃음이 났다. 그럼 그렇지. 그러고 보니 이 금을 받은 날이 10월 12일이었다. 

나름 날짜 맞춰서 준다고 오늘 줬나보다. 


남편이 씻고 나왔다. 

침대에 앉아 있던 나는 작은 금을 들고 남편에게 다가간다. 

 

 "10월 12일에 누구랑 결혼했어?"

 "뭔소리야?"

 "우리 결혼기념을은 10월 21일인데?"


남편의 얼굴에 아차하는 표정이 떠오른다. 웃기다. 


 "아......"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끈기있게 남편의 말을 기다린다. 당연히 웃는 얼굴로. 


 "미안. 그거 버려라. 내가 다시 해 줄게." (물론 버리라는 것은 진짜 버리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니, 싫어. 이게 좋아."

 "날짜 잘못 썼다며."

 "응. 그래도 이게 좋아."

 "왜?"

 "재밌잖아. 그냥 헤프닝이지. 나중에 진짜 날짜로 적어서 다시 해줘. 이런 거 언제 받아보겠어?"


정말 순수하게 재미있었다. 웃기기도 하고. 해프닝으로 일어난 일인데 고작 날짜 틀렸다고 이런 걸로 

화를 내고 싶지도 않았다. 어찌됐든 남편은 내가 원하는 선물을 해 줬고 실수 덕분에 이렇게 이야기 할

거리도 생기지 않았나. 그 이후로 금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몇 년이 지났지만 결혼기념일이 오면 이 일이 항상 생각난다. 

금은 아직도 잘못된 날짜를 받아든채로 내 화장대 서랍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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