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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뢰 Oct 16. 2024

사춘기야 지나가라.

사춘기 소녀. 그래도 이쁘다.

작년 이맘 때 쯤 딸 친구와 친구 엄마. 나와 딸. 이렇게 넷이 대백제전을 보기 위해 부여를 갔었다. 

딸과 친구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였고, 친구 어머니는 딸들을 계기로 알게 되어 언니라고 부르며 수다도 떨고, 밥도 먹고, 정보도 공유하면서 살갑게 지내는 사이였다. 


2021년. 아이들이 3학년 때도 이 멤버로 공주에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딸은 친구와 여행 가는 것이 신났는지 종일 들떠 있었고, 둘은 차가 막혀도 깔깔깔 거리며 지나가는 바람에도 즐거워했다. 

무령왕릉을 보고 밤에는 공산성을 돌고 현지인에게 추천 받은 알밤육회비빔밥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다음에 또 함께 여행을 가자는 약속을 했지만 2022년에는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아 약속을 뒤로 미뤄야 했다. 


2023년. 아들이 야구단에서 일주일 일정으로 일본으로 떠났다. 시간이 좀 되겠다싶어 이제서야 딸 친구와의 여행을 계획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부여. 공주는 지난번에 다녀왔기도 했고, 어쩐지 나는 공주보다 부여에 정이 갔다. 지난번 여행이 즐거웠기 때문에 이번 여행 역시 기대를 하고 갔었는데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바로 딸의 친구가 사춘기에 접어 들었기 때문이다. 

차 뒷좌석에 앉아 함께 여행길에 올랐지만 친구는 차에 타자마자 커다란 헤드셋을 꼈다. 덕분에 내 딸은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었다. 말 한 마디 없이 눈만 멀뚱멀뚱 뜨고 앉아 있는 딸을 보며 말은 안했지만 이게 뭔가 싶기도 했다. 

부여에 도착하자 친구는 숙소부터 찾는다. 우리는 구경할 게 많은데. 숙소는 나중에 들어갈거라고 말하고 백제문화단지로 향했다. 여러가지 체험부스도 많았지만 이 친구는 모두 싫단다. 숙소만 찾는다. 하, 진빠진다. 어르고 달래서 체험을 진행하면 또 재미있게 참여한다. 



점심을 먹자고 해도 "숙소는 언제 가?", 저녁을 먹자고 해도 "숙소는 언제 가?", 궁남지를 가볼까?해도 "숙소는 언제 가?". 숙소에 금덩어리라도 묻어두고 왔나.   

어리고 철이 없다고해도 슬슬 짜증이 올라오려고 했다. 그렇게 숙소만 찾을 거라면 집에 있지 왜 왔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저찌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부여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는데 검색해 둔 국수집이 맛집이었는지 사람이 엄청 많은 것이었다. 족히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다른 곳을 검색하고 대체할 곳을 말했다. 

 "부여 시장 가서 구경하고 점심 먹을까?"

 "아뇨."

 "그럼 궁남지 앞에 연잎밥집 많은데 그리로 갈까?"

 "싫어요."

연이어 부정적인 말만 쏟아내는데 슬슬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럼 어디 가고 싶은데?"

 "......햄버거 먹어요."

 "야, 내가 고작 햄버거나 먹으려고 부여까지 왔겠니? 됐다. 점심 됐고 그냥 집으로 가자."

기어코 화가 난 나는 일행을 몽땅 태우고 집으로 출발했다. 언니도 분명 기분이 상했겠지만 이때는 다른 사람의 기분 따위를 고려할 수 없을 정도로 짜증이 올라온 상태였다.(일일이 적기도 뭐한 자잘구레한 일들이 이미 한가득 쌓여 있었고 난 참았던 것이 폭발했다.) 우리는 바로 출발했고, 언니는 분위기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따라왔다. 

그래도 타인과의 여행인지라 올라오는 차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기분이 어느정도 풀렸는데 공주에 막 들어섰을 즈음에  뒷자석에 앉은 딸이 "엄마, 배 고파."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다시 화가 나려 했지만 정말 꾹 참고 "공주 왔는데 칼국수 먹고 갈까?" 라고 제안했다. 언니도 좋다고 하고 딸도 좋다고 하는데 그 친구만 무반응. 나는 공주 시내로 들어선 후 근처에 있는 칼국수집으로 향했다. 공주를 몇 번이나 지나고 여행도 왔지만 그 유명한 공주칼국수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상태라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 잘 먹더라. 나와 딸 친구 언니도 맛있게 먹었다. 이렇게 잘 먹을 걸 왜 싫다고 한거냐고. 


한결 나아진 분위기로 집으로 돌아오고 난 뒤 결심했다. 그 친구가 사춘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다시는 함께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나고 10월 초에 가족끼리 괴산으로 여행을 갔다. 그런데 맙소사. 우리 딸이 딱 그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리를 두드리는 것이 아니고 잠수부와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를 가자고 해도 싫다, 뭘 먹자고 해도 싫다. 주구장창 늘어놓는 소리는 "숙소 언제 가?"

작년의 악몽이 되살아난 기분이었다. 우와. 사춘기 딸을 데리고 여행하는게 이렇게 진 빠지는 일이었나?


몇 년 전 아들의 사춘기도 물론 겪었다. 이때는 왜 사자 무리에 우두머리 숫사자가 한 마리만 있는지 알았을 정도로 아빠와 사사건건 격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특히 성질머리 나쁜 아빠가 아들 때문에 참는 모습을 여러 번 봤고, 아들은 아들 나름대로 아빠와 부딪히기 싫어서 외면하는 모습 또한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들인지라(남자아이) 그리고 또 운동을 하는 놈이라 사춘기라고 명명할 수 있는 시기는 고작 2~3달 정도였다. 힘든 이 시기가 지나자 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금 성숙해졌지만 예전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고 참 다행이라며 마음을 쓸어 내렸다. 


그런데 이제 초예민한 딸이 사춘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집에 있으면서 왜 귀에 항상 에어팟을 끼고 있는지, 왜 주말마다 집에서 파자마파티를 하면 안되냐고 묻는지(공주도 아닌데 무슨 파티를 이다지 좋아하는지). 옷장 가득 쌓인 옷을 보고도 입을 옷이 없다고 하질 않나, 나이키 티셔츠가 없어서 본인이 불쌍하다고 하질 않나(이때는 많이 혼났다.), 도대체 주말마다 친구들을 만나서 어딜 그렇게 쏘다니다 오는지. 도통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일삼기 일쑤였다. 

사춘기가 오고 있나보다. 라고 생각했지만 괴산여행을 갔을 때 데자뷰가 느껴지며 아, 왔구나. 제대로 왔구나를 되뇌였는데...결정적으로 불과 며칠 전.


 "전주예중 실기시험 보자."

 "싫어."

 "왜? 나중에 예고 가고 싶다며?"

 "안할래."

 "......그럼 공부 할 거야?"

 "아니."

 "너한테 시험 붙으라고 안 해. 붙을 것 같지도 않고. 경험 삼아 가서 한 번 보는 거야. 분위기가 어떤지."

 "꼭 봐야돼?"

 "그럼 아빠 말대로 공부 하던가."

 "알았어. 시험 볼게."

 "그리고 11월 2일에 있는 사생대회 갈 거지?"

 "아니."

 "왜?"

 "귀찮아."


사춘기는 사람을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든단 말인가. 그림을 좋아하는 딸은 사생대회는 물론이고(입상을 하든 못하든), 피아노 콩쿨도 열심히 참여하는 아이였다. 딸을 천문학자로 키우고 싶은 아빠의 바람이 무색하게 미술이 가장 좋다고 말했던 딸이었는데. 

다 싫단다. 제안하는 모든 것에 한 번에 좋다고 한 적이 없다. 어떤 제안이든 이유는 대체적으로 "귀찮다." 였다. 


딸에게 사춘기가 오면 죽도록 싸우고, 사춘기가 지나가면 친구처럼 지낸다는 주위 엄마들의 이야기. 

복창 터지긴 하지만 우리는 아직 죽도록 싸울만큼은 아니고, 귀찮다는 제안도 이유를 끈질기게 설명해주면 알았다고 대답해주는 딸. 아침에 깨우러 방에 들어가면 자는 모습은 여전히 아기 같고, 뽀뽀 세레를 퍼부어도 이때는 또 귀찮아하지 않고 배시시 웃어주는 딸. 

지금이 터널의 초입인지,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귀여운 전쟁은 현재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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