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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뢰 Oct 09. 2024

그만 따라다녀.

환절기 비염

꽃가루가 흩날리는 봄에도 문제 없고, 사랑하는 고양이와 함께 살아도 끄덕 없는데...

유독 일교차가 커지고 건조해지는 가을만 오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애초에 있던 것도 아니고 언젠가 미세먼지 지수에 신경을 쓰게 되면서부터 비염이라는 것을 

인식했으니...이건 분명 환경적인 문제일 것이다. 


체온을 잘 유지만해도 면역력이 올라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외에도 노화나 다른 건강 상의 이유 때문에라도 한 여름이 아니면 차가운 음료는 먹지 않는다.

겨울은 당연하고, 봄가을에도 주구장창 따땃한 음료만 마시는데.....

가능하면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려 노력한다. 이게 좋다고 하길래. 

아침은 빵이라도 챙겨먹고 추가로 제철 과일도 먹는다. 음료는 단백질 음료. 

스트레스는 안 받으려고 노력하지만 이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남들도 다 똑같겠지.


이 정도라면 면역력을 잘 지키기 위해 나름 노력하지 않나? 운동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자기 전에 간단한

맨손체조나 회사에서도 틈틈이 스트레칭도 하고 있는데. 


여튼 이런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올해 가을에도 그 분이 나에게 건너 오셨다. 환절기 비염. 

코맹맹이 목소리, 줄줄 흐르는 콧물, 눈의 작열감.

특히 콧물은 어찌할 수가 없다. 


물론 약을 먹으면 된다. 하지만 비염 약을 먹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굉장히 졸립다는 것을. 

그런 이유로 어찌어찌 약을 안 먹고 버티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눈 뜨기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날에는 시판용 알레르기 약 한 알을 먹고 하루를 버텼다. 

특히 올 가을은 정말 이상한 날씨다. 환절기 비염이라고 코가 막히든 콧물이 흐르든 나는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날씨는 여전히 더웠다. 한 낮에는 그냥 여름. 근데 내 코는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제 고장났나벼. 한 낮 온도가 30도를 웃도는데도 이눔에 코는 가을이라고 콧물을 뿜어대고 있으니. 

아침 저녁으로 큰 일교차. 여전히 더운데도 빨갛게 물들어가는 단풍. 간질간질한 코를 보자면 지금은 영락없이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것인데.... 왜 이렇게 더운거냐고. 


그래도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언젠가는 진짜 가을이 될테고 <환절기>에만 반응하는 내 코도 계절을 인정하고 잦아들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바로 어제. 

일요일임에도 수원에서 레슨을 하고 원주에 있는 학교로 복귀해야 하는 아들을 위해 아침 9시 30분에 천안에서 출발한다. 1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달려 수원에 도착하고 레슨을 하는 아들을 기다렸다가 운동하는데 

필요한 용품을 사고, 점심을 먹은 후 원주로 출발. 

학교에 도착한 아들을 내려주고 다시 2시간을 달려 천안으로 내려오자 6시 30분. 

이 정도면 그냥 출근했다가 퇴근하는 시간이 아니던가. 허무한 일요일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휴일을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큰 일교차와 컨디션 난조로 내 코는 주인에게 자신이 주체적이고 독립적이며 너의 말을 듣지 않겠다고 선언이라도 한 것처럼 콧물파티를 벌였다. 


원주에서 천안으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나름 괜찮았다. 조금 쌀쌀했고, 얇은 옷을 입고 있긴 했지만 덜덜 떨 정도는 아니었고, 오는 동안 에어컨도 끄고 무릎담요도 덮고 있었다. 

절반 정도 왔을 때 조짐이 보였다. 그리고 졸음쉼터에 들러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자 본격적으로 콧물이 달리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는 콧물 덕분에 한 손에는 휴지를 든 채 운전을 해야 할 정도였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집에 도착할 때 쯤에는 콧물에 젖은 휴지가 비닐봉지 가득 쌓여 있었다. 


문득 화가 났다. 아니, 내가 섭취한 영양분이 고작 콧물 만드는데 소진 됐단 말이야? 더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쓰레기를 챙겨서 집에 올라갔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수증기를 들이마신 코가 잠깐 만족스러웠는지 잠자코 있길래 괜찮아 진 줄 알았지. 이후 눈에 작열감이 느껴지더니 콧물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렸고 눈은 뜨고 있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졸립다고 약을 안 먹었는데 이제는 작열감 때문에 자든, 약을 먹어서 자든...... 어찌됐든 잠을 자야 할 것 같았다. 시판 알레르기 약 한 알을 먹고 약효가 나오길 기다리며 고양이 화장실도 치우고, 대강 집 정리를 한다. 콧물은 여전히 줄줄 흐르고 있고 좀체 효과가 나타나질 않는다. 증상에 비해 약을 조금 먹었나? 싶어 한 개를 더 먹고 아예 잠자리에 들지만 진짜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밤새 콧물은 쉬지 않고 내달렸고, 휴지를 들고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출근은 했지만 증상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연거푸 재채기를 하고, 콧물을 너무 닦아서 피부가 아프다. 이상하다. 예전에는 한 알만 먹어도 콧물이 멈췄는데. 졸립지 않은 약을 찾다보니 효과가 없는 걸까?

약국으로 간다. 시판 알레르기 약을 다 사오고 싶은 심정이다. 



뭐가 좋을지 몰라서 일단 전에 먹었던 약을 집어온다. 이제는 졸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콧물에 더 효과가 좋다는 약을 한 알 먹고 난 뒤,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내며 오전 일을 보다보니 어느새 콧물이 멈춰 있다. 으잉? 약이 안맞았나? 어제는 그렇게 대환장 파티를 벌이던 콧물이 이렇게 순순히 조용해진다고? 


콧물이 멈춘 것까지는 좋았으나 약효가 강력했는지 이제는 피부가 건조한 느낌이다. 이 약.....얼굴에 있는 수분을 모조리 말려버리는 걸까? 그래도 가장 불편했던 부분이 해소되니 상쾌한 것 같기도 하다. 미스트를 촥촥 뿌리면서 일하긴 했지만 코로 숨 쉬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다니.



하루가 지났다. 어제 회사에서 한 알 먹은 후로 약은 아직 먹지 않았다. 지금은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숨을 못 쉬거나 콧물이 줄줄 흐르지는 않는다. 어제 잠도 잘 잤다. 같은 회사 동료가 말한다. 비염약도 나한테 맞는 약이 있다고. 그럼 전에 먹었던 약은 나랑 맞지 않는 약이었나?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계절은 이제 진짜 가을 같다. 여전히 일교차는 크지만 여름과는 다른 하늘도 그렇고, 무엇보다 식욕이 폭발한다. 가을 언제 오나했지만 천천히 오고 있는 중이었나보다. 막판에 손바닥 뒤집듯이 코 앞까지 다가와 버렸지만. 뭐가 급하다고. 

유독 더웠던 올 여름을 지내고 청명한 가을을 만끽하고 싶었는데, 부쩍 추워진 날씨에 초겨울인가 싶기도 하고. 봄, 가을 없이 여름과 겨울만 남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도 되고. 내가 빠빠이 하고 싶은 건 환절기 비염이지 봄 가을이 아닌데 말이다. 조금 서글퍼. ^^


-이제 나에게 맞는 약도 찾았으니 조금 더 머물러줘. 가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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