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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뢰 Nov 19. 2024

늦지 않게 너에게 닿기를

유일한 생존자

여리가 손을 들어 무리를 가리켰다.


 “……뭐?”

 “저 아이만 색이 달라. 저 아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파랑은 여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몰랐다. 

여리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쭉 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리 지어 들어오는 사람들 틈에 한 남자가 작은 남자아이를 안고 있었다. 고작 다섯 살 정도 됐을까? 아이는 아빠의 목을 끌어안은 채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저 아이가 유일한 생존자야.”


여리의 말에 파랑은 숨을 들이켰다. 눈에 힘을 주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아이. 여느 아이와 다르지 않았다. 

파랑은 몇 발짝 앞으로 걸어가 여리를 마주 보고 섰다. 

고개를 돌려 아이를 뚫어져라 보는 여리의 얼굴을 잡고 눈을 맞추었다.


 “아니, 이번에는 우리가 막을 거야. 모두 살아남을 거야. 아무도 죽지 않아.” 


파랑이 단어 하나, 하나 힘주어 말했다. 

여리가 맑은 눈동자로 파랑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언니 말이 맞아. 이번에는 살아남을 거야.”


깜박이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여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손을 들어 파랑의 손을 잡았다. 


 “나는 건물 밖으로 나가서 언니를 기다릴게. 내가 달아날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뛰어갈게. 

오빠랑 꼭 데리러 와 줘.”


말을 하면서도 여리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눈물은 하염없이 계속 흘렀지만 여리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꼭 데리러 와.”

 “그래. 꼭 갈게.”


파랑이 손을 떼자 여리가 나풀나풀 뛰어가기 시작했다. 여리가 사람들 틈에 섞여 보이지 않게 되자 파랑도 

건물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여기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말 안 보여요?”


경비가 석헌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조금 있으면 지진이 일어난다고요. 사람들 다 죽고 나서도 이런 얘기 하실 거예요?”

 “지진은 무슨 지진? 여기가 일본인 줄 알아요?”


석헌은 답답했다. 하지만 설명할 방법도 없었다. 

석헌은 손에 들고 있던 안내 책자를 펼쳤다. 새로 생긴 아울렛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관리실을 찾기가 어려워지자 안내 책자를 찾아 들고 다녔던 것이다. 

석헌은 여리가 말한 건물을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D관. 관리실은 D관 지하 1층 후미진 곳에 있었다.


 “여기요, 여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 지진이 일어날 거란 말이에요.”

 “이봐요, 학생. 지진이 일어난다고 누가 그래요? 정말 지진이 일어나면 하다못해 기상청에서 감시해서 

알려줘요. 여진도 없었고요. 우리는 아무런 보고도 받지 못했어요. 이렇게 무작정 우긴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요. 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아저씨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요. 하지만 정말 지진이 일어날 거예요. 일단 사람들 대피 먼저 시키고 

아무 일 없으면 다시 들여보내면 되잖아요.”

 “학생. 우리 어제 오픈하고 오늘이 첫 주말이에요. 손님이 가장 많은 오늘이 피크라고요. 그런데 사람들을 

대피시키면 그 손해는 학생이 다 책임질 거예요?”

 “사람들이 죽게 생겼는데 돈이 문제에요?”

 “아, 젊은 사람이 고집도 세네. 자꾸 이러면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쫓아낼 수밖에 없다고요. 여자 친구랑 

왔어요? 즐겁게 쇼핑하고 돌아가요.”


경비가 석헌을 부드럽게 돌려세웠다. 말은 좋게 하지만 분명 석헌을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석헌도 자신이 막무가내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조곤조곤 설명할 수 없었다. 


 “이번 주 오픈 행사로 세일도 많이 하니까 좋은 거 많이 사서 돌아가요. 네? B관에 가면 학생이 좋아할 

만한 브랜드…….”


경비는 말을 끝까지 맺지 못했다. 석헌을 돌려세우며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발을 떼는 순간 하얀 벽에 금이 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 어?”


경비의 목소리에 석헌도 고개를 돌려 벽을 돌아봤다. 균열이 번지고 있었다. 

하지만 땅은 아직 흔들리지 않았다. 


 “어? 지진……. 지진이다!”


석헌이 소리쳤다. 

경비와 석헌은 같이 벽을 보고 있었다. 석헌이 재빨리 뒤돌아 경비의 양 팔을 잡고 소리쳤다.


 “지진이에요! 지진이 시작됐다고요! 빨리 사람들 대피할 수 있도록 방송해요!”


바로 코앞에서 석헌이 소리를 지르자 경비가 놀란 얼굴로 석헌을 보았다.


 “뭐해요? 지진이라고요! 안 보여요? 빨리 대피시켜요!”


석헌은 경비의 손을 잡고 관리실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파랑은 D관 2층에 있었다. 아울렛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3층으로 올라가 위에 있는 사람부터 대피시킬 생각이었지만 미처 3층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아래 어디에선가 작게 ‘쿵’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한테만 들리는 소리인가? 

그런데 그때 에스컬레이터를 기준으로 건물의 오른쪽이 살짝 흔들릴 정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기울기의 정도가 약하고, 크게 틀어놓은 음악 소리와 패밀리세일을 알리는 방송 소리로 사람들이 

지진을 알아차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파랑은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3층으로 뛰어 올라가던 걸음을 멈추고 

2층으로 뛰어 내려와 소리쳤다. 


 “지진이에요! 모두 피하세요! 다들 밖으로 나가요!”


큰 음악 소리에 파랑의 목소리가 묻혔다. 

파랑의 목소리는 근처에 있는 몇몇 사람에게만 들렸지만, 그들조차 파랑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수군댔다. 


 “다들 나가요! 지진이 시작됐어요! 빨리 밖으로…….”

 “지진? 어디?”


에스컬레이터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파랑을 보았다. 

이 여자의 말이 믿을만한 말인지, 혹시 미친 여자는 아닌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파랑은 답답했다. 아무도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때 B관 패밀리세일을 알리던 방송과 음악이 꺼지고 걸쭉한 아저씨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현재 D관 건물 균열이 확인됐습니다. D관에 계신 분들은 서둘러 건물 밖으로 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현재 D관 건물 균열이 확인됐습니다.”


사람들은 잠시 방송에 귀를 기울이더니 모두 건물 밖으로 대피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앙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로, 건물 오른편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하지만 대피하라는 방송만 나올 뿐 이들을 인솔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방송을 들은 사람들이 두서없이 앞다투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출구를 찾느라 사람들이 우왕좌왕 움직이려고 할 때 또다시 “쿵” 소리가 나며 건물 전체가 아래로 내려앉았다. 건물은 중앙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갈수록 점점 심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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