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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뢰 2시간전

늦지 않게 너에게 닿기를

싱크홀

여리는 눈으로 그 아이를 찾았다. 아빠에게 매달려있는 아이는 암흑 속에서 홀로 켜진 촛불처럼 그 빛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그 아이가 어떤 운명을 타고 태어났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 아이를 

이 사고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아직 작고 약한 그 아이에게 우리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간절히 원해도 결코 가질 수 없는 축복을 받았다. 

볼 수 있는 것, 들을 수 있는 것, 사고할 수 있는 것. 얼마나 원했던 것들인가. 

하지만 우리의 임무는 끝이 났고 이제 목숨과 함께 돌려줘야 할 때가 왔다.


여리는 파랑의 눈을 피해 아이와 아빠를 따라 D관 3층으로 올라갔다. 

주변을 서성이며 아이와 아빠를 지켜보다가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어쩔 수 없이 작은 아이가 귀여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아이를 향해 다가갔다. 


 “애기 이름이 뭐예요?”


여리가 아이의 손가락 끝을 잡으며 아빠에게 물었다.


 “준우. 배준우.”


아빠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 너무 귀여워요. 준우는 몇 살이에요?”

 “이제 다섯 살.”

 “준우야.”


여리는 웃으며 아이 이름을 불렀다. 

고마워, 준우야. 오늘 나는 죽지만 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어두웠던 내 인생에 네가 잠깐이나마 빛을 보여줬구나. 미처 말하지 못하고 목뒤로 넘긴다. 

여리는 준우와 잠깐 같이 놀아줬다. 아울렛 3층은 옥상정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엄마는?”


아이의 아빠가 여리를 향해 물었다. 


 “2층에서 쇼핑하고 계세요. 끝나면 데리러 오신 댔어요.”

 “우리 집이랑 똑같네.”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남자가 웃자 준우와 닮아 보였다. 여리는 그 모습을 차마 보고 있기 어려워 

눈을 내렸다. 아이의 아빠에게도 죽음의 색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건물이 흔들리고 붕괴가 시작됐다. 여기저기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고 건물이 땅으로 점점 내려앉았다. 

이건 싱크홀이다. 여리는 준우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 아이는 죽으면 안 된다. 사람들이 2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발버둥 칠 때도 여리는 남자와 아이의 곁에 있었다. 건물 오른쪽으로 급하게 경사가 지기 시작하더니 

아이의 아빠가 인파에 휩쓸려 경사 아래로 떠밀려 내려갔다. 

여리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나무 벤치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오른팔로는 아이를 안고 다른 팔로는 벤치의 

다리를 잡고 다른 사람들이 빠져나가길 기다렸다. 지금 저 인파에 휩쓸린다면 아이가 작아서 사람들의 

발에 밟힐 것이 뻔했다. 

벤치 아래는 비좁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발길질을 막아주었다. 아빠와 헤어진 아이는 울고 있었다. 

아직 어리지만,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만큼 대단한 운명을 타고난 아이. 여리는 팔이 아프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아이를 지켰다. 


2층에도 사람들이 많은지 3층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대다수가 내려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중앙 에스컬레이터 근처의 바닥에 난 균열이 점점 심해지더니 기울기가 더 심해지고 건물은 한층 더 

아래로 가라앉았다. 바닥 곳곳에 균열이 생기더니 여리와 아이가 숨어 있는 벤치 다리에 고정된 나사가 

튕겨져 떨어져 나가면서 지붕 역할을 해주던 벤치도 함께 날아갔다.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잡을 것을 

찾아 손을 휘저었다. 

아이를 잡고 있던 여리가 인파에 휩쓸려 아이를 놓쳤다. 여리는 아이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지만 여리 역시 

아직 어린아이의 몸이라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제치고 아이에게 거의 도착했을 때 바닥이 흔들리더니 균열을 따라 콘크리트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발이 빠지고 비명을 지르던 사람 몇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더욱 혼돈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여리가 울고 있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쩍쩍 갈리던 바닥으로 아이가 떨어졌다. 놀란 여리는 아이가 

있던 곳으로 달려가 구멍을 통해 2층을 내려다보며 아이를 찾고 있었다. 그런 여리의 뒤로 조경을 위해 세워두었던 나무가 땅을 잃고 뿌리부터 빠지며 쓰러졌다.     



최악의 싱크홀 참사. 

새로 오픈한 천안의 한 프리미엄 아울렛의 건물 한 동이 무너지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건물 안에 있는 사람 중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사람들이 사망했고, 그 외 대다수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석헌과 파랑도 그들에 속했다. 석헌은 터져버린 유리문 바로 옆에 서 있다가 유리 조각이 얼굴로 떨어졌다. 

유리 파편이 박혀버린 얼굴과 눈. 석헌의 왼쪽 눈은 시력이 크게 떨어졌고 오른쪽 눈은 명암만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2층에 있던 파랑은 아이를 구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2층 벽 일부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떨어지기 

바로 직전에 팔을 뻗어 아이를 품에 안았지만 어쩔 수 없이 머리를 다쳤다. 양쪽 청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특히 오른쪽 귀는 거의 듣지 못했고, 왼쪽 귀 역시 50센티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나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아이는 파랑의 품 안에서 목숨을 건졌다. 작은 외상 하나 없이 살아났지만, 함께 온 아빠는 땅속에서, 엄마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여리가 그 아이를 가리켜 유일한 생존자라 말했지만 틀렸다. 

사망자가 많긴 했지만, 부상자를 포함해 아이가 유일한 생존자는 아니었다. 파랑은 아득해지는 의식 속에서 우리를 둘러싼 굴레가 끝났음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도 살아났으므로.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사고를 예견하는 일은 없겠지. 쉽지 않았지만 사고를 막았으니까. 


하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여리였다. 

정신을 잃은 후 깨어난 석헌과 파랑은 사망자 신원 확인 명단에서 서로를 찾고 있었다. 여리가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석헌은 파랑을, 파랑은 석헌을 마음 졸이며 혹여나 명단에 있을까 떨리는 심정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신원미상 시신에서 여리를 발견했다. 멀리 가 있겠다던 여리가 왜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지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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