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이 들어 있는 말들
나는 '그냥'이란 말이 참 좋더라. 특별한 이유는 아니면서 그것만큼 확실한 이유도 세상에 없는 것 같아. (정도상, '낙타' 중)
그냥 그냥
때로는 의도와 상관없이 그냥 얻어지는 사진이 있다. 잘 살아야겠다는 결심과 상관없이 그냥 살아지는 삶처럼. 공주 중동성당을 찍으러 갔는데, 성당을 내려가는 계단에서 노란 담벼락을 만났다. 이렇게 의도하지 않은 만남이 한 장의 맘에 드는 사진으로 남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 때문에 힘들어한다. 그렇지만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왜? 하필 나에게? 항변해도 소용이 없다. 세상에는 이유 없이, 혹은 이유를 모른 채 벌어지는 일 투성이니까. 그냥 그런 거다. 노란 담벼락에 봄 햇살이 비치는 것도 '그냥' 그런 것이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세상 일들도 '그냥' 그런 것이다. 어찌하겠다고 애쓰지 말고, 그냥 그냥 살면 되는 것이다.
그냥, 이란 말... 참 좋은 말이다. 늙어가는 아내에게 늙은 남편은 사랑하냐고 묻지 않는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 않는 법이니까. 그런 물음은 부질없는 것이고, 또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기에 우리는 그냥 서로를 살고 있는 것 아닐까. 그냥 좋은 물건이 오래 쓰는 좋은 물건이듯, 그냥 좋은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다. 자상해서 그가 좋았어요, 서구적인 외모에 끌렸어요, 라는 말은 그가 좋은 게 아니라, 자상함과 서구적 외모가 좋은 것이다. 세월이 흘러 자상함이 소홀해지고 외모가 무뎌지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게 되겠지. 그래서 그냥 좋은 사람이 영원히 좋은 사람인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같이 있으면 그냥 좋은 사람. 내가 왜 그를 좋아하지? 자꾸만 되묻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사람.
혹시 그런 사람과 떨어져 있다면, 지금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자. "무슨 일이야?"라고 묻는다면, 그냥... 이라고만 하자. "무슨 일 있어?"라고 또 묻는다면, 그냥... 생각이 났어, 라고만 하자. 그러면 알아차릴 것이다. 무언가 이유는 있지만, 차마 마음에 담지 못할 때, '그냥'이라고 한다는 것을. '그냥'이란 말속에 숨어 있는 억만 겹의 내 그리움을 그 사람은 분명히 알아차릴 것이다. 아, 그냥... 좋다, 사는 게. 너와 같이, 이 세상을.
그냥 살자
힘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늘 출장 마지막 날은 피곤했다. 금년 마지막 출장을 끝내며 그 이유를 추측한다. 여행은 중력을 거스르느라 힘든 것이다. 지표면을 벗어나 차로 달리거나 비행기로 달아나거나... 인생을 여행이라 한다면, 사는 일이 힘든 것은 사람 사이에 끌어당기는 힘(人力)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그 끌어당김을 거슬러야 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나를 당기는 힘보다 더 큰 힘을 들여야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힘들지 않을까. 중력도 인력도 미약한 비행기 안에서 다짐하다. 저 구름아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자고, 굳이 벗어나려 하지 말고 힘들이지 않고 그냥 그대로 살자고.
생각이 나서
'그냥...' 이란 말과 어울리면 더 애틋해지는 말. 생-각-이--나-서. 쌀쌀해진 가을 외투. 그리움 들켜 부끄럽게 떨어지는 낙엽. 짹짹거리는 초등학교 운동회. 이런 정겨운 풍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말. 그냥 생각이 났어.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내 생존의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걸면, 그 사람의 첫말은 언제나 "뭐 해?" 나의 첫말은 언제나 "그냥." 목소리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후에, 그 사람의 끝말은 언제나 "심심해." 나의 끝말은 "알았어." 참 재미없는 통화를 마쳤어도 굼불을 지핀 것처럼 가슴이 뜨뜻해지는 이유는, 전부 "보고 싶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냥 그리움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에게 배어 있는 시간들을 함께 만난다. 그리고 그 시간들 동안 그 사람이 마주했던 음식들도 함께 만난다. 그래서 사람은 음식을 담는 그릇인지 모른다. 오래도록 익혀온 묵은지를 담고 있는 사람, 구수한 된장찌개를 담은 사람... 세상에 같은 맛이 없듯이, 같은 사람도 없다. 그래서 좋아하는 음식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호감이 가는 건지 모른다. 그리고 번데기, 골뱅이, 소라, 핫도그, 어묵 등. 이런 음식들에는 좀 더 특별한 시간이 들어 있다. 바로 추억이다. 음식이 아니라 추억을 먹는 거라고 말할 때, 바로 그 씁쓸한 맛의 시간이다. 좀 씁쓸해도 좋으니 추억의 시간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그리움이다. 그냥 그 맛이 그 시간이 그리울 뿐이다.
누가 오늘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고민하지 말고, "그냥 좋아요."라고 대답하자. 사람의 말이나 글은 주술과 같아서, 만들어지는 순간 구속력을 갖고 사람의 행동을 유도하게 된다. 말한 사람이나 듣는 사람,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의 행동을 그 방향으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비록 부정적으로 생각했더라도, 표현은 긍정적으로 해야 한다는 걸 기억하자.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되냐고 묻는 선생님에게, 얼음물이나 그냥 물이라는 뻔한 대답 대신에 "봄이 옵니다."라고 대답하는 아이처럼. '힘들다'라고 말하면서 왜 힘을 들고 있냐며, 그냥 힘을 내려놓으면 될 일이라 말하는 아이처럼.
그냥 들어주기
남이 노래할 땐 잠자코 들어주는 거라, 끝날 때까지. 숨긴 마이크 용케 찾아 거들어 주는 거 아닌 거라. 불협 코러스는 안 해줘도 되는 거라. 클라이맥스 치오르는데 취소 버튼 누르면 안 되는 거라. 그냥 가만히 들어주는 거라. 잘 부르든 못 부르던 노래하는 사람 인생인 거라. 손짓하며 요청하기 전에는 끼어들면 안 되는 거라. 그 사람을 그의 노래를 사랑한다면 그냥 옆에서 박수로 응원해 주는 거라. 끝날 때까지. 누가 노래를 부르거나 울 때는 그렇게 그냥 기다려 주는 거다, 끝날 때까지.
Epilogue
끌어안기
“…… 싸움은 그렇게 잔인한 거야. 어때? 너는 끝없이 잽을 날리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관장이 팔을 내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끝없이 잽을 날리는 인간이 못 되면요?”
“홀딩이라는 좋은 기술도 있지. 좋은 싫든 무작정 상대를 끌어안는 거야. 끌어안으면 아무리 미워도 못 때리니까. 너도 못 때리고 그놈도 못 때리고 아무도 못 때리지.” (김언수, '잽' 중에서)
나를 때리거나, 힘들게 하거나,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혹은 끝없이 잽을 날리며 맞설 자신이 나에게 없다면. 차라리 그냥 끌어안자. 그 무언가가 일이든 사람이든, 내 가슴을 열고 힘주어 끌어안기로 하자. 끌어안는다는 건 그가 내가 되고 내가 그가 되는 거니까. 더 이상 서로 대립하지 않는 사이가 되는 거니까. 서로 견디기 힘든 관계가 지속될 때는 포옹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