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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Aug 09. 2021

사랑이 사랑을 만나

사랑이 들어 있는 말들


누군가 내게, "당신은 그를 얼마나 사랑하나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외면하며 "손톱만큼이요."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돌아서서는, 잘라내도 잘라내도 평생 자라나고야 마는 내 손톱을 보고 마음이 저려 펑펑 울지도 모른다.  (왕구슬, '손톱깎이', 네이버 웹툰 <움비처럼>에 나왔던 詩)


- 음... 정말로 사랑하기 힘들어도 딱 손톱만큼만 사랑해 보자...




사랑해야 할 사람


다가오는 가을날 결혼한다며 부끄러운 듯 청첩장을 건네주는 직장 동료 예진아씨. 늦었지만 사랑을 시작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가장 사랑할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작가 정철은 결혼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아니라 가장 사랑할 사람과 하는 것이라 했다. 즉,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직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은 앞으로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다. 우리에겐 사랑하는 사람보다 사랑해야 할 사람이 더 많다. 


나도 그 사람도 보통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보통의 우리가 특별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특별한 사랑은 특별한 사람을 만나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보통의 사람을 만나 그를 특별히 사랑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도종환 시인이 말했다. 영화 '쿵후 판다'에서 특별한 국수 맛의 비법을 묻는 아들 '포'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만들 국수를 특별하다고 여기는 게 비법"이라고. 맞다.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특별해지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소중히 생각하고, 그 사람이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면 되는 거다. 자 우리 이제 특별한 사랑을 해보자.



뒷모습까지 사랑해야


살면서 사람의 뒤편을 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그의 뒤편을 감싸 안는 일이라고. 사람들은 뒤편에 슬픈 것이 많으니까 그렇다고 누가 그랬다. 그렇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신문을 보며 행간을 읽을 줄 알아야 하듯, 음식을 먹을 때 그 속에 담긴 마음을 맛볼 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 우리 앞에서 큰소리를 낼 때에도 그 소음 뒤에 감춰진 도와 달라는 외침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대개 사람들은 간절한 소망을 뒤편에 감추고, 정반대의 말투로 공격하거나 침묵을 한다. 그것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앞모습만으로 사랑을 판단하지 말자. 그 사람 뒤에도 그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랑할 때는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게 그런 넉넉한 마음이 있는지 묻는다.



사랑에 대한 고민  


세상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어. 죽을 때 사랑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 ‘안녕, 언젠가’라는 뜻의 사랑 영화 '사요나라 이츠카'에 나오는 대사이다. 너는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영화에서는 사랑했던 추억을 기억하겠다 대답을 한다. 나도 그러고 싶다.


우리가 사랑을 한다, 라고 할 때, 엄밀히 말해 사랑을 받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인식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남자들은 자신의 지위의 사회적 한계가 허용하는 한 권력을 모으고 돈을 장악하고, 여자들은 몸을 가꾸고 치장을 하는 등 매력을 소유하려 애쓴다. 그들은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며, 단지 사랑할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에서 결정되는 상품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버려놓기 전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행복한 감정이 차고 넘쳐, 대상에 상관없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 '사랑'이다. 물처럼 자연스러운 넘침으로 인해 아무런 조건 없이 주변을 적시는 것, 그게 사랑의 본질이다. 사랑은 일방적이며, 무조건적이고, 곁에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고민은 어떻게 내 안을 사랑으로 채울 것인가, 이것뿐이다. 감사와 배려, 느림과 너그러움, 기다림과 사소한 만족 등으로 채우고 쌓으면 되지 않을까. 아, 그리고 겸손이 필요할 것이다. 잔을 기울여야 따를 수 있으니.



그게 사랑인 거다


우리가 섣불리 말하는 '사랑'이란 이런 게 아닐까.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물을 주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진행상황을 등한시하거나,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무관심한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사랑하고 있는 대상의 성장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관심을 유지하는 것. 자유와 마찬가지로 무한 책임을 지는 것. 이런 것이라야 사랑이 아닐까. 


지금까지 미루어 놓았던 사랑한다는 말, 이제는 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귀하고 귀해 아껴 두었다는 말은 자기 합리화. "사랑해"라는 말은 흔하디 흔한 말, 결코 아끼거나 미뤄야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말을 너무 아끼고 미루고 살았다. 사랑한다는 말은 그냥 볼 때마다, 생각날 때마다 툭툭 던지는 잽 같은 말이다. 한 방의 강력한 펀치가 아니라 가랑비 같은 잽이 상대를 쓰러트리듯.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사랑한다 말을 하자. 몇 번을 만나든 상관없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이 인사말로 통용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아이였을 때, 손바닥으로 배를 덮어 주었을 뿐인데, 울음을 그치고 안정을 찾던 일이 기억난다. 그때는 내가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무슨 짓을 했는지 알 것 같다. 그것은 그냥 옆에 있어 주는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보다 더 큰 안심은 없다. 사랑은 사랑하는 쌍방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추상적 개념. 그러므로 함께 있지 않으면 사랑은 없는 것이다. 그냥 옆에 있어 주는 일, 이것도 사랑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죽음


‘사랑하다’와 ‘살다’라는 동사는 어원을 찾아보면 결국 같은 말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영어에서도 살다(live)와 사랑하다(love)는 철자 하나 차이뿐이다.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사랑하는 일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장영희 교수가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에서 했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사는 것이 사랑하는 일의 연속이라면, 사랑하지 않는 순간은 죽은 것이다. 매 순간 살아 있고 싶다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사랑을 해야 한다. 파티션 너머 감시의 눈길 쏘아대는 상사를 사랑하고, 아는 척하다 떠안은 서류더미를 사랑하고, 이쪽 말을 듣지 않는 수화기 속 민원인도 사랑해 보자.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과 해 떨어진 바다에서 포옹하는 것도 좋겠다. 사랑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있기 위해서 하는 거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생존을 위한 사랑을 해보자.




Epilogue

사랑이 사랑을 만나


낙조의 연인

솔직히 남편이 내 이상형은 아니었거든요.. 물론 남편도 내가 자기 이상형이 아니었대요.. 그래요, 우린 둘 다 이상형을 만나는 데는 실패했어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최숙희, '사랑이 사랑에게' 중)


그럼 되었다. 이상형이란 한순간의 끌림이 아니라 긴 세월을 같이 부대끼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형을 만나는 데 실패한 것이 아니라, 결국 이상형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부부는 지금 각자의 이상형을 몇 퍼센트나 만들었을까? 50%? 100%? 설마? 흠... 솔직하게 말하자면 1년에 1%가 최대치라 생각한다. 사람을 바꾼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니까.


지난 주말 친지 결혼식이 있어 서울을 또 다녀오다. 신랑 신부 모두 마흔을 넘겨하는 결혼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로 축하 인사를 대신한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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