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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Jul 16. 2021

맛나는 만남

만남과 이별이 들어 있는 말들


만남은 맛남이다. 누구든 일생의 잊을 수 없는 몇 번의 맛난 만남을 갖는다. 이 몇 번의 만남이 인생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 만남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나일 수가 없다. (정민, '미쳐야 미친다.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 중)


- '만남'은 '맛이 난다.'의 줄임말, 맛있는 만남일수록 오래 기억되는 것.



만남과 이별은 다르지 않다


벽시계를 보면 시침과 분침이 겹쳤다가 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아마 한 시간에 한 번씩은 그런 것 같다. 이때 시계침들은 서로 멀어지는 것일까, 다시 가까워지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만남과 이별은 다른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 지원근무를 마치고 원래의 부서로 복귀하는 날. 14일 동안 외부와 격리된 채 시설 안에서 시계침처럼 겹쳐 지낸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동안 고마운 일도 있었고, 서운한 일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 헤어지는 것이, 이별이 시작된 것인지 만남이 시작된 것인지는 생각하기에 달린 것이리라. 인생의 긴 여정 중에 우리는 시계침처럼 겹쳤다 멀어졌다를 반복할 뿐이다. 그러므로 만남에는 끝이 없고 이별에는 시작이 없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일은, 함께 있는 사람들과 온전히 겹쳐지는 일뿐이다. 시계침이 하나뿐이라고 깜짝 놀랄 만큼, 한 마음 한 뜻으로 화합하여 사는 일 말이다. 다섯 시 이십 오분, 벽시계가 하나의 시계침으로 합쳐지는 모습을 보며 다짐한다. 어디에 있건 사람들과 그렇게 살아보자고.



만남이 이별이다


열대성 강우, 스콜(squall) 같은 소나기가 내렸다. 가끔 우리는 이처럼 갑자기 떠난 사람의 소식을 듣는다. 그리곤 아, 그때 그 만남이 마지막이었구나, 하며 후회를 한다. 그렇다. 벽시계의 시계침처럼 우리는 인생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게 된다. 그러나 벽시계는 같은 시계침을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에 비해, 사람의 만남은 그렇지 않. 이별한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 수만 겁의 인연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란 천지가 개벽한 때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힌두교에서는 43 2 만년 ' '이라고 본다. 그리고  2 겁의 세월이 있어, 사람과 사람이 하루 동안 동행할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한. 그러므로 살면서, 우리가 접하는 만남은 거의가  번뿐인 만남이라 생각해야 한.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인 셈이다. 결국 우리는 사람을, 만나 것이 아니라 이별하고 있는 것이다지금 이 만남이 마지막이라는 간절함으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헤어짐을 '이별'이라 하고, 제 힘으로 힘껏 갈라서는 헤어짐을 '작별'이라 했던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도록 진심을 다해 만나야겠다.



부르면 만남이 온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게 된다. 떠나는 사람을 자꾸 부르면 떠나지 못하는 거라며 친구의 손을 잡아 주었다. 먼 길 가시는 아버지 이제 그만 보내드리라고, 자꾸 부르지 말고 편하게 가시게 해 드리라고, 헌화하고 돌아오는 밤길. 두 시간째 달리는 차 안에서 생각한다. 그렇구나. 사람을 부르면 사람이 오는구나. 사랑을 부르면 사랑이 오고, 일을 부르면 일이 오는구나. 그렇다. 반대로 부르지 않으면 그것들은 멀어져 간다, 내게서 떠나간다. 부른다는 건 마음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결국 만남도 이별도 나 스스로 조장한 상황이었다.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힘든 상황을 만나면, 남을 보지 말고 나를 보아야 타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별의 책임 


우리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함께 만나는 것이라 한다. 그가 겪고 감당했을 희로애락의 세월이 같이 오는 것이리라. 그럼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어떨까. 떠나는 사람은 미래만 들고 떠난다.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들, 아름다운 기억들은 우리 곁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별에 대하여 그리 아파하지 않았으면 한다. 떠난 사람의 인생이 여기 남았으므로 이별의 아픔은 만남의 충격보다 견딜만한 것이니까. 우리는 같이 할 수 없는 현재와 미래만큼의 아쉬움으로, 이별을 나누면 될 뿐이다.


한결같은 존재는 부재로 인식된다. 그래서 사랑할 땐 사랑을 모르고, 이별할 때는 이별을 모르는 것이다. 누가 떠나는 줄도 모르고, 혼자 남은 적이 있을 거다. 내 편 안 들어준다고, 내 맘 몰라 준다고 고집부리다, 서둘러 따라나서지 않고, 혼자 남은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그렇듯 세월도 그렇다. 그 많던 날들 다 떠나고, 혼자 짐을 꾸리고 있는 달력 한 장, 혼자 남은 12월처럼 말이다. 이렇듯 이별의 책임은 떠난 사람이 아니라, 떠나지 않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떠난 사람을 원망하지 말자.




Epilogue

소중한 것들


돌아누우면 남, 한 번 더 돌아누우면... 넘

손가락에 상처가 나면 손을 움직일 때마다 아픔이 전해 온다. 그제야 손을 움직이는 순간이 이렇게 많았구나, 깨닫게 된다. 사랑에 상처가 나면 그냥 걷기만 하는데도 아픔이 느껴진다. 그제야 숨 쉬는 모든 순간 넌 나와 함께였구나, 깨닫게 된다. (김은주, '달팽이 안에 달' 중)


함께하면서도 소중함을 잊고 있는 것들이 있다. 이별한 뒤에야 깨닫고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출장 중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사무실 내 의자, 자꾸만 투덜대는 옆자리 선임, 술 취하면 무한 반복되는 후배의 넋두리, 출근하는 아침에 현관 앞까지 추격해오는 아내의 망고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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