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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Jul 13. 2021

기다림을 기다리며

기다림이 들어 있는 말들


행복이란 바로 그런 것이란다. 마음의 여백을 갖는 일. 다가올 즐거운 순간을 기다리는 마음의 여백이 바로 행복이지. 행복이란 결국 기다림의 다른 말이야. (김재진, '어느 시인의 이야기' 중) 



기다림, 마음의 여백


영과이진(盈科而進), 또는 영과후진(盈科後進)이란 말이 있습니다. 물은 흘러가다 웅덩이를 만나면, 결코 서두르지 않고, 다 차기를 기다렸다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엄밀히 생각하면 물은 멈춘 것이 아니라 웅덩이를 채우는 중이죠. 그렇습니다. 웅덩이, 그 공간이 바로 우리 마음의 여백입니다. 그 여백을 채우는 시간이 멈춤의 시간이며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기다림은 여백이 있는 곳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기다려 줄줄 아는 사람은 마음이 넓고 여백이 많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물은 웅덩이를 건너뛰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도 물처럼 살아야 합니다. 큰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바쁜 와중에도 웅덩이를 채우듯 나를 채우며,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나에게 소중할 사람을 만날 때는, 그가 기다림을 아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다려 주는 일보다 더 큰 위로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늘그막에 찾아올 나의 사춘기를 말없이 기다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아, 마음속으로 봄을 기다린다고 말하자, 목련이 피었습니다.



기다림, 믿음과 약속


"다녀올게."

"네, 다녀오세요."


우리는 아침마다 구두계약을 체결하고 집을 나섭니다. 그리고 그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아무리 멀고 늦은 밤이라도 반드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다녀올게'라는 말과 '다녀오라'는 말은 기다림과 함께 쓰는 말입니다. 말속에 기다림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녀올게, (기다려)

"네, 다녀오세요. (기다릴게요)


이렇게 기다림은 믿음과 약속을 포함합니다. 만약, 우리가 기다린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돌아온다는 약속도 지켜질 수가 없습니다.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어야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다림의 인력, 기다림이 사람을 당기는 힘이, 바로 돌아갈 힘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이 간절할수록, 떠난 이를 끌어당기는 힘도 더 강력하고, 더 멀리까지 작용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눈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돌아갈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합니다. 긴 출장을 마치거나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갈 때,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지고 콧노래가 나오는 것도,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향집 골목 어귀부터 마음이 들뜨기 시작하는 것도, 마당에서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글어스를 설치하고, 사람들이 가장 먼저 가보는 곳이 바로 자기 집이라고 합니다. 자기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천근만근 출근길이 즐겁지 않은 이유는, 사무실엔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기다림, 사랑과 배려


나무 모종을 할 때는 자식같이 정성 들여해야 하지만, 심은 뒤엔 버리듯이 놔둬야 한다고 합니다. 걱정하지도 말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매일같이 들여다 보고 만지작거리다 결국 나무를 다 죽이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관심보다 기다림이 성장에 더 필요합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뛰어오다 넘어졌습니다. 냉큼 달려가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주는 부모가 있고, 한참을 바둥거리다 제 힘으로 일어나는 아이의 등을 토닥여 주는 부모가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의 일상까지 일으켜 주려는 아내에게 제발 좀, 기다려 주자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기다리는 일이 쉽지 않은가 봅니다. 기다림은 마음에 여백이 있어야 가능한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은 사랑이라는 욕심으로 가득 차 손톱만큼의 여백도 없기 때문입니다. 잠시도 무언가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명심해야 합니다. 기다려 준다, 기다림을 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임을. 기다림은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란 것을 말입니다. 기다림은 사려 깊은  배려이고, 인내로 표현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 기다림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사는 게 힘들고 바빠서 기다리는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슬픈 일입니다. 행복에 빨리 도달하려고, 삶에서 기다림을 제거한 후 사람들은 더 불행해졌습니다. 쉴 틈도 없이 계속해서 일을 하고, 배고플 틈도 없이 계속해서 음식을 먹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러다 무슨 일이 날 것 같습니다. 살인의 방법 중에는 쉼표를 찍지 않고 편지를 보내는 방법도 있다 들었습니다. 기다림을 회복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절대 기다랗지 않습니다.

 

잘 나가는 소통강사, 김창옥 교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뉴욕의 기차는 항상 예정시간보다 1분 늦게 출발한다고, 단 1분이 늦어 30분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라고. 그렇습니다. 기다림은 출발이 늦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배려입니다. 살다 보면 나도 출발이 늦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 1분만 기다려 준다면 삶의 정상 속도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다려 주는 사람은 1분이지만 달려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일생이 될 수도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우리, 먼저 기다려 주는 사람이 되기로 합시다. 바빠서, 라고 회피하지 말고, 드디어 나에게도 기다릴 기회가 왔구나, 고마워합시다. 행군에 뒤처져 본 사람은 알 겁니다. 앞서 쉬고 있는 대열에 완전군장으로 숨을 헐떡이며 겨우 합류하였을 때, "휴식 끝!"이라는 구령이 얼마나 잔인한 건지. 뒤처진 이들이 올 때까지 쉬고 있는 것은 기다림이 아닙니다. 동일한 출발선을 보장한다는 것은, 그들이 쉬어야 할 시간까지 기다려 주어야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연습을 통해 우리 삶에서 기다림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pilogue

기다란 기다림


숲으로 난 길에 의자가 홀로 앉은 채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스물에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돌을 들었고, 서른에는 아내 바꾸어 놓겠다며 눈꼬리를 들었고, 마흔에는 아이들 바꾸고 말겠다며 매를 들었고... 쉰에야... 바뀌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임을 깨닫고, 들었던 것 다 내려놓았습니다.  뭐 들고 계세요? (@ChungMinCho)


음, 내 손에는 아직도 욕심이 들려 있는 것 같군요. 세상도, 아내도, 아이들도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 말입니다. 그러나 그 바람은 나의 주관적 기준일 뿐이고, 각자 자기의 기준에 따라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인데, 그걸 기다려 주지 못하는 내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속도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기다림의 배려. 예순을 앞둔 내가 들어야 할 것들입니다. 잠시 저 의자에 앉을까요? 수십 년을 숨 가쁘게 지나쳤는데, 왜 이제서야 곳곳에 앉아 있는 의자가 눈에 들어오는 걸까요. 내가 앉아서 기다리기를 의자는 지금까지 기다렸던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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