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뜻하지 않게 통장 잔고가 문제 될 무렵, 아내와 동네를 산책했다. 은행나무 길을 거니는 동안 아내는 말이 없었다. 길 중간쯤에서 잘생긴 나무 한 그루를 골라 아내에게 소개했다.
"당분간은, 우리 주거래 은행이야."
아내가 피식 웃긴 했으나 그럴 수 없다고, 절대 싫다고 했다. 구려서, 나도 싫었다. (손명찬, '꽃필 날' 중)
손명찬 작가의 저 표현을 나도 써먹어야지, 하며 벼르다가 결국 써먹었다.
7년 전 그날 17개 은행과 업무협약 건을 끝내고... 오랜만에 곡교천 은행나무길을 아내와 드라이브 삼아 다녀왔다. 전보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훨씬 늘어나 있었다. 은행을 위해 사람이 있지 않고, 사람을 위해 은행이 있어 좋았다. 나도 아내에게 튼실한 은행나무 앞에서 똑같이 말했다.
"여기가 우리 주거래 은행이야."
그러고 보니 은행이 참 많아졌다. 은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푸어들이 많다는 것이다. 얼떨결에 세입자처럼 은행에 월세금을 납부하는 하우스푸어. 타고 다니는 자동차 할부금을 택시비처럼 은행에 지불하는 카푸어. 은행은 이렇게 푸어를 먹고사는 생물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라민뱅크나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 사업이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도 어쩌면 가로변에 은행나무가 많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이곳 사람들은 세상을 빌려 살면서 고통을 이자로 지불한다. 힘들고 아프다는 건 지금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자를 연체하지 않고 제대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아산 염치읍에 있는 은행나무길에서, 아무리 어려워도 염치 있게 살자,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