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녀 온 비암사
도쿄에 올라와서 기숙사에 들어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을 때, 내가 해야할 일은 한가지 밖에 없었다. 모든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사물과 나 자신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 그것 뿐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중)
세종시
전의면에 있는 비암사를 찾으면 누구나 고민에 빠진다. 아주 작은 천년고찰 입구 담벼락에 새겨진 글귀 때문이다.
"아니 오신 듯 다녀 가소서."
이게 무슨 소린지, 어떻게 살라는 건지. 나도 한참 동안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세상 떠나는 이들의 후회는 하나같다고 한다. 세상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않았어야 했다는 것. 심각하게 산다는 것은 내 뜻보다 남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결국 '아니 온 듯'하라는 말은, 남의 마음에 들려고, 남의 눈에 띄려고 하지 말라는 게 아닐까. 잠시 머물다 갈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며 살다 가라는 뜻으로 결론 내리다. 아니 간 듯 다녀온 비암사. 그 이후로 사는 일이 심각해질 때마다, 나는 비암사에서 보았던 그 경구를 다시금 심각(深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