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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Feb 01. 2022

신발 길 들이기

# 설날에는 새 신을 신는다.


인생이란 마치 새로 산 구두를 길들이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발이 아프지만 차츰 구두에 익숙해지면 그것만큼 편한 것이 없다. 하지만 구두를 길들이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빠른 사람... 아주 더딘 사람... 아픔을 참고 구두를 많이 신고 다닌 사람만이 빠르게 구두를 길들이지 않을까? 요즘 내 구두를 보면서 생각한다. 처음 신어 발은 아프지만 언젠가는 내 발에 꼭 맞아 편안한 신발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 대하여... (영화 "접속" 중 수현의 독백)



오늘은 새로 산 신발 같은 날이다. 


신발을 인생이라 한다면, 신발을 나에게 맞춰야 할까, 나를 신발에 맞춰야 할까. 지금까지 당연히 신발을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이 신발에게 맞출 줄은 미처 몰랐다. 그랬었다. 지금은 비록 발이 아프겠지만 익숙해지면 곧 편해질 거란 믿음을 가졌었다. 다 잘될 거란 기대를 안고 살았었다. 그 기대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참으며 살았는지.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과연 편안해졌을까. 신발은 또 얼마나 길들여졌을까.


월출산 도갑사에서 우연히 백상옥 작가의 작품을 만났다. 신발에 나를 맞추고 그와 혼연일체가 된 스님 얼굴을 보았다. 아, 극도로 익숙해지면 저렇게 되는구나. 나의 인생과 내가 한 몸이 될 수도 있는 거구나. 세월이 흘러 익숙함이 편안함이 되는 것은, 신발을 길들여서 그런 게 아니구나. 나를 신발에게 길들일 수도 있는 거구나. 어쩌면 그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고, 더 수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누구를 길들인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길든다는 건, 어떤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고. 길들인다는 건, 어떤 일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다. 과연 인생 사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아도 인생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다. 양력설이든 음력설이든 설날은 언제나 새 날인 것처럼. 


하긴 사는 일에 익숙하다면.... 이미 살아 본 삶뿐이겠지. 아니면 영화처럼 무한루프에 빠진 오늘을 사는 거겠지. 아니면 지구와 같은 환경의 다른 별에서 살다 왔거나. 맞춘다는 건 그런 것이다. A를 B에 맞추었다는 건, A와 B가 같아졌다는 건 아닐 것이다. 단지 맞지 않아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이나 갈등이 없어졌다는 걸 말할 것이다. 


설날에는 누구나 새 신을 신는다.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야 하나, 새롭게 인생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나. 발에 신발을 맞출지, 신발을 발에 맞출지,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고민할 필요 없다. 주어진 새 날들을 더 열심히 걷고 뛰어다니다 보면 익숙해지고 편안해질 테니까. 우리가 사물이나 공간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시간도 익숙해지는 거니까. 날마다 만나는 날들이 처음 보는 새 날일지라도, 살아내는 하루의 흐름과 방식은 익숙해질 수 있으니까. 

 

설날이면 그랬던 것처럼 새 신을 신고 으스대며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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